손에 익은 필기도구를 쉽사리 놓지 못 하는 이유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을 즐기는 입장에서는 ‘펜’이 중요한 관심사다. 펜을 고르는 요령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립감이라고 불리는 손에 잡았을 때의 느낌과 종이에 글을 쓸 때의 느낌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 싶다.
내 경우는 가는 글씨(細筆)를 좋아한다. 가는 글씨는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필체가 좋지 않은 경우는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나는 단점이 있다. 가는 글씨를 쓰려면 특히 ‘펜’을 잘 골라야 한다. 잉크를 내보내는 공간이 다른 펜들에 비해 좁다 보니 글씨가 중간에 끊어지거나 종이가 긁히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워드 프로세서(진부한 단어일까?)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다 보니 직접 펜을 들고 종이에 글을 쓰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어졌지만 일상 생활에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즐기기에는 글쓰기처럼 좋은 것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펜의 종류는 정말 많지만 연필과 샤프, 볼펜, 만년필 정도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연필의 경우는 아마도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겠지만 필기도구 중에서 가장 정감어린 것을 고르라면 연필을 1순위로 올려 놓아도 손색이 없다. 나무와 흑연 특유의 향이 글을 쓰는 중간에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펜은 역시 만년필이다. 만년필 사용자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도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낡은 Parker 만년필로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다. 만년필은 손에 맞는 제품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우선 직접 써보고 고를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 데다가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굳이 처음부터 고가의 제품을 들일 이유는 물론 없다)
잉크는 몽블랑이 특유의 색 때문에 매력적이고 세일러의 경우는 초미립자 잉크라는 자체적인 모델이 있는 데 세필에는 이 잉크가 가격적인 부담만 감수할 수 있으면 제일 적합하다. 펜 이야기는 하나씩 따로 주제를 잡아서 천천히 이어가 보도록 할 생각이다.
2006.11.20에 첫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