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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road Sep 16. 2022

몽블랑 EF촉은 주의가 필요하다

까칠함을 극복할 자신이 있다면

만년필 마니아들에게 '몽블랑'이라는 이름은 '어느 한 단계'를 의미하는 것 같다. 무슨 이야기냐면 보통(일반적인 경우) "몽블랑 만년필 정도면 충분하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구입하고 나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오메가나 롤렉스가 제일 좋은 시계라고 알고 있다가 피아제나 파텍필립 같은 세상을 접하는 것과 같은 것이랄까. 벤츠나 BMW를 보다가 벤틀리가 보이는 셈이다. 아무튼 마케팅의 영향인지 만년필하면 몽블랑이라는 이미지는 제법 단단한 느낌이다.
    

기본 모델로 볼 수 있는 145모델의 경우 50만 원대 팔리고 있는데(요즘 보니 7~80만 원 정도) 145모델이 1만 원대의 만년필보다 50배나 우수하냐면 쉽게 긍정하기는 어려울 것같다. 브랜드(또는 소위 명품) 제품을 사용할 때는 항상 이런 밸런스 문제가 생긴다. '비싸게 주고 샀는데..', '명품이라는데..'라고 생각하고 참고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몽블랑 만년필도 이런 면이 강한데 그 내용은 아래에 이어 적어보겠다.


몽블랑 펜촉은 연성 촉으로 잘 알려져 있다. 즉 무르다는 말이고 잉크의 흐름이 좋다는 말이다. 이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글이 굵게 써진다는 말이다. 물론 (매우 드물게) 예외적인 펜들도 있지만 몽블랑의 특징을 한 마디로 하면 '굵다'는 것.


이런 이유에 주로 서명용으로 많이 사용하지 실사용기로 몽블랑을 선택하려면 자신의 필기 습관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그래도 괜찮은데 한글과 같은 받침이 있는 언어나 한자를 섞어 쓰는 중국어, 일본어에는 몽블랑 만년필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보통 만년필의 펜촉 두께를 구분할 때 EF(Extra Fine)촉을 가장 얇은 촉으로 구분하는데 몽블랑의 EF촉은 기존에 많은 분들이 칭찬하는 부드러운 필기감, 전형적인 몽블랑의 느낌은 전혀 없다고 봐도 좋다. 오히려 글이 제멋대로 써지고 까칠까칠하고 손가락이 아프기까지 하다.


대개 만년필의 경우 3개월 정도를 사용하면 자신의 필체에 맞게 길이 드는데 몽블랑 EF를 쓰는 3개월은 아마 제법 길게 느껴질 것 같다. 일단 잉크를 넣고 기대감에 첫 글을 써보려고 종이에 펜촉을 대는 순간 "어? 네가 날 길들일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듯 펜이 튕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연성촉이니 금촉이나 하는 말들이나 필기감이 좋다는 주변의 말이 순간 사라져버리고 "내가 불량품을 받았나?"라는 의구심까지 생기게 된다.

 

EF촉을 사용하는 분이라면 아마 몽블랑 잉크는 사용하지 않겠지만 만약 몽블랑 잉크를 넣는다면 빡빡함과 까칠함은 극에 달한다. 내 경우는 오로라 잉크를 쓰는데 점성이 높은 잉크다보니 역시 저항이 센 편이다. 부드럽게 물에 흐르는 듯한 몽블랑의 특성을 느끼고 싶다면 146이상으로 그리고 F촉 이상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P145(145의 플래티넘 코팅 버전)은 상당히 가볍다. 이건 장점이자 단점이 되는데 비스콘티처럼 펜촉 부근에 무게 중심이 몰려있는 경우는 장시간 필기에도 손이 피로하지 않지만 이 제품처럼 가벼운 경우는 장시간 필기에 썩 좋지만은 않다(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리고 그립 부분은 땀에 약하다. 손에 땀이 많은 분이라면 펜을 잡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디자인은 깔끔하다. 잘 알려진 육각별 모양이 눈에 잘 띠긴 하지만 자주 사용하다보면 아예 캡은 저만치 두고 쓰기 때문에 별 느낌은 없다. 잉크 주입은 컨버터와 카트리지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사용할 수 있고 카트리지는 표준 카트리지라면 어느 회사 제품이나 모두 사용 가능하다. 전체적으로 얇고 가벼운 느낌이라 여기서도 호불호는 나뉠 것 같다.
   

몽블랑 만년필을 쓸 생각이고 비교적 큰 글자로 글을 많이 쓰는 분이라면 EF촉보다는 F촉을 추천한다. 물론 펜촉이 길들기까지의 까칠함을 감내할 여지가 있다면 EF촉도 괜찮겠지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 시필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직접 손글씨를 써 보기를 권한다. 내 경우는 워낙 세필을 선호하다보니 이 고집 쎈 녀석을 기어코 길을 들였지만 만약 편하게 술술 그리고 장시간 글을 쓰고 싶은 분이라면 비스콘티나 오로라 제품을 추천하고 세필 위주라면 세일러나 플래티넘이 좋은 대안이다.


2009년 5월 13일 첫글이고 글을 옮겨 오는 과정으로 현재 사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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