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색, 가을색, 시에나(Sienna)

나의 여러 이름, 작가인 나의 수식어

by 설애

시에나(Sienna)는 내 영어 이름이다.

시에나(Sienna)는 황갈색으로 이탈리아 광산촌이었던 시에나(Siena)에서 캐서 만든 안료로 '시에나의 흙(Terra di Siena)'에서 기인한 이름이다. 생 시에나(Raw Sienna)는 흙의 고유한 색에 가깝다. 그래서 햇빛이 비치는 땅, 마른 풀, 황량한 들판, 사막의 모래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가열하면 더 빨갛게 구운 시에나(Burnt Sienna)가 된다. 이 색은 열정적인 갈색의 느낌이다. 가을 단풍, 햇볕이 드는 지붕, 오래된 건축물 등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한다. 진한 시에나(Dark Sienna)와 연한 시에나(Pale Sienna)도 있다. 진한 시에나는 다크 초콜릿 색이고 연한 시에나는 살구색에 가까운 갈색이다. 모든 색에서 가을 향이 나는 시에나는 커피콩 색이기도 하다.



커피색

커피콩은 로스팅 정도에 따라 색이 다르다. 생두는 연한 시에나이고 로스팅을 오래 하면 진한 시에나로 색이 변한다. 로스팅할수록 원래의 맛은 잃고 쓴 맛이 진해진다. 프렌치 로스팅에서 이전 단계는 풀시티, 다음은 이탈리안 로스팅으로, 이탈리아에서 마신 에스프레소의 맛이 한국에서 느껴지지 않는 이유인가 싶기도 하다. 로스팅에 따라 맛이 변하는 커피는 유화와도 닮았다.


유화, 색

나는 한동안 회사 미술 동아리에서 유화를 그렸다. 그때 나무를 그리려고 엄버(Umber)를 선택하고 나서 색을 수습하느라 당황했던 적이 있다. 엄버는 진짜 고동색에 가까운 색이어서 밝은 색 옆에 있으면 검게 보일 정도이다. 나는 나무와 엄버가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초록색과 같이 구현하려면 더 옅은 색이 필요했다. 계속 색을 덮어가면서 색에 다른 색을 더하는 시간은 커피의 로스팅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색이 홀로 있을 때와 같이 있을 때, 그리고 어떤 색과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색의 느낌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경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 색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그림은 풍부해지고, 깊어졌다. 그리고 빛은 빛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어둠으로 그린다는 사실을 그림을 그리며 깨달았다.



다시, 커피

커피도 그러하다. 혼자 있을 때와 섞여있을 때가 다르다. 로스팅 정도가 다른 원두를, 생산지가 다른 원두를, 성격이 다른 원두를 섞으면 블렌딩이 된다. 어우러진 맛은, 단독 원두와는 또 다르다. 블렌딩은 하나의 맛이 가진 개성을 살리며 풍부해지는 일이다.


시에나의 수식어는?

나의 영어 이름은 시에나다. 시에나는 앞에 붙은 수식어에 따라 색을 바꾸는 색의 이름이다. 원두는 로스팅 시간에 따라 색이 바뀐다. 커피는 블렌딩에 따라 맛이 바뀐다. 나는 이 가을의 온도에 따라 나뭇잎들이 색이 변하여 단풍이 들듯이 수식어에 따라 변하는 색과 커피에 대해 쓰고 있는 중이다.


나도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변할 수 있으며 다양한 내가 있다. 집에서는 엄마이자 아내, 회사에서는 직장 동료이자 멘티에게는 멘토, 브런치에서는 작가


다양한 역할 앞에 나는 어떤 수식어를 택할 수 있을까?


다정한 엄마, 철없는 아내, 전문성 있는 책임, 책임감 있는 멘토.


그리고

글 쓰고 있는 작가인 나에 대한 수식어는

'글미로 설계자'


미로 시리즈를 발간하고, 그 미로를 설계하는 작가.

이렇게 내 작가의 페르소나를 정의해 본다.


당신의 수식어는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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