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공포단편소설 탈락
그는 투명하게 포장된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서 있었다. 놀란 나는 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료들 사이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는 나를 놓치지 않고 나를 불러세웠다.
"효진아!"
같이 퇴근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그는 이쪽으로 다가올 기세다. 마지못해 나는 먼저 간다고 인사하며, 그에게로 빠르게 걸어간다. 손이 가늘게 떨렸다. 주먹을 꼭 쥐고 그에게로 간다.
"효진아, 잘 지냈어? 저녁은 먹었어?"
그는 꽃을 건네며 나에게 저녁을 먹었냐고 묻는다. 저녁?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왜 왔냐고 묻는다.
"아빠는 저녁 안 먹고 왔어, 같이 먹자."
그는 웃으며 나를 끌고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나는 비리게 웃는다. 나랑 저녁을 먹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새 꽃도 내 손에 들려있었다. 붉은 장미가 바닥을 향한 채 내 손 끝에 붉게 매달려있다.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
"급하긴, 돈 좀 보내. 얼마나 있니?"
"아빠가 다 가져가서 없어. 내가 돈이 어딨어?" 나는 나도 모르게 커진 목소리로 내지른다.
"그래? 그럼 현금서비스 받자. 너 신용은 괜찮지?"
"아빠!"
"왜 돈이 없어? 그새 남자친구라도 생겼어?"
말문이 막힌다. 그는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본다. 그 눈빛에 나는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하다. 아빠의 다음 말을 알고 있다. 가족은 너밖에 없잖아.
"가족은 너밖에 없잖아. 효진아, 내가 조금 힘들어서 그래. 딱 40만원만 주면 갈게."
40만원. 익숙한 숫자 배열이다.
처음엔 4000만원이었다. 1544-****으로 대출금을 갚으라는 독촉 전화로 알게된 내 명의의 빚은. 대출, 이자, 추심, 채무자 등의 낯선 단어가 어지럽게 이어진 그 전화를 받은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어떻게 신청한 것인지 모르나 내 학자금 용도로 대출을 내고 이미 없어져 버린 돈이, 아빠가 갚지 못하자 내게 독촉이 오기 시작한 것이, 원금이 4000만원이었다.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나는 빚에 깔려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벌고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겨우 이자를 갚아가며 대학생활을 마쳤다. 취업을 하고, 이자로 불어난 빚을 갚느라 월급은 사라졌고, 그럼에도 아둥바둥 살면서도 내 손에 쥐어지는 돈은 없었다.
그것을 겨우 다 갚은 것이 올해 초였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을까. 내가 빚을 갚을 때는 빚 갚느라 돈이 없다고 했다. 돈을 주지 않는 내게서 단돈 10만원이라도 뜯어내야 돌아갔다. 이제 40만원이라고.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현금서비스를 받으라고?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투명한 포장지가 구겨지며 소리가 난다.
"돈 없어."
아빠의 눈빛이 매서워진다.
"돈이 없어?"
"응, 없어"
"그래? 그럼 내가 내일 너네 회사로 전화 해야겠다."
목소리가 낮고 느려졌다.
"효진이 아빤데, 효진이 월급에서 40만원만 줄 수 없냐고."
나는, 날카로운 종이에 손이 순간 베인 것처럼 순식간에 목을 베인 것 같았다.
"뭐라고?"
"내일 찾아올까? 여기 3층이잖아."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심장은 바짝 뛰고 손끝이 차갑게 떨렸다. 내일, 그가 회사로 올까 두렵다.
"없어. 와봐, 회사. 같이 죽자."
"진짜 더럽게 비싸게 구네."
그가 다정한 척했던 말투를 지우고, 툭 말을 던졌다.
"효진아, 40만원만 주면 안 올게, 나도 어디 가서 일당이라도 벌려면 고시원이라도 들어가야 해서 그래."
다시 말투가 애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했는지, 작은 종이를 장미꽃을 든 왼손에 끼운다.
"피곤할 테니 오늘은 갈게."
그리고는 뒤돌아 간다. 종이를 펼쳐보니 계좌번호다. 알고 있는 번호다. 종이를 구기고, 눈에 보이는 쓰레기통으로 장미와 쪽지를 같이 던져버리고 그가 사라진 방향을 살핀다. 혹시나 미행하지 않는지 주위를 살피는 눈앞이 눈물로 가려져 뿌옇다. 지하철을 타고, 수많은 계단을 지나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욕실로 가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아, 그냥 죽어버릴까. 샤워기를 맞으며 주저 앉았다. 동그랗게 무릎을 말아쥐고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울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붉어진 눈을 보며, 장미를 떠올렸다. 나는 장미를 좋아했었다. 어린 시절 마당에서 엄마와 같이 보았던 조그맣게 피던 장미를 좋아했다. 그 장미도 엄마도 그 사람이 다 망쳐버렸다.
11시다.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40만원을 주면 또 돈을 받으러 올 것이다. 주지 않으면 그는 나를 계속 찾아올 것이다. 땅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다니는 회사이니, 나는 사는 곳과 전화번호는 바꾸어도 회사는 바꿀 수 없다.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몸을 뒤척이면서도, 귀에는 그 목소리가 맴돈다. 효진아… 효진아… 심장이 쿵쿵 울린다. 효진아, 라고 부르던 그 목소리. 효진이라는 이름은 효도 효와 보배 진을 합친 것이다. 나는 그의 보배, 효도하는 보배. 이름 진짜 거지 같네. 이어지던 그의 말이 유령처럼 내 귀에 달라붙어있다. 더럽게 비싸게 구네. 나는 내 몸 위로 더럽게 큰 뱀이 올라앉아 나를 감싸는 것 같아 몸서리를 쳤다. 더럽게 비싸게 구네. 라고 했다.
눈을 감으니 장미가 나를 압박했다. 장미를 사오다니. 마당에 피던 조그만 장미, 마당에 떨어진 핏자국이 떠올랐다. 아빠는 사업이 잘 풀리지 않으면 엄마를 때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꼭 감고 그 소리가 끝나기를 빌었다. 창문으로 종종 손을 올리는 그림자가 비춰서 나는 이불 속으로 숨었고 베게는 눈물로 젖어들었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울었다. 그때, 엄마를 막아서 때리지 말라고 했다면 엄마는 말없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나를 데리고 갔을까. 어느 날, 마당에는 핏자국이 떨어져있었고, 엄마는 집을 나갔다. 나는 엄마 품에서 보는 장미를 좋아했었다. 따스한 마당에 쭈그려 앉은 엄마의 품으로 파고 들어 같이 보던 장미. 지금은 핏자국이 같이 떠올라 소름이 끼친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장미는, 그 시절에 다 흩어진 것을. 아빠가 다 망쳐버린 것을. 쓰레기통에 버려진 장미처럼 나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가 나를 찾는 마지막 단서는 회사다. 그러니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다. 내가 왜 그 때문에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다시 눈물이 흘렀다. 시간은 벌써 2시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인다. 나는 계좌번호를 넣고 4를 한 번, 0을 하나, 둘, 셋, 넷, 다섯. 총 6개의 숫자를 누른 뒤 스마트폰을 내린다. 진짜 보내야 하나. 이번엔 얼마나 버틸까. 구역질이 났다. 저녁도 먹지 않았다. 입이 마른다.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 다시 스마트폰을 들고 계좌에 40만 원을 송금한다. 화면을 끄고, 불을 끄고 그대로 앉아 새벽을 맞는다.
나는 그가 돈을 다시 받으러 오기 전까지 회사를 정리해야겠다고, 퇴직금으로 작은 원룸을 얻어서 숨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출근을 한다. 아빠의 구두 소리가 따라오는 듯하다.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나는 담벼락에 매달린 시든 장미를 본다. 그 장미 아래로 붉은 꽃잎이 흩어져 있어 나는 도망치듯 지하철역으로 걸음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