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쩍새, 훌쩍

이상한 브런치 나라에서

by 설애

소쩍새


윤제림


남이 노래할 땐

잠자코 들어주는 거라,

끝날 때까지.

소쩍. . . . 쩍

쩍. . . . 소ㅎ쩍. . . .

ㅎ쩍

. . . . 훌쩍. . . .

누군가 울 땐

가만있는 거라

그칠 때까지.


[출처:중앙일보]


일전, 단종의 자규시에서 자규는 두견새라고 했습니다. 두견새와 소쩍새는 자주 혼동되고 있는데, 분류학적으로 두견새는 뻐꾸기과이고 소쩍새는 올빼비과입니다. 두견새는 낮에 울고, 소쩍새는 밤에 우는데 생김새는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혼동되나 봅니다. 문학에서 쓰이는 슬픔과 한은 밤에 우는 소쩍새에게 기인한 것이 많으나, 이미 쓰인 글에서 그 새가 무슨 새인지를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뒤늦게 이 소쩍새가 그 글의 그 새였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구분하고 수정하려는 의도입니다.


소쩍새를 표현한 윤제림 시인도 노래하던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울고 있다고 합니다. 밤을 채우는 '소쩍, 소쩍' 소리는 '훌쩍'으로 변합니다. 소리가 바뀐 것인지, 듣는 시인의 마음이 바뀐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것도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노래를 하든 울든 가만히 들어주라고 하는 태도입니다. 노래도 끝날 때까지, 울음도 그칠 때까지 있어주라는 그의 말에, 마음이 멈춥니다.


저는 모두가 들어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연주하고, 글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말한다면 누가 들어줄까요? 모두가 라이킷을 원하기만 한다면 누가 눌러줄까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들어주기만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걸까요? 글을 쓰기에도 벅차서, 모두 읽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틈틈이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브런치가 참 이상한 나라라고 오래오래 생각했고, 이 나라는 어떻게 유지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나라에 불쑥 들어온 앨리스처럼, 어느 날은 작아지는 과자를 어느 날은 커지는 과자를 먹기도 하면서, 그렇게 마음이 작아졌다 커졌다 하면서 글을 씁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하고, 댓글에는 열렬히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상한 브런치에서 오늘도 글을 씁니다.

윤제림 시인의 소쩍새가 이제는 다 울었는지 가만히 들어봅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소쩍새 #자규 #단종 #왕과사는남자 #두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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