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준 힌트, 다정한 위로 3
위로를 주고받았던 두 편의 꿈 이야기를 하고 나니, 내게는 친할머니 같았던 돌아가신 고모를 만나 깊이 위로받고 눈물 흘렸던 예전의 꿈이 떠올랐다.
꿈. 햇빛 찬란한 날, 어린 딸을 데리고 들어간 그곳은 너른 마당이 있는 한옥이었다. 내가 다녔던 고모의 어린이집처럼 고운 흙으로 된 마당으로 들어가 툇마루에 앉아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지가 곱게 발라져 있는 미닫이 문을 조심스레 여니, 고모가 예전 그 보료에 앉아 성경을 읽고 계시다가 고개를 드셨다. "고모, 저 왔어요. 그동안 편안하셨어요?" 고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으시며 황해도 사투리로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눈별이 와서!" 고모는 부스럭거리며 신기하게 생긴 한과를 꺼내어 차와 함께 내주셨다. 한과는 담백하면서도 달콤한 특별한 맛이었다. 다과를 나누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해드렸다. 남편과 재미있게 잘 살고 있고, 딸 하나를 낳아서 잘 키워서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결혼할 때 전세금 보태 주셔서 감사했어요. 지금은 남편과 열심히 일하고 알뜰히 모아서 집도 샀어요." 나와 닮은 얼굴의 고모는 나처럼 환하게 웃으시면서 "그래, 수고했구나, 고생 많았다. 푹 쉬고 가거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마당에서 아이와 놀다가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왔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그동안 살았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그간의 삶을 깊이 위로받은 것 같았다. 사랑했던 그리운 분을 꿈에서 다시 만나 그동안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에 오랫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고모는 내겐 친할머니 같은 분이시다. 아버지는 전쟁으로 고향과 어머니, 여동생을 잃은 실향민이자 이산가족이시다. 할아버지, 고모, 아버지만 남쪽으로 잠시 피난을 오셨다가 영영 돌아가지 못하셨다. 이북에서 초등학교 교사셨던 고모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아버지를 어머니처럼 돌보셨다고 한다. 결혼하신 뒤에는 고아원과 어린이집을 운영하시며 전쟁고아와 아이들을 키우셨고, 노년에는 교회에서 장로님으로 교회 일을 하며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 베푸셔서 많은 교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다.
고모는 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다가 유산했을 때, 구불구불한 어르신들 글씨로 성경말씀과 함께 진심 어린 위로의 편지를 보내주셨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녀가 없는 고모는 나를 딸처럼 여기시며 나의 아기를 누구보다 기다리셨기에 당신이 안타까운 만큼 우리를 위로하셨던 모양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 고모는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곧 나는 다시 임신을 했고, 무사히 아기를 낳고 나서 고모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낳은 아기를 보여드리면 당신의 손녀를 보신 것처럼 무척 좋아하셨을 텐데.
글을 쓰다 보니 얼굴만이 아니라 삶도 고모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고모처럼 '모두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지 않은가. 고모의 삶을 물려받아 어머니로서 돌보는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너른 마당이 있는 고모의 집이 있다. 그곳은 커다란 어머니의 품과 같이 나를 포근하게 품어준다. 나는 그 도움으로 나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렇게 세 가지 꿈을 적으면서 꿈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나를 위로하고 나를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꿈은 B 선생님을 위로하게 하고, 친구 J와 마음을 이어주며, 그리운 고모를 다시 만나게 해 주었다. 꿈의 깊은 의미를 완벽하게 헤아리지 못해도 괜찮다. 꿈의 도움으로 세상을 다정하게 대할 수 있고 고단한 삶을 위로받을 수 있으니.
*글쓴이는 융 학파 분석가가 아니며, 이 글은 개인적인 꿈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