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에서 놀이치료실로 이어진 배웅
놀이치료가 끝나고 배웅하던 중, 돌아가던 아이가 갑자기 달려와 포옥 안겨있다가 뛰어갔다. 내 가슴 안에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가 포르르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을 닫고 들어오면서 나의 엄마가 항상 문 앞에서 나를 배웅하셨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때 학교에 갈 때면 엄마는 대문 밖까지 따라 나와서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뒤돌아보면 엄마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나도 같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엄마가 뒤에서 나를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든했고 손을 흔들고 기분이 좋아서 깡충깡충 뛰어간 적도 있었다. 그 느낌은 오래오래, 아직까지도 내 마음 안에 남아있다.
하지만 엄마의 이런 모습이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엄마는 사랑이 많은 만큼 그 거리를 조절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중학생이 되어 가득 찬 교과서로 가방이 무거워지자 엄마는 버스정류장까지 가방을 들어주셨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창피해졌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네다섯 개의 중고등학교로 통하는 등굣길이라 많은 학생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나도 이제 많이 컸으니 내 가방은 내가 들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엄마는 무거워서 안된다며 기어이 정류장까지 와서 내가 버스를 타고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그 길을 지나가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교회 오빠들을 마주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갈림길이 교차되는 그 구간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한 멋있는 오빠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놀렸다. "눈별이, 엄마가 아침에 가방 들어다 주시던데?" 그 말을 듣고 나는 새빨개진 얼굴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화를 냈다. 아마 그때부터는 나 혼자 등교를 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된 후, 언젠가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면서 나는 그때 너무 창피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네가 무거울까 봐 안쓰러워서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지, 얼마나 창피했을까. 미안."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때로는 나에게 너무 부담스러웠던 엄마의 사랑에 대한 원망이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그때 엄마한테 너무 화내서 미안. 엄마 입장에서는 되게 서운하셨겠다."라면서, 엄마가 뒤에서 바라봐 주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외할머니도 엄마가 학교에 갈 때면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골목에 나와 서계셨다는 말씀을 하며 눈빛이 아련해지셨다.
시간이 흘러, 이제 내가 엄마가 되었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나가 그 잠깐 동안 아이는 친구와 무엇을 할 것인지, 엄마는 오늘 어떤 볼 일이 있으며 몇 시에 돌아오는지를 이야기하였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같이 낄낄거리기도 했다. 문이 열리면, '사랑한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내라.' 하는 말과 함께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가방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가방은 스스로 들도록 했고 아이도 잘 따라 주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등교 준비를 마친 아이가 "엄마, 이제 나오지 마. 나 혼자 갈게요." 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그 잠깐 같이 있는 것이 뭐가 어때서?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내가 어리둥절하는 사이 아이는 "다녀오겠습니다!" 하면서 혼자 휙 나가버렸다. 나는 중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어릴 때 엄마에게 화를 내며 나 혼자 가겠다고 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너무 서운했지만 엄마로부터 독립하려는 나름의 시도라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날부터 아이는 집 안에서 인사하고 나가고, 나는 중문 유리 너머로 문이 닫힐 때까지 아이가 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제 나는 모두의 아이들을 배웅하게 되었다. 나의 놀이치료실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왼쪽 뒤편으로 돌면 열 걸음 정도 거리에 있다. 아이가 놀고 나서 부모님과 돌아갈 때, 나는 자연스레 그 열 걸음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와 부모님이 돌아가는 모습에서 잠깐 동안의 상호작용을 관찰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꽤 많은 아이들이 뒤를 돌아본다. 그 순간 내가 손을 흔들기도 하고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주기도 하면 아이들은 웃으며 끝도 없이 뒤를 돌아본다.
초등학생인 아이들도 엘리베이터가 올 때까지 모퉁이 뒤에 숨었다가 나타나 내가 있는지 확인하는 식의 까꿍놀이를 하기도 한다. 까꿍놀이를 통해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경험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애착과 신뢰가 만들어지게 된다. 동시에 분리 불안을 다루면서 건강하게 독립해 나가도록 돕는 치료적 의미가 있다. 따뜻한 배웅은 헤어짐의 확인이 아니라 헤어져도 마음 안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응원이자 격려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가 유난히 더디게 오던 어느 날, 한동안 까꿍놀이를 하던 아이가 갑자기 뛰어왔다. '왜 오지? 뭘 놓고 갔나?' 생각하는 나에게 달려오더니 두 팔을 벌리며 안겼다. 나는 행복한 함박웃음으로 아이를 폭 감싸서 꼭 끌어안아 주었고 아이는 가만히 안겨있었다. 잠시 후 모퉁이 뒤에서 아이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 왔다! 가자!" 아이는 그제야 흡족한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이때 엉뚱하게도 우리 엄마의 마음이 떠올랐다.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는 것은 진심을 담은 응원이며 기도이자 사랑이었다. 나는 엄마의 엄마의, 어쩌면 그 엄마의 엄마의 엄마로부터 전해졌을 그 사랑을 가득 받아 나의 딸이 원할 때까지 충분히 줄 수 있었고, 모두의 아이들에게도 넉넉히 줄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아이들에게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그 사랑이 마르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문을 닫았다. 오래 열려있던 문은 그제야 '삐리리릭' 하며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