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학생이 꿈에서 던진 질문

깊은 내면의 질문과 답을 찾는 여정

by 눈별숲

꿈에서 평범한 남학생과 계단 중간에 서있었는데,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묻는다. 그의 말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나는 눈물이 터져 나왔고 울다가 잠이 깼다. 그는 나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꿈. 잘생기지도, 개성 있지도 않은 평범한 남학생이 나에게 접이식 가방을 사주겠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나는 그에게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순진한 학생의 호의를 거절하기도 어려워 따라나섰다. 그는 내 팔짱을 끼고 '무인양품'에 데려갔다. 재생지로 만든 연필꽂이와 고급스러운 문구세트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나는 부담 없는 단순한 연필꽂이를 골랐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오히려 그의 팔짱을 끼었다. 긴 계단의 중간 층계참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가 무언가를 물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왈칵 울음이 터졌다.



눈별숲 그림, 평범한 남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내가 자다가 소리 내어 울자, 남편은 내가 악몽을 꾸는 줄 알고 나를 흔들어 깨웠고 꿈은 호르르 날아갔다. 그 뒤에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더 울고 싶기도 했는데 아쉬웠다. 다시 잠들었지만 아쉽게도 꿈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거기에서 끝이었다.


안타깝게도 남학생이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질문 같았는데, 도대체 어떤 말이었기에 나는 그렇게 울었을까? 억울하거나 속상하거나 슬픈 종류의 울음이 아니라 나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통찰이나 위로의 의미였던 느낌인데..


그는 겉으로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인물이었다. 요즘 꿈에는 이렇게 소박하고 평범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얼마 전 그림 그리는 문예창작과 학생 아저씨가 나왔고, 그전에는 평범한 회사원 남성이 나에게 음악 이론을 가르쳐 주는 꿈을 꾸기도 했다. 민담에서도 제일 어린 막내나 동네 바보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며, 메시아인 아기 예수는 마구간에서 태어난다. 나 또한 고급 문구세트 대신 재생지로 만든 선물을 선택했다.


접이식 가방과 연필꽂이는 '담아두는 그릇'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융 심리학에서 겉보기에 하찮고 소박한 재료가 안전한 그릇 안에서 반복적인 작업을 거치면서 변화가 되고, 이는 진정으로 나답게 변화되는 힘이라고 했던 것 처럼.


변화의 씨앗이 되는 평범한 남성이 나오고 나는 그들에게 밥을 해주거나 팔짱을 끼면서 가까워진다. 오늘 꿈의 남학생은 나에게 재생지로 만든 단순한 연필꽂이로 그릇을 제공해 준다. 이것이 나로 변화해 가는 중요한 과정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재생지라는 것은 수명을 다한 것을 다시 살려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아! 흥미롭게도 요즘 내가 꿈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적는 꿈노트는 '무인양품'의 재생지 노트이다. 처음에는 수채화도 그릴 수 있는 질 좋은 스케치북이었지만 멋진 그림을 그려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이 있다 보니 겨우 몇 개 그린 후 한동안 그리기를 멈춘 상태였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대충 편하게 그릴 수 있는 무인양품 노트로 바꾸고 거의 매일 간단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꿈을 적는 과정을 통해 바로 그 '반복적인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수수께끼가 하나씩 풀리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남학생은 나에게 뭐라고 말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연필꽂이에 무엇을 꽂을 건가요?", "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세요?" 하는 질문이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떠오르고 나는 깊은 생각을 하며 스스로 대답해 본다. 이런 질문들도 중요한 내용이긴 하지만 그렇게 울음이 터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제 어디로 가세요?" 였을까?

길게 이어지는 계단의 중간을 나는 평범한 남학생과 함께 가로질러가고 있었다. 계단에 대해 연상해보면, 올라간다는 것은 도전이나 성취 같은 것, 겉으로 드러나는 것, 생각, 내려간다는 것은 내면으로의 하강이나 휴식, 감정 같은 것이 떠오른다. 인생의 큰 전환점 중 하나인 갱년기 한가운데 있는 지금의 시점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중간이라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이미 갱년기의 고통의 고비를 어느 정도 넘기며 이를 수용하고 조화롭고 균형 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나의 한계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나의 속도로 가기로 결심하고 나름대로 그렇게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더 올라가고 싶어도 올라가지 못하는 그 한계에 대한 쓸쓸함은 마음 한구석에 항상 남아있다. 혹시 눈물은 그런 의미일까. 그러한 감정에 조금 더 조용히 머물지 못하고 마음이 급하여 너무 빨리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부터 글 쓰고 싶으셨어요?”라고 물었을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동시를 지으며 행복했어요. 동화작가도 되고 싶었지요. 지금은 나의 삶에 대한 얘기를 쓰고 있어요. 항상 미루고 있었는데 드디어 용기 내어 시작했어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40년도 더 된 나의 오랜 꿈을 지금 이루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벅찬 마음이었을까. 나의 깊은 마음을 꺼내보도록 물어봐 준 것이 너무 따뜻해서, 내 마음을 위로받은 것 같아서 그렇게 울었을까.




꿈도 질문도 나의 울음도 그 의미를 선명하게 알 수는 없으나, 꿈을 꾼 것만으로도 깊은 위로를 받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꿈은 영원히 풀 수 없는 퍼즐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그러나 융은 '상징은 변화를 어렴풋이 다시 체험하게 하는 희미한 빛이고, 지나친 명료함은 그 빛을 사라지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이 정도 희미한 생각들로 남겨두자.


나는 이제 선물로 받은 연필꽂이에 연필과 색연필을 꽂고 쓰고 그리면서, 그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가 보기도 하고 내려가보기도 할 것이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꿈의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수많은 질문과 대답들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 의미를 찾는 여정은 계속된다. 살아있고 꿈을 꾸는 한.



*덧붙임: C. G. Jung, 『연금술 연구(Alchemical Studies, CW13)』를 Edward F. Edinger, 『연금술의 상징과 심리치료』(p. 10)에서 재인용한 내용을 글쓴이가 정리한 것입니다.

**글쓴이는 융학파 분석가가 아니며, 이 글은 개인적 꿈 기록입니다.


작가의 이전글꿈: 시장골목으로 이사한 세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