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퇴근길

사랑을 먹이고 싶은 본능

by 눈별숲

퇴근 한 시간 전에 고등학생인 딸이 카톡을 보냈다.

"어머니, 김밥 좀 사다 주세요!”


고등학생이 되더니 평소엔 편하게 말하면서도 카톡을 보낼 때는 '어머니'라고 부르며 존댓말을 한다. 그때마다 어색하고, 거리감도 느껴진다. 많이 컸구나 싶은 기특한 마음 한편으로 이제는 곧 내 품을 벗어나겠구나 싶은 아쉬운 마음이 크게 다가온다.


아이가 김밥을 먹고 학원에 가려면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김밥 가게에 전화를 하여 퇴근 후 바로 찾아가게끔 예약해 두었다. 퇴근길에 서둘러 김밥을 찾아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다가 횡단보도의 빨간불에 멈춰 섰다. 문득 '엄마'인 내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 메모장에 글을 썼던 것이 떠올랐다.

나의 딸이 아기였을 때 이야기이다.



아기를 낳고 병실에서 누워있는데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러 오라는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미리 배워둔 젖 먹이는 방법을 되새겨보며 신생아실에 갔다. 불그스름하고 쪼글쪼글한 작은 아기가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몸 안에 있던 아기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조심스레 아기를 받아서 어설프게 안았는데 손이 떨렸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의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아기는 눈도 뜨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기가 배고프다고 울어서 전화를 했다는데 그새 잠이 들었나?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있자,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의 볼을 톡톡 쳐보았으나 아기는 깨어나 울기만 할 뿐 젖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간호사 선생님은 그냥 분유를 먹일 테니 병실로 돌아가라고 했다.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기가 나를 별로 안 좋아하나, 모유 수유를 실패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이후에도 신생아실에 갈 때마다 아기는 조금 먹는 척하다가 곧 잠이 들었고, 먹으라고 깨우면 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산후조리원에서도, 집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나자마자 2박 3일 동안 병원에서 고무젖꼭지가 달린 젖병으로 분유를 먹었던 아기는 모유를 먹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할 수 없이 기계로 유축하여 젖병에 옮겨 담은 초유를 먹이거나 분유를 먹였다. 한 달 정도 아기와 씨름을 하다가 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다. 교수님은 절대 젖병을 주지 말라며 아기가 배고프면 모유를 먹을 거라고 하셨다.


'작고 사랑스러운 아기가 배고프다고 우는데 어떻게 안 먹일 수가 있을까?', '그러다가 못 먹어서 영양실조가 되면 어떻게 하지?' 잠깐 동안 여러 가지 걱정이 몰려왔다.

"그래도 될까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물으니, 교수님은 장차 육아로 인해 고민할 때마다 걱정을 없애고 마음을 다잡도록 도와준 명언을 남기셨다.

"사람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요!"


아! 그렇구나. 한 번 믿어보자 생각하며 특단의 조치를 해보기로 했다. 아기는 하루 정도 울다가 조금 먹다가 하더니 점점 먹는 양이 늘게 되었고 곧 잘 먹게 되어 금세 토실토실해졌다.


아기가 6개월쯤 되자 다시 출근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네 시간 출근 하니 오가는 시간까지 총 여섯 시간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축을 하여 보관했다가 한 두 번 먹이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젖병 연습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기가 젖병에 먹지 않았다. 아무리 젖병을 톡톡 두드리고 돌려가면서 먹이려 하여도 울면서 뱉어내기만 할 뿐 먹지 않았다. 난감하고 걱정이 되었다. 이미 가기로 했으니 돌이킬 수도 없었다. 배고프면 먹겠지, 제발 잘 먹어라 하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출근을 했다. 오랜만에 혼자 예쁘게 차려입고 외출하는 기쁨도 잠시, 아기가 걱정되어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다. 끝나고 남편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는데 전혀 먹지 않고 내내 울기만 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을 잊을 수 없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그 길을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울다가 지쳐 아빠에게 안겨서 잠들었던 아기는 표정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가여운 그 얼굴을 보니 아기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기는 곧 불어 있던 젖을 잔뜩 먹더니 그제야 편안해 보였다. 이후에도 아기는 젖병을 거부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남편이 아기를 데리고 직장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끝나자마자 차에서 먹이고 집으로 돌아오곤했다.


그 아기는 곧 커서 이유식도 먹고 밥도 잘 먹게 되었으며, 지금은 열 살이다. 혼자도 집에 잘 있을 수 있을 만큼 컸지만 나의 귀갓길은 여전히 늘 빠른 걸음이다.



이 글을 쓴 그때가 아기가 열 살 무렵이었다.

엄마의 마음은 한 살 때나, 열 살 때나, 열여덟 살 때나 항상 똑같구나.

우리 엄마도 쉰 살이 넘은 나에게 반찬과 김치를 준비해 두셨다가 잔뜩 싸 주시는 걸 보면,

우리 딸이 쉰 살이 되어도 엄마인 나의 마음은 똑같겠지?


세대를 넘어 자식에게 먹이고 싶은 본능, 그것은 바로 사랑 그 자체이다.

문득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한다.



눈별숲 그림, 엄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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