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할 수 없는 엄마노릇
"선생님은 좋으시겠어요.
어렵지 않게 아이 키우셨을 것 같아요."
수개월 동안 놀이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의 어머니가 상담을 마치고 일어서며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어머니의 마음이 헤아려져 가슴이 턱 막히는 듯했다.
그 말에는 육아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부러움.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막막함.
아이 키우는 지난한 과정에서 겪었던 자책과 눈물의 시간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어머니, 많이 힘드시죠?
아이 키우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죠.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은 엄마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렵다는 말씀은 그만큼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우고 싶다는 말씀으로 들려요.
그 마음을 가지고 계시니 그것으로 충분해요.
아이 스스로 영글어갈 시간도 필요하니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그렇겠지요?"
그 어머니는 티슈로 휴지로 눈가를 닦아내고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상담실을 나갔다.
'상담자'가 아닌 '엄마'가 되어 퇴근하는 길에 그 어머니와 나눈 대화가 맴돌았다.
그리고 항상 마음에 걸려있던 옛 장면이 떠올랐다.
딸아이가 네 살 무렵이었나, 둘이 외출을 하려고 1층 출입구로 나왔는데, 가전제품 트럭 옆에 커다란 냉장고 박스가 놓여있었다. 항상 아이에게 종이 박스 집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너무 반가웠다. 설치 후 마무리를 하는 기사님께 허락을 받고 박스를 가져가기로 했다.
박스는 정말 크고 무거웠다. 진땀을 흘리며 질질 끌고 간신히 엘리베이터 앞까지 왔다. 아이는 박스집을 만들어준다니까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면서 따라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박스를 반으로 접어서 넣는데, 박스가 너무 커서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무거운 박스를 이리저리 접어도 보고 대각선으로 방향을 바꾸어 봐도 문이 닫히지 않았다.
한참 동안 혼자서 박스와 씨름하다가 진이 빠져 포기하고 억지로 끼워 넣었던 박스를 빼면서 아이에게 이제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 순간 아이가 폴짝 뛰어 엘리베이터에 탔고 곧 문이 닫혔다.
나는 깜짝 놀라서 박스를 집어던지고 열림 버튼을 황급히 두드렸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올라가지 않고 다시 문이 열렸다.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리는데 영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아이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 아이에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랑 같이 타야지! 너 혼자 타면 어떻게 해! 엘리베이터 올라갈 뻔했잖아!!"
아이는 깜짝 놀라 얼어붙어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난 나는 박스를 번쩍 접어들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3층까지 계단을 올라갔다.
아이는 허둥지둥 나를 따라왔다.
마음이 가라앉은 후에 아이에게 사과했다.
네가 놀랄까 봐 엄마가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앞뒤도 안 맞는 얘기 같았지만 우리 딸은 부족한 엄마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었다.
나는 냉장고 박스집 벽에 나무판자 무늬의 시트지와 뽀로로 스티커를, 창문에는 색색의 셀로판지를 붙여주었고, 작은 박스로 선반과 옷장도 만들고 담요도 깔아주었다.
아이는 너무나 즐거워하며 함께 집을 꾸몄다.
좋아하는 인형들의 아파트를 만들어 주었고, 벽에 마음껏 낙서도 했다.
나는 냉장고 박스집 안쪽의 문 오른쪽 옆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그려 주었다.
열림버튼을 아주 크게.
아이는 오랫동안 그 집을 무척 좋아했고 나와 함께 그 집 안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놀았다.
아직도 그 집은 아이방 베란다 한쪽 구석에서 우리와 함께 있다.
아이를 위해 집을 만들려고 했던 거였으면서,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마음에 많이 남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던 순간, 나는 너무 놀라 판단력이 마비되었던 것 같다.
그 화의 밑에는 엄청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해서 화를 내다니 나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정말 싫었다.
때로는 우뚝 서있는 거대한 냉장고집이 엄한 눈초리로 나를 혼내는 것 같아 서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는 진심으로 사과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누구나 화를 낼 수 있지만 사과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아이도 배웠을 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좋은 상담자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많은 책을 읽었다.
책 속에서의 엄마는 완벽했다.
다정하면서도 잘 놀아주는 친근한 엄마였고, 단호하게 훈육을 하면 아이는 곧 순한 양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책에서 본 것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책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도 너무 많았다.
아기는 너무 사랑스러웠지만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자기가 먹고 싶을 때 먹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자고 싶을 때만 잤다. 나는 아기가 울면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맸다. 배부르게 먹였고 기저귀도 갈아줬는데 왜 우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같이 우는 날도 많았다. 엄마라는 역할이 참 버거웠다.
나는 항상 온화하고 인자하고 사랑만 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아이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고 난 다음에는 나의 밑바닥을 보는 것 같았다.
나름 전문가라고 수많은 부모들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특히 냉장고 박스집 사건과 비슷한 일들을 겪을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내 몸에서 태어났지만 아기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적응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아기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나의 한계를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글은 작가의 서랍에 오래 있었다.
한달도 넘게 계속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했지만 아무리 고쳐도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발행할 수 없었다.
이제야 알아차렸다.
부족한 엄마인 내 모습이 아직도 부끄러운가보다.
냉장고집 이야기는 여전히 창피하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세상에 이 글을 내놓아 보려고 한다.
나를 자유롭게 해 주고 용서해주고 싶다.
엄마 노릇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좋은 엄마'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잘 크는 것'이다.
후회와 죄책감이 마음을 사로잡을 때는 아이를 한번 더 안아주려고 한다.
이렇게 선배 엄마가 되어 보니,
내가 수없이 좌절한 만큼 상담실에 오는 어머니들을 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어머니들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초보엄마시절의 나를, 또 지금의 나를 너그럽게 위로하며
상담자로서, 엄마로서 날마다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