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만난 푸른 얼굴의 남자

적당히 착한 사람 되기

by 눈별숲

꿈을 꾸었다. 서울역 한복판에 마른 체격, 파리한 얼굴의 젊은 남자가 지팡이를 짚고 서서 허공에 대고 무어라 말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까이 가보니 눈을 감고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큰 소리로 물었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혹시 지하철역을 찾고 계신가요?"


나는 지하철역에서 왔기에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어 역까지 함께 가주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웅얼웅얼거리는 알 수 없는 말이 되돌아왔다. 몇 번을 더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역무원이 길도 잘 알 테고 공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 이 사람을 역무실에 데려다주고 나는 내 갈길을 가야겠다.



그는 사람이 많은 곳, 공공장소이며 어딘가로 가기 위한 중간 지점인 서울역에 있었고, 나는 그를 발견했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보니 아마 오랫동안 어두운 곳에 있어 햇빛을 못 보았던 모양이다.

잘 먹지도 못한 듯한 마른 체격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보통 말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보인다.

나도 몰랐던 깊은 곳에 있던 나의 어떤 측면일까?


나는 그의 가는 길을 안내해주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내가 알지 못하고 가본 적도 없는 새로운 곳인가 보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고 판단했다.

나보다 그를 잘 도울 수 있는 역무원에게 인도해 주기로 했다.


그를 발견했고,

최선을 다해 그를 도왔고,

내 갈 길을 간다.


나는 이 꿈에서 꿈자아의 적당히 착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무리해서 그를 치료하거나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인도하고 싶은 곳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나의 방식으로 돕는다.


타인을 돕는 행동은 어려서부터 몸에 배어있다.

남동생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나쁜 누나'라고 혼났다.

한 번은 유치원에서 준 간식을 집에 가지고 갔더니 동생 주려고 가져왔다고 칭찬을 받았다.

이후로 나는 간식을 먹고 싶어도 꾹 참고 집에 가져왔다.

부모님께 사랑받는 착한 누나가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내가 가지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일이 많았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가 익숙해서 자각하지 못할 때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런 태도로 인해 버거웠고 늘 피곤했지만, 착한 사람이 되어야 다들 나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딸이 돌이 되기 전에 허리 디스크가 생겼다. 통통했던 아기를 돌보다 보니 무리가 갔던 모양이다. 6개월 정도 치료를 해서 좀 나아졌을 무렵에 여행을 갔는데, 남편이 계속 아기를 안고 언덕을 올라가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남편은 자기가 아기를 안고 있겠다고 했지만 내가 고집을 부려서 아기를 업고 언덕을 올라갔다. 그러고 나서 디스크가 매우 심해져서 몇 달간 친정에 가서 누워서 지냈다. 이후로 나는 아기를 업어줄 수 없었고 지금까지도 무거운 짐을 드는 대부분의 일은 남편이 전담하게 되었다.


남편을 배려하는 착한 아내가 되려고 하다가 오히려 남편을 힘들게 하는 나쁜 아내가 되고 말았다.


꿈에서는 그 남성을 내가 무리하게 책임지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적당히 돕는다.

앞을 못 보는 남성의 파리한 얼굴을 떠올리자, 냉장고의 푸른 불빛이 스쳐 지나간다.

그 남성은 냉장고 안 깊은 곳에 오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동안 착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혼날까 봐 두려워서 나의 욕구와 감정들을 차가운 냉장고에 넣어놓았었나 보다. 그것을 냉장고 밖으로 꺼내면 스스로를 꽁꽁 얼려두었던 감옥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지난번 썼던 '심리학자 엄마의 고백'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이에게 냉장고 박스집을 만들어주려다가 아이에게 크게 화를 냈던 이야기이다. 아이에게 사과하고 함께 예쁘게 집을 만들고 그 집에서 함께 즐겁게 놀았음에도 때로 냉장고 박스집이 우뚝 서서 나를 혼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제는 누가 나를 혼내지 않는다.

내가 나를 혼내지만 않으면 된다.


이 꿈을 꾸기 얼마 전, 합창단에서 공연을 하러 갔었다.

구두를 신고 서서 두 시간 이상 공연을 하기 때문에 관절이 약한 나는 허리보호대와 무릎보호대를 착용한다.

그날은 인터미션이 15분 있어서 중간에 작은 대기실에서 쉴 수 있었다.

합창단은 30명 가까이 되는데, 소파에는 7-8명 밖에 앉을 수 없었다.

마지막 순서로 퇴장하여 보니 아무도 소파에 앉지 않고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하나둘씩 가서 앉기 시작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조심조심 가서 앉았다.

소파의 시트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지만, 조그맣게 긴 숨을 내쉬었다.

드레스 아래로 다리를 살며시 펴보았다.

근육과 인대들이 기지개를 펴며 고맙다고 반짝거렸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푹신한 소파 밑으로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옆에 앉은 선생님이 말을 걸어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2부에는 높은 음도 편안하고 깨끗하게 소리를 잘 냈다.

이번에는 착하지 못한 행동으로 인한 부끄러움보다 나 자신을 잘 돌보았다는 흐뭇한 마음이 조금 더 컸다.


아!


내가 그날 소파에 앉았기에 그 남성이 냉장고에서 나올 수 있었을 수도 있겠다!




서울역 한복판에 나타난 그 남성은 이제 어디로 갈까?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까?


궁금하지만 역무원에게 맡겼기에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원하는 곳으로 잘 가서 잘 살게 되기를 바랄 뿐.


혹시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알아볼 수 있을까?







*심리학자 엄마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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