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푸른 얼굴의 남자

마당 가득 반짝이는 별

by 눈별숲

어느 날, 꿈에서 그 남자를 다시 만났다.


[꿈에서 만난 푸른 얼굴의 남자] 글을 쓰고 나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밥을 하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상담실에 출근하여 상담을 하고, 합창 연습을 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과 꿈 사이에 덩치가 큰 남자가 다섯 살인 나를 들어 올려 어깨에 태우고 놀아주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 남자의 얼굴은 연둣빛이 도는 푸른색이었고 프랑켄슈타인처럼 군데군데 상처가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바로 냉장고에서 나온 그 푸른 얼굴의 남자였다!


그렇게 헤어진 것이 아쉬워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궁금했던 터라 정말 반가웠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짧은 한 장면뿐이어서 아쉬운 마음이 컸다.


다시 꿈에 나와 주려나?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이야기를 언젠간 써봐야지 생각하였고 또다시 일상은 흘러갔다.


얼마 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생이 전화를 했다.

"누나,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아."


아버지는 새해에 연세가 87세가 되시는지라,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전화를 받으니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긴장이 되었다.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시며 의식을 잃으셨다가 잠시 주무시고 나서 의식을 되찾으셨다고 한다. 응급실 의사는 연세가 많으셔서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검사 결과 판독이 나오는 동안 별일 없으실 거라며 퇴원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바로 괜찮아지셨지만 나는 너무 놀랐는지 그 다음날부터 많이 아팠다. 독감이 전염된 것도 아니었는데 독감에 걸린 듯 온몸이 몹시 아팠다. 조금 지나자 평소 아무 문제없던 어금니의 치통까지 올라와서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다. 항생제를 며칠 먹고 그래도 조금 나아질 무렵, 그 와중에 예약해 놓은 여행을 가려고 비행기를 탔다. 따뜻한 나라에서 요양을 하러 간 셈이었다. 여행이 끝날 무렵에서야 몸이 조금씩 회복이 되어 다시 추운 우리나라로 돌아왔고 며칠간 오래오래 잠을 잤다.


그 남자는 꿈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자꾸만 떠올랐다.

나는 그동안 집안일을 하고, 직업 생활을 하고, 가족을 돌보고, 여행을 가고, 아프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이런 일들을 겪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뿐인데, 꿈의 그 남자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그 남자가 떠오를 때마다 눈을 감고 그 장면을 조금 더 자세히 그려보았다.


파리한 얼굴은 5월 초의 새 나뭇잎 같은 연둣빛으로 생생해져 있었고, 마른 체구는 거인처럼 큰 몸집으로 커져 있었다. 얼굴의 상처들은 아물어가는 듯 꿰맨 흔적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가 나를 번쩍 들어 올리자 나는 '까르륵!' 하면서 웃었다.

그곳은 내가 다녔던 고모의 어린이집, 내 마음속의 너른 마당이었다.


내가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시고 미소를 지으며 고모가 다가오셨다.

돌아가신 고모는 상견례 때처럼 화사한 재킷에 진주목걸이를 하고 계셨다.

꿀짱구를 간식으로 주시며 맛있게 먹으라고 하셨다.


나는 봉지를 뜯어서 손가락에 꿀짱구를 하나씩 끼웠다.

자랑스럽게 손가락을 활짝 펴 보인 다음, 손가락에 있는 과자를 한 개 먹었다.

그가 신기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우스웠다.

나는 기꺼이 다른 손가락의 과자를 그에게 나눠주었다.

그러고 나서 봉지 안에 들어 있던 과자를 다 먹었다.

오도독, 오도독 부서지는 소리가 경쾌했다.


흙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작은 돌이 눈에 띄었다.

돌로 흙에 아무렇게나 선을 긋다가

엄마가 집에서 연필을 떼지 않고 별모양을 휘리릭 그리는 게 부러웠던 생각이 났다.


엄마가 어떻게 그렸더라..

한참 동안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다가 마침내 방법을 찾아냈다.

마당 가득 별들이 반짝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만세를 부르며 깡충 뛰었다.


별.heic 눈별숲 그림, 마당 가득 빛나는 별


그네의 쇠사슬이 햇빛에 데워져 쇠냄새가 피어올랐다.

나는 따뜻한 쇠사슬을 잡고 나무판을 딛고 일어서서 천천히 다리를 굽혔다가 폈다.

그네는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더 힘차게 다리를 굴렀다.


따뜻한 햇빛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감싸 안고 지나갔다.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이 몽실몽실 떠 있었다.

나는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1. 심리학자 엄마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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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에서 만난 푸른 얼굴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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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꿈이야기: 너른 마당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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