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렘브란트
얼마 전 독서 모임 책은 서양미술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바로크 시대의 미술, 특히 렘브란트 판 레인 부분을 읽다 보니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음악들이 귀에 맴돌았다. 나는 책을 덮고 일어났다. CD장의 바흐 코너에는 30년쯤 되어 겉면이 깨지고 꺼끌 해진 음반들이 꽂혀 있었다.
20대 중반 무렵, 동네 지하상가 길목에 종종 들르는 한 평 정도되는 아주 작은 레코드 가게가 있었다. 내가 첼로 레슨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가 주인 언니가 악기에 관심을 보이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사방이 온통 음반들로 가득한 비좁은 가게에 마주 앉아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내 취향에 맞는 명반이나 새로 나온 음반들을 추천해 주셨다. 돌아보면 그분은 나의 귀한 스승이셨고 덕분에 좋은 음악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바흐를 처음 만나게 되었고 여전히 그 음악들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들이다.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BWV 1043), 관현악 조곡(BWV 1066-1069), B단조 미사(BWV 232)의 얽히고설킨 푸가가 제자리를 찾아 마무리되는 순간이면, 복잡한 머릿속이 차분하게 정리되는 것 같았다. 골드베르크 변주곡(BWV 988)을 들으면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 같았다.
바흐의 음악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던 그때의 나에게 큰 위안을 주는 위로자였다.
바흐를 좋아했던 것과 달리 렘브란트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에 갔을 때 벽 꼭대기까지 걸린 수많은 휘황찬란한 그림들 사이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은 크게 나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런던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서 만난 렘브란트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63세 자화상을 만났을 때 솔직히 별 감동이 없었다. 무심하게 그 자리에 앉아있는 렘브란트의 모습은 그저 잠옷 같은 옷을 입은 늙고 피로한 사람 같은 인상이어서 아름답지 않아 보였고, 그림을 보는 내 마음도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다. 전시장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공기도 탁하게 느껴졌고 힘들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내가 그림을 볼 줄 몰라서 그러는지, 내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그 그림을 지나쳤다.
책에서 '렘브란트는 젊은 시절에는 많은 인기를 누렸으나, 의뢰자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그림을 그리면서 외면을 당하기 시작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가족도 잃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심각해져 갔다'는 대목을 읽으며 궁금했다. 그래도 생계를 위해 잠시 타협할 순 없었을까.. 나였어도 내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유령처럼 그리거나, 단체 초상화에서 나를 구석자리에 작게 그리는 화가에게 비용을 주고 초상화를 맡기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러나 노트북 화면을 통해 렘브란트의 유작이자 미완성작으로 추정되는 그림인 [성전의 시므온]을 본 순간, 그 생각은 곧바로 사라졌다. 마음에 바위 같은 묵직한 것이 천천히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림을 보자 시므온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시므온이란 사람은 대체 누군데 왜 성경에 갑자기 등장했다가 사라졌을까, 예전에도 궁금한 마음을 잠시 가졌던 기억이 있어 다시 성경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있었다. 그는 주께서 보내시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다. 그가 성령의 인도로 성전 안에 들어갔을 때에, 마침 아기의 부모가 율법이 정한 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시므온이 아기를 자기 팔에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주님, 이제 주께서는 주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이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것은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누가복음 2:25-32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시므온은 예언을 받고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렸고 마침내 만나게 되었다.
늙은 시므온의 주름진 피부, 크게 떠지지 않는 눈꺼풀, 아기 예수를 받쳐든 굽은 손가락 마디마디 안에 평생의 기다림이 그대로 담겨있다. 작게 벌린 입에서는 감격의 탄식이 터져 나오는 듯하다.
그는 타인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자신의 깊은 내면을 그림에 그렸다.
렘브란트는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렸던 시므온이었고 죽기 전에 그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렘브란트를 따라가다 보니 시므온 이야기를 쓴 시에 곡을 붙인 바흐의 곡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충분하다 Ich habe genug (BWV 82)
https://youtu.be/Q_5DG9BD-SU?si=Kt8Rk7mi6-Mcyi88
남성의 굵고 묵직한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이 노래의 내용은
굳이 가사를 번역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늙은 시므온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덤덤하게 노래한다.
따뜻하고 온화한 현악기 소리 가운데 들리는 청명한 오보에 소리는 아기 예수를 떨리는 두 손에 받쳐 든 늙은 시므온의 주변을 나비같이 맴돈다.
그의 영혼이 지난한 인생의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 마침내 하늘로 돌아갈 시간을 준비하는 듯하다.
봄날처럼 평온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눈앞에 그려진다.
나의 젊은 시절, 인생의 불확실함과 불안을 견디게 해준 바흐의 음악은
중년의 내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주었다.
두 예술가는 성경의 인물 시므온을 통해 나의 마음에 깊이 다가왔다.
렘브란트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여주었고,
바흐의 음악은 여정의 마무리를 들려주었다.
나도 언젠가 나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다.
문득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게 마음의 중심을 향해 한결같이 살다가 평온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