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킥 글쓰기
“킥!"
조용한 지하철에서 혼자 빵 터졌는데 웃음을 참으니 이상한 소리가 났다.
저쪽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스윽 쳐다보았다.
상관없었다.
답답했던 나의 머릿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네 명의 상담자가 참여하는 온라인 세미나를 시작했다.
A선생님과는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지만, B, C 선생님과는 처음 만나 친해지는 중이다.
그중 B선생님은 공부할 때 도움을 많이 주시기도 하고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하여 가까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말수가 적은 편이라 괜히 어려운 느낌이 있다.
어떤 일이 있어 내가 점심을 대접하기로 했다. B선생님이 브런치 식당을 추천해서 가게 되었는데, 유명한 맛집인지 자리가 가득 찼고 웨이팅도 있었다.
화면으로만 보던 선생님들을 밖에서 이렇게 따로 만나니 낯설고 어색했다.
역시 나는 낯가림이 심해서 사회생활에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왔다.
B선생님이 여기는 라쟈냐가 유명하다고 하더니, 자기가 여기 자주 와서 잘 안다며 스테이크, 피자, 샐러드 등을 주문해서 나눠 먹자고 했다. 그러면서 종류까지 다 골라서 어쩌다 보니 메뉴가 정해졌다. 나는 먹고 싶은 것이 따로 있었지만 굳이 지금 아니어도 먹을 수 있으니 괜찮았다.
음식이 나오자 우리는 정답게 사진을 찍고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특히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각자의 사연들이 정말 흥미로웠고, 이렇게 만나게 된 인연이 참 소중하다 여겨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누가 뭘 묻기만 하면 내 입에서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A선생님이 나보고 먹으면서 이야기하라고 말할 정도였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내가 커피도 마시자고 했더니, B선생님이 할 일이 있어서 곧 가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급해졌다.
내가 재미나게 하던 이야기가 있어서 마무리를 하려고 정신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세 사람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너무 감동적이라 소름이 돋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응이 좋으니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자꾸 생각이 나서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러다가 B선생님이 주섬주섬 가방을 찾으시는 모습에 말하다 말고 정신이 들었다.
내가 너무 길게 이야기했구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모두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가는 길에도 B선생님에게 아까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했다. 다른 분들도 아까 더 듣고 싶었다며 질문을 이어갔다.
지하철역에 다다르자 B선생님은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한 번 보았다. 나중에 더 이야기하자는 간단한 말을 남기고 마침 다가온 택시를 잡아 타고 휭 사라졌다. 다른 선생님들도 다른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러 휙 가버렸다.
나는 혼자 지하철을 타서 구석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내 몸이 뻣뻣하게 굳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눈치 없이 혼자서 신나서 떠들어댄 것 같은 생각이 들며 너무 부끄러워졌다.
'내가 너무 말이 많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였나?'
‘아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생각들이 먹구름처럼 걷잡을 수 없이 뭉게뭉게 커져갔다.
타고난 내향인인 나는 예전부터 모임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었다.
말할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예의 바르게 기다렸다.
오죽하면 대학 때 독서모임에서 외향적인 친구가 나에게 말 좀 하라고 하면 그제야 말을 했다.
잘 들어주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거라고 여겼다.
아니, 듣는 것이 그냥 익숙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관심 없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있을 때는 그것이 노동같이 여겨졌다.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말할 기회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벌써 50년이 넘게 살았으니 앞으로 말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하고 싶을 때는 말하고, 듣고 싶을 때는 들으려고 노력한다.
쉽지는 않다.
말을 할 때는 즐거운데 하고 나서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특히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남들이 나를 안 좋게 볼까 봐 걱정이 되는 건가?
나와 맞지 않는다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짧은 인생,
잘 맞는 사람과 놀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말은 이미 내 입에서 떠나 그들의 귀로 들어갔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말들을 곱씹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한숨을 길게 열 번쯤 쉬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억지로 앉아계셨던 건 아닐 거야, 아까 많이들 웃으셨잖아.
정 급하면 먼저 일어나도 되는 거니까.
여기까지 생각했는데, 갑자기 B선생님이 메뉴를 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으로 고른 것이 떠올랐다.
조금 얄미웠다.
그거, 내가 말 많이 한 걸로 퉁쳐!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웃음이 빵 터졌다.
"큭큭큭큭~"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물이 찔끔 났다.
괜찮아.
다음 모임에서는 조금 덜 나대면 되지.
사실 늘 그렇게 다짐하지만,
재미있는 주제가 나오면 말을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나대면 좀 어떤가.
그저 자연스러운 내 욕구인데 숨길 필요 없잖아.
그러고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렇게 많은가 보다.
마음 맞는 사람들에게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시간이 나는 정말 즐거웠구나.
내 안에는 50년 묵은 나의 이야기들이 밖으로 나오고 싶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글을 써야겠다.
글쓰기는 시간제한도 없고 눈치 볼 필요도 없으니.
그리고 나는 '브런치 작가님'이잖아.
그때 B선생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눈별님~ 오늘 점심 정말 맛있었어요.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을 좋아하는 선생님들에게 맛 보여드릴 수 있어서 참 행복했어요.
다음에는 제가 식사 대접할게요. 그때는 여유 있게 이야기해요.
다음 세미나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