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전례복을 덧입고
작은 성당에서 합창 공연을 시작하려고 앞에 섰는데,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잔뜩 기대에 부푼 어린아이들 같이 얼굴에서 빛이 났다.
오르간 전주가 성당 안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들어간 합창단은 예술의 전당과 롯데콘서트홀 같은 곳에서 공연하는 큰 합창단이었다. 2년 활동하고 나서 지금의 합창단으로 옮기게 되었다. 규모가 작은 새 합창단은 부담이 적고 편안했다.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재미도 있고 사람들과도 가까워졌다.
그러다가 지휘자 선생님이 나에게 라틴어로 된 가톨릭 전례 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다른 합창단도 함께 하자고 제안하셨다.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지만 배워보고 싶은 분야이기도 해서 용기를 내어 시작하기로 했다.
처음 연습을 가기 전날 밤에 꿈을 꾸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꿈은 앞으로의 길을 밝혀주는 예언 같았다.
꿈. C이사장님이 나를 찾아와서 높은 사람들이 오는 중요한 저녁식사에 나를 초대할 테니 멋진 옷을 차려입으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내 옷장을 열어보았더니 소박하고 평범한 하늘색 원피스 밖에 없었다. 옷이 없다고 했더니, 이사장님이 준비해 놓았다고 해서 찾으러 나갔는데, 건물이 너무 넓어서 이곳저곳 헤매 다녔다. 어느 방에서 옷장을 발견하고 문을 열었는데, 성가대 가운같이 생긴 전례복이 몇 벌 걸려있을 뿐이었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그냥 내 하늘색 원피스를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꿈의 의미는 알쏭달쏭했다.
귀한 저녁식사에 가야 할 것 같은데 그에 걸맞은 옷이 없다니, 어떻게 하지?
멋진 옷은 찾지 못했지만, 예전에 교회 성가대에서 입던 가운과 비슷한 전례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색 원피스는 소박하다 못해 낡아서 볼품없어 보일 수도 있기는 한데, 내가 좋아하는 색상과 디자인이어서 많이 입고 자주 세탁했을 것 같다.
멋지고 큰 홀에서 대규모 편성 오케스트라와 공연하지는 못해도 합창단에서 나답고 편안하게 노래하면서 살면 된다는 꿈인가 보다 생각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아담하고 울림 좋은 연주홀에서 정기연주회까지 잘 마쳤고, 두세 군데 성당 초청연주회도 했다.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했는데 성당 분위기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무대에 연주대형으로 섰는데 신자석이 유난히 가까웠다.
작은 성당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많았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베 마리아'를 부르는데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노래 사이,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던 한 여성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전날 꿈에 어떤 것의 이름으로 등장했던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populae'
실제 단어는 아니지만, '~ae'로 끝나는 것을 보니 영어의 'popular'와 비슷한 라틴어인가?
대중의? 많은 사람들의?
내가 지금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하고 있다는 뜻?
마음 깊은 곳이 뭉클하고 움직였다.
이들은 '관객'이 아니라 '신자'들이었다.
그 빛나는 시선들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뒤의 십자가를 향한 것이었다.
모두가 함께 호흡하고
모두가 함께 노래하고 있었다.
노래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신의 은총을 구하는 정성 어린 기도였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하나가 되어,
가족 공동체처럼 한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감히 기도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구나.
내 하늘색 원피스 위에 영혼의 전례복을 덧입고서..
공연이 끝나고 며칠 후에 다시 꿈을 꾸었다.
꿈. 시골장터에 계실 법한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커다란 다라이에 가득한 도넛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었다. 합창연습을 가는 우리 일행을 부르더니 도넛을 먹고 가라고 했다. 가장 작은 것을 하나 집어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도넛 하나를 더 집어 들고 밖으로 나와 한입 먹으니 둥근 빵에 베어 문 자국이 났다. 달콤한 검은 팥소와 쫀득한 흰 찹쌀이 어우러진 그 맛이 마치 천국의 음식 같았다. 우리가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던 수많은 노인들이 도넛을 먹으러 모여들었다. 우리는 밖에서 함께 웃으며 합창연습을 했다.
분석시간에 이 꿈을 가져갔다.
도넛을 먹으러 몰려오는 노인들 장면을 이야기하다가, 그 성당의 어르신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은 성당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왜 우는지 분석가 선생님께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니,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꿈에서 사람들이 도넛을 먹으러 모여드는 장면,
그러고 나서 웃으며 합창연습을 하는 모습.
그것이 나의 눈물에 대한 설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