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속에 가둔 완벽주의
"아유, 아니에요~ 저는 노래 못해요. 제가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나는 두 손을 내저으며 칭찬을 사양했다.
합창 연습이 있던 어느 날,
노래를 잘한다는 칭찬을 여러 명에게서 들었다.
단원들끼리 격려차원에서 서로 잘한다고 칭찬할 때가 있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옆자리 사람은 오늘 노래가 어려웠는데 내 덕에 잘할 수 있었다며 고맙고 내가 부럽다고 했다.
지휘자 선생님은 지난 연주에서 파트를 갑자기 바꾸었는데도 정확한 음정으로 소리를 잘 냈다고, S선생님도 내가 잘했다고 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요즘 들어 목소리가 시원하게 나지 않고 답답한 데다가 고음 올라가기가 힘겨운 느낌이 있는데, 그 날 연습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모두 진심이 아닌 인사치레 같이 들렸다.
집에 오는 버스에서는 오히려 속상하기까지 했다.
'나는 악보도 꽤 잘 보고 음정, 박자도 괜찮은 편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발성이 문제야.'
'오래된 습관을 고치기가 어렵고, 실제로 나아지는 것은 없는 것 같아.'
'내가 과연 노래를 잘하게 될 수 있을까!'
창밖에는 둥근 달이 따라오고 있었다.
찌그러지고 못생겨 보였다.
너무 피곤해서 눈을 감았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꿈에 검은 옷을 입은 마법사가 예쁜 포장지에 담긴 선물을 주었다.
"흐흐흐~ 이것은 '자칼'이다. 치명적인 독이 들어있지!"
딸과 함께 먹으려고 했던 퐁신한 치즈케이크 위에 검은색 벌레 두 마리가 앉아있다.
나는 벌레들을 보고 그것이 바로 '자칼' 임을 알아차렸다!
치명적인 독이 퍼져 있을 텐데..
걱정하는 사이 딸이 손으로 벌레를 집어낸다.
깜짝 놀랐으나 딸의 손에 독이 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미심쩍으니 케이크는 버리는 것이 안전하겠지.
자칼이 나오지 못하도록 조심조심 유리병에 넣는다.
꿈의 마법사는 나에게 선물을 보냈다.
예쁜 포장지로 싼 치명적인 독이 든 자칼을.
독은 잘 사용하면 약이 될 수도 있다.
위험한 것이라고 했지만 내가 잘 다룬다면 나에게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자칼이 뭘까?
먼저, 어둠 속의 무시무시한 검은 맹수가 떠오른다.
나를 위협하고 경고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치명적인 독이라니.
내가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와 같은 달콤함과 즐거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있는 걸까?
전날 어떤 일이 있었더라...
노래 잘한다고 칭찬받았으나 오히려 속상해했던 일이 퍼뜩 떠오른다.
"후우~"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치명적인 독을 지닌 자칼은 어제의 그 모습이었다.
칭찬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의 장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더 잘하라고 나를 채찍질하는,
완벽주의적인 면일 수 있겠구나.
그래서 내가 처음 노래를 시작할 때의 그 감동과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항상 부담이 되었었구나.
머리가 띵해졌다.
이 자칼을 어떻게 하지?
분명 맹수이고 치명적이라고 했는데, 딸아이가 손으로 집어내도 아무 문제없었다.
내가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있었을 수 있다.
자칼은 검은 맹수가 아니라 '벌레'다.
벌레라고 이름을 다시 붙여주고 나니 왠지 그 강력한 힘이 내가 다룰 수 있는 크기로 줄어드는 것 같다.
벌레는 죽이지 않겠다.
벌레 두 마리의 이름은 '자기비판'과 '완벽주의'라고 붙여준다.
그리고 유리병의 마개를 꼭 잠그는 모습을 상상했다.
나의 기쁨과 즐거움을 앗아가는 벌레들이지만, 자기비판과 완벽주의는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나의 잘하는 점은 칭찬해 주면서도 부족한 점은 보완하도록 노력해 보자.
우선 작은 목소리를 보완하려면 코어근육이 중요한 것 같으니 매일 조금씩 호흡연습을 꾸준히 해야지.
나의 자기 수용과 코어근육이 좋아질수록 유리병 안의 벌레는 그 독성을 잃고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케이크는 버리지 말자.
칼로 벌레가 닿은 윗부분을 동그랗게 도려내고 나서 맛있게 먹어야지.
나는 음악대학을 나온 전공자도 아닌데,
악보도 꽤 잘 보고 음정, 박자 잘 지켜서 노래할 수 있고, 실력 있는 합창단에 스카우트도 되었잖아.
이 정도면 잘하는 거지.
내 얼굴에 미소가 지어져 있다.
다음에 또 칭찬받으면 뭐라고 할지 대답을 미리 생각해 보았다.
'어머~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호흡 연습을 꾸준히 했더니 소리가 좀 나아졌나 봐요. 호호호~'
"휴우~“
홀가분하다.
예전에 꿈을 공부하기 전에 이 꿈을 꾸었다면, 불길한 꿈인가, 나에게 재앙이 닥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불안했겠지.
하지만 이제 꿈은 나의 삶을 함께 하는 친구이자 스승이다.
꿈은 나를 돕기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독을 주었을 것이다.
이 독 덕분에 달콤한 나의 삶을 좀 더 깊이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자칼과 독에는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수많은 다른 가능성들이 머릿속에 구름처럼 가득하다.
앞으로 두고두고 생각해보아야 할 나의 생각거리들이겠지.
이번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초코 토핑 두 개가 올라간 치즈 케이크로 준비해야지.
*글쓴이는 융학파 분석가가 아니며, 이 글은 꿈분석 글이 아닌 꿈을 꾸고 나서 떠오른 생각을 적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