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자아의 탄생과 성장 3
대기실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공연에 늦어서 연주를 못하게 되다니! 게다가 '나 대신 연주할 다른 첼로 연주자가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공연을 못하게 되어 아쉬워하기보다 오히려 안도하는 것 같아 보이는 점이 의아하다.
꿈. *나는 첼로 연주자인데 공연을 하러 간다. 엄마 친구인 권사님이 같이 가자고 해서 내키지 않지만 버스를 타고 따라간다. 좁은 대기실이 사람들로 북적여서 정신이 없다. 커튼을 열어보니 창밖으로 흰 양복을 입은 목사님과 신도들이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멀었구나 하고 멍하니 있다가 다시 커튼을 열어보니 지휘자님과 단원들이 연주 대형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 어머나! 늦었다. 다행히 다른 첼로 연주자가 한 명 있으니 내가 없어도 되겠지. 왜 안 나왔냐고 하면 뭐라고 할지, 몸이 아파서 못 갔다고 핑계를 대야 할지 걱정한다.*
처음부터 마지못해 따라나섰고, 대기실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사람이 많다고 힘들어했고, 멍하니 앉아있던 것도 이상하다. 공연을 하기 싫었나? 왜 그랬을까?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자면, 나에게 있어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 예술활동을 타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첼로는 예전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몇 년간 연주했었으나 지금은 하지 않은지 오래된 악기여서 익숙하지 않고 다시 할 자신도 없다. 해본 지 오래되어 자신 없는, 공개적인 예술활동이라면 브런치에 글쓰기도 비슷하겠다.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나에게 권사님이나 흰 양복을 갖춰 입은 목사님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높은 기준에 맞아야 한다는 생각, 티끌 없이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과 관련되는 것 같다. 여기에다가 많은 신도들이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사실 얼마 전, 초코 비누 이야기를 쓰고 나서 놀이치료실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머릿속에 글감으로 떠올랐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빨간 불이 들어오며 브레이크가 걸렸다. 상담 내용은 비밀보장이 제일 중요한데 치료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써도 될까? 익명으로 연구나 출판, 강의에 사용될 수 있다는 동의를 받기는 했지만 다른 분야이므로 새로 받아야 하나? 아니면 가상의 이야기? 소설의 형식으로 써야 하나? 고민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우습다. 쓰기도 전에 윤리적 기준에 맞는지 아닌지를 고민하면서 머릿속에서만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할까? 아무도 관심이 없으면 어쩌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 그림을 사람들이 좋아할까? 내 그림을 비웃으면 어쩌지? 내가 없어도 다른 첼로 연주자로 공연을 할 수 있는데 굳이 나도 써야 할까? 하는 것이다. 이미 오래 고민하다가 용기 내어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완벽주의적이고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는 태도는 나를 항상 따라다니고 있었다.
꿈에서의 저 멍하고 무기력한 태도는 뭘까? 나는 글을 쓰기 싫은 건가? 얼마 전 남편이 아기를 바닥에 던진 꿈까지 함께 떠올라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꿈은 나에게 쓰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다 그만둬버리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아니다.
꿈에서 나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싶었다. 권사님과 함께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 공연장소에 가기 싫었던 것은 아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지 높은 윤리적,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종교행사에서 공연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왜냐하면 그럴 때 나는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복잡했던 내 마음이 정리되고 치유되는 과정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고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즐거워하거나 위로를 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자. 나는 이미 충분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인간이라 항상 나를 꽁꽁 동여매는 게 문제였지 않나. 어차피 완벽하게 쓸 수 없으니 완벽하게 쓰려고 하지 말자. 예전처럼 머릿속에서만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또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 쓰지 않으면 나에게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남을 만족시키기 위해 쓰지 말자. 내가 원하는 대로 쓰자. 내 글과 그림이 좋은 평가를 받고, 그로 인해 돈도 벌면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지난 꿈에서 피아니스트 A 씨가 충분히 돈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한 것처럼, 그것이 목표가 되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게 된다면, 갓 태어난 소중한 나의 예술적 영감과 창조적 에너지는 바닥에 던져져서 다치게 될 것이다.
꿈이 말하는 것은 그것을 잊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까? 꿈의 의미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만일 아니라면 꿈이 다시 말해주겠지.
하지만 꿈이 뭐라든, 누가 뭐라든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다. 시간이 없다. 죽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선언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쓰고 그릴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음 날. 꿈은 나에게 답장을 보내주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소중한 공간을 위한 안내와 부탁 말씀>
1. 글쓴이는 융학파 분석가가 아니며, 이 글은 해석, 진단, 치료 사례가 아닙니다.
2. 인물, 시간, 장소 등 세부적인 내용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재구성하였습니다.
3. 상징 이해 과정은 주관적인 의견이므로 참고만 부탁드립니다.
4. 공감과 경험 나눔은 환영합니다. 다만 꿈 해석 조언, 질문, 상담 요청은 받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