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이 다녀간 마법 디저트

Impossible Cake 초콜릿 플랑

by 스노리

중탕으로 서서히 열을 올려 습도를 머금은 매끈한 몸이 열기를 벗어나 하얀 접시 위에 뒤집힌다. 부르르 떠는 몸 위로 짙은 캐러멜이 흘러내려 황금 연못에서 샤워하는 르누아르의 여인처럼 탱글탱글한 몸을 휘감는다.

스페인 농가의 가정식인 Flan 플랑은 달걀과 우유, 생크림에 바닐라를 첨가한 커스터드 디저트이다. 차갑게 식힌 플랑을 접시 위에 뒤집어 한두 번 수평으로 왔다 갔다 하면 힘없이 툭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갇혀 있던 짙은 캐러멜이 모든 것을 쏟아낸다.

Crème Caramel 크림 캐러멜로 불리는 프랑스의 플랑은 더 매끈하고 톡 치면 쓰러질 듯 찰랑거리는 촉촉한 커스터드가 입속에서 음미할 사이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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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아무 생각 없이 틀어 놓았다가 멍하게 계속 보게 되는 영화이다. 한국판에 비해 내용도 없고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본판은 더욱 멍하게 보게 되지만, 겨울과 봄을 지나 여름과 가을, 사계절의 공기가 몇 시간 안에 몸을 휩쓸고 지나가 버린다.

도시 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엄마와 살던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들며 자급자족하는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평온한 기다림 속에 계절을 만들어 먹는 영화 속 음식은 정말 맛있어 보인다.

친구가 회사 동료와의 갈등을 이야기하다가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주인공과 싸우는 장면은 일본판과 한국판에서 똑같이 나온다.

일본판에서는 화해의 선물로 난을 만들어 따뜻한 카레와 함께 먹는다. 일본 사람들의 국민 음식이라고 할 만큼 많이 먹는 카레를, 불 위에서 터질 듯이 부풀지만 터지지 않는 난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타츠 안에 들어가 따스하게 나누어 먹는다.

한국판에서는 은행에 다니는 친구의 창구로 크림 브륄레를 들이민다. 설탕을 태워 단단해진 캐러멜이 톡 깨지며 웅크려 있던 부드러운 크림 커스터드와 함께 입 안에 들어가면 얼었던 마음도 달콤하게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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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ème Brûlée 크림 브륄레는 Flan 플랑의 팬시 프랑스 버전이다. 토치로 표면을 태워 황금 갈색으로 변한 케이크의 머리를 스푼으로 톡 하고 때리는 퍼포먼스 덕분에 유행처럼 파인 다이닝의 단골 디저트가 되었다.

스페인의 평범한 가정에서 할머니의 맛으로 불리던 플랑이 이름도 근사한 크림 브륄레로 멋진 레스토랑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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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크림 브륄레

멕시코에도 전해진 플랑은 연유와 크림을 넣어 더 단단하고 농축된 크림 캐러멜로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되고 초콜릿에 환장하는 옆 나라 미국에 물들어 초콜릿케이크를 플랑과 결합한 초콜릿 플랑을 개발한다. 오븐에서 초콜릿케이크와 커스터드가 자리를 바꾸는 Impossible Cake ‘불가능한 케이크’로 불리는 초콜릿 플랑은 꽃봉오리를 닮은 번트 팬에 구워져 멕시코의 대중적인 케이크가 되었다.


방글라데시의 이민가정 출신인 Nadiya Bakes ‘나디아의 행복한 베이킹’의 나디아는 영국 베이킹 경연대회 우승자이다. 자그마한 몸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즐겁게 음식을 만들고 디저트를 만든다.


들뜬 목소리로 전설의 유니콘이 케이크를 굽는다면 마법이 일어나는 초콜릿 플랑을 만들 거라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자리를 바꾸냐고? 나도 몰라. 그냥 매직이야. ”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과 문화적 편견, 심한 불안장애를 극복하고 솔직하고 유쾌한 목소리로 베이킹을 하는 나디아는 따뜻하고 달콤한 음식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치유의 요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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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의 열기가 마술사가 되어 마법의 지팡이를 휘두르면 캐러멜 위에 부은 초콜릿케이크 반죽과 그 위의 커스터드 크림이 오븐 안에서 감쪽같이 자리를 바꾼다. 언뜻 보기에는 무거운 초콜릿 반죽이 수분이 많은 커스터드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되지만, 단백질로 가득한 커스터드 크림이 열을 만나 단단해지며 밀도가 올라가 무거워지고, 초콜릿케이크는 익으면서 공기층이 형성되어 가벼워져 위로 올라간다.

케이크 틀을 뒤집으면 초콜릿케이크가 크림 커스터드를 떠받들고 바닥에 있던 윤기 흐르는 캐러멜이 커스터드를 적시는 마법의 케이크가 만들어진다.


나디아가 호들갑스럽게 팬을 뒤집어 초콜릿 플랑을 잘라 한 입 먹고 말한다.


“That is what baking is all about. 이게 바로 베이킹이란 거지”




크리스털 결정인 설탕은 작은 알갱이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설탕을 녹여 캐러멜화 하면 결정들은 액체화되지만 틈만 나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엉겨 붙으려 한다.

설탕을 녹일 때 타는 것을 걱정해 주걱으로 저어 주면 온도에 틈이 생겨 그 사이로 다시 알갱이가 되어 뭉치고, 매끈한 금속 팬이 아닌 코팅 팬을 사용하면 열기가 고르지 않은 틈새에 끼어 치열하게 알갱이로 돌아가려 한다.

이렇게 매끈한 캐러멜이 되는 것을 거부한 설탕은 하얗게 굳어 crystallization ‘결정화’된다.

결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스테인리스 소스 팬에 설탕을 넣고 잘 펴준 후 물을 묻힌 브러시를 가장자리에 발라주면서 중불에 끓인다. 젓지 않고 팬을 약간 기울여 고르게 갈색이 될 때까지 보글보글 끓이고 준비된 팬 바닥에 부어 준다. 다시금 딱딱해지고 싶은 성질에 금세 굳기 때문에 바로 케이크 팬을 기울여 가며 고르게 펴 팬 바닥을 코팅해 주어야 한다.


초콜릿 반죽을 붓고 커스터드를 위에 부어 주면 서로가 갈망하듯 합쳐지다가 오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과 기름처럼 분리해 버린다. 서로 너무 다른 성격에 뜨겁게 싸우다가 ‘우리는 끝이야!’를 외치며 이별한다.

그래도 커스터드를 초콜릿 위에 부을 때는 초콜릿을 자극하지 말고 살짝 부어 준다. 앙금이 남은 초콜릿이 부드러운 커스터드를 질투해 뽀얀 살 속에 까만 자신의 흔적을 남길지도 모르니...



초콜릿 플랑 만들기


8" (21cm) 원형 글라스 팬

캐러멜 만들기

100g 설탕, 2 tbsp 물

커스터드 만들기

250g 우유, 200g 연유, 2 달걀, 2 달걀노른자, 1 tsp 바닐라 페이스트 (바닐라 엑스트랙 대체 가능)

초콜릿케이크 만들기

70g 설탕, 50g 식물성 오일, 70g 중력분, 30g 코코아 파우더, 30g 우유, 2 달걀, 2g 커피 가루, 1 tbsp 뜨거운 물, 1/2 tsp 베이킹파우더, 1/2 tsp 소금


캐러멜 만들기

1. 소스 팬에 설탕과 물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 황금 갈색이 될 때까지 중불로 끓인다. (젓지 말고 팬을 기울여 가며 끓여 주세요)

2. 준비된 팬 바닥에 바로 부어 주고 굳기 전에 팬을 기울여 바닥 면을 고르게 덮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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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케이크 만들기

3. 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잘 섞어 에스프레소 만들어 둔다.

4. 달걀에 설탕과 소금을 넣고 핸드믹서의 중속으로 섞일 때까지 휘핑한 후 식물성 오일 넣고 색이 뽀얗게 되고 볼륨이 생길 때까지 고속으로 휘핑한다.

5. 속도를 저속으로 낮춘 후 2분 정도 휘핑해 기포를 정리한다.

6. 커피 에스프레소를 넣고 가볍게 휘핑해 섞는다.

7. 밀가루와 코코아 파우더, 베이킹파우더를 체 쳐서 넣고 주걱으로 밀가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섞는다.

8. 우유 넣고 가볍게 섞어 옆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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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터드 만들기

9. 달걀에 우유와 연유, 바닐라 페이스트를 넣고 색이 뽀얗게 될 때까지 중속으로 휘핑한다.

10. 저속으로 낮추고 2분 더 휘핑해 기포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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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굳은 캐러멜 위에 초콜릿 반죽을 넣는다.

12. 커스터드를 조심스럽게 초콜릿 반죽 위에 붓는다. (반죽이 섞여도 괜찮아요. 오븐 안에서 분리된답니다)

13. 팬을 오목한 오븐 팬에 넣고 뜨거운 물을 케이크 팬의 2/3 정도까지 붓고 170°C 예열된 오븐에서 50분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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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실온에서 완전히 식힌 후 냉장고에 최소 3시간 이상 넣어둔다.

15. 나이프로 케이크의 가장자리를 살짝살짝 눌러 분리하고 서빙 접시에 뒤집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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