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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몽 May 05. 2020

"사실 충실성"을 가지고 바라보는 코로나19.

[ 팩트풀니스 factfulness ] 를 읽고.

<A>는 무슨 도형인가? 누가 봐도 사각형이다.

<B>는 어떤 모양인가? 너무 쉬운 질문이라 콧방귀만 나온다며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B>는 원, 동그라미이다.

마지막 질문. <A>와 <B>는 같은가?다른가? 참 어처구니없는 물음이다. 당신은 지금 ‘나랑 장난해!’라며 버럭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이렇게 <A>와 <B>를 보면 이둘이 다른게 사실이다.


자 이제 이 종이를 뒤집어 <C>를 보자. 어떠한가? 정말 <A>와 <B>는 다른가? 바보 같은 질문이라 여기며 웃었을지 모르나 <A>와 <B>는 <C>를 정확히 정면과 위에서 본 형태이다. <A>와 <B>, <C>는 시점은 다르지만 같다. 이것이 사실이다.

내가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의 진실,"팩트풀니스 factfulness"는 바로 사실과 진실에 대한 오해와 이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변화하며 나아가야 할 길에 큼지막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그것도 따뜻함이 가득하고 매우 친절한.


책을 열고 몇 페이지를 넘기면 몇 가지 질문이 있다. 출판 당시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회지표에 관한 상식

을 독자 스스로 체크해보는 질문이다. 교육수준이 매우 높은 집단에서도 오답률이 높았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휴~'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사실이라 여겨왔던 대부분이 이미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과거에 살고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규 교육을 받는 그 시간에서 많은 부분이 멈춰있거나 선별적으로 제공되는 사실을 편식 중이었다. 당연히 나의 사실을 바로 보는 시각은 불균형적인 성장을 한 것이다. 게다가 시나브로 저자가 제시한 열 가지 본능에 젖어들어 이에 충성도 높은 행동자가 되어있음에 소름 돋았다. 아마 독자의 상당수가 나와 흡사한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닭살 돋음!!!'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훨씬 많아. 그래서 세상은 야생의 밀림처럼 물어뜯으며 피 터지게 싸우며 살지는 않아.'라며 아이들에게 세상의 밝음을 이야기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오해는 부끄러워 쥐구멍 찾을 지경이다. 나는 한 술 더 떠 저자의 출제 의도 자체를 지래 짐작했다. 세상의 아픔 그 사실에 주목하라는 질문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문제들을 풀었다. 대체 이건 어떤 본능이 작용한 것일까? 하나 이상의 본능이 동시다발적 오해의 장을 폈다. 부끄러운 마음을 주워 담고 그의 책을 읽으며 나의 안경의 색과 도수를 새롭게 맞춰보아야겠다. 그의 조언에 따라 다급함을 접어놓고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읽어나가자.


저자는 ‘사실 충실성’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사실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하여 세상을 바라봐야 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0가지 인간의 본능이 색안경이 되어 어떻게 우리의 시각과 사고를 흐려 오해와 편견을 낳게 되는지 설명해 준다. 주요 10가지 인간의 본능은 아래와 같다.


< 10가지 인간 본능 >

01.간극 본능: 세상은 둘로 나뉜다.

02.부정 본능 :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주목한다.

03.직선 본능 : 각종 도표의 곡선은 직선으로 뻗어나간다.

04.공포 본능 : 생존을 위한 위험 감지 본능이 존재한다.

05.크기 본능 : 숫자 자체가 주는 크기에 주목한다.

06.일반화 본능 : 우리는 저들과 다 같다.

07.운명 본능 : 타고난 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08.단일 관점 본능 : 단일한 원인, 단일한 해결책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

09.비난 본능 : 안 좋은 일의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 한다.

10.다급함 본능 : 위험이 임박했다고 느낄 때 즉각 행동하게 만든다.

[ 팩트풀니스 factfulness ]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시된 10가지 본능에 젖어들어 자신도 모른 채 이에 충실하며 산다. 이로 인해 사소한 오해와 실수를 하기도 한다. 나 역시 보통의 사람이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갓난아기가 엄마의 젖을 빨듯 본능의 길을 걷고 있기도 하다. 한스 로슬링, 저자도 자신의 경험담을 책속에 여러 차례 소개하며 이 본능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보여준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다섯 가지는
전 세계를 휩쓰는유행병, 금융 위기, 제3차 세계대전, 기후변화, 극도의 빈곤이다.”
[ 팩트풀니스 factfulness ]


2017년 한스로슬링이 내비쳤던 두려움이 고작 2년여 만에 현실이 되었다. 전 세계의 축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이 유행병이 지구 아니 인류의 세상을 통째로 뒤집어 삼켰다. 최초 확진 일로부터 약 4달 이 지난 지금. 우리는 지난 몇 달간, 오늘이 내어준 사실로 곧 펼쳐질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며 준비해야 할지 10가지 본능을 다스리며 이성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1월 29일 베이징발 인천착 비행기에 다급히 탑승했다.
28일 오후에 겨우 발권 후 팽팽히 당겨진 노란 고무줄 같은 심경으로
정말 미친 듯 귀국 준비를 했다.
단 한 가지의 두려움 때문에 좌우 앞뒤를 0.1초도 살피지 않았다.
‘살아야겠다.’ 이 생각 하나뿐이었다.
'우한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북경에 벌써 도착하겠어? 나도 중국 짬밥이 십 년이 넘는데, 
설마 내가 우한에 머물던 2006년 같을까? '
그러나 중국 티브이에 보여지는 지금 우한의 모습, 그 거점병원, 그곳의 사람들, 남편의 지인들이 전해주는 소식들... 그 후로 긍정적 변화가 없었다면...

2006년, 돌쟁이의 고열에 우한의 가장 큰병원을 찾았다. 비루한 응급실과 환자들의 토사물로 엉망이 되어버린 휴지통, 제대로된 체온계도 없는 병원, ‘너 제정신이야? 한국으로 바로 돌아가!’

아이를 안고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앞도 안보고 뛰었다. 서울 시내 응급실로 향하며 초보 엄마는 엉엉 울었었다.

2020년 1월 29일 베이징 공항을 향할 때는 주변 중국인들은 매서운 시선으로 보았다. 주변 사람들을 다 믿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인천공항, 한국에 발이 닿았다. 이젠 주변이들이 나를 중국에서 온 사람으로 본다. 사람들이 나를 위험하게 본다. 혹여 코로나가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에 옷깃에 병을 묻혀왔을지 모를 죄인으로 몰아가는
 
언론과 사회 분위기에 우리 가족은 더 추운 2주의 자가격리 기간을 가졌다.


화선지에 떨어진 핏방울처럼 코로나 19가 번져나가기 시작할때, 나는 북경에서 한국으로 역병을 피해 왔다. 사실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타인이 생각하는 사실은 나와 달랐다.


사건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물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혹여 그것이 나의 잘못으로 발생할 일이라 해도 공범자를 만들거나 기인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가 그리했다. 31번 확진자가 신천지 예배로 대한민국 코로나 확산에 휘발유를 들이부었다. 물론 국가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대죄를 범했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해 비난의 화살을 날려야 하지 않을까? 31번 환자가 없었다면 코로나는 종식되었을까? 그것 역시 모르는 일이다. 코로나 종식을 눈앞에 두고 어디선가 다른 슈퍼 보균자가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잘잘못 가리는 일은 이후에 해도 충분하다.

세상을 마스크를 쓴 이와 안 쓴 이로 쪼개고, 더 극한 상황에만 집중하는 언론, 쭉쭉 뻗어나가는 확진자의 수에 두려움만 커졌다. 우리나라 확진자의 수가 주는 정확한 의미보다는 그 크기에만 집중했다. 중국인의 의식주 문화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그들의 입국금지하지 않은 것이 지금의 상황의 유일한 원인이라 단언하는 사람들도 많다. 단순하게 모든 것을 정부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며 대구에서 확진자 수가 급증하자 그나마 인터넷에서 구매 가능했던 마스크는 광 클릭에도 이내 품절되어버린다. 직선 그래프를 그리며 비싸져만 가는 가격에 공적 마스크라도 구매해야만 한다. 빨리... 그러나 이를 위한 줄이 끝이 없다.


총선 얼마 전까지의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코로나를 바라보는 시각의 온도가 조금씩 높아져갔다. 배려와 이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코로나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성장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된다. 핸드폰을 열면 범람하던 출처를 찾기 어려운 기사와 메시지들이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탓으로 돌리고 하나의 영웅을 찾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잘해나가고 있다 여기는 모습이 사회 전반에서 보였다. '너 아니면 나', '흑 아니면 백'을 목청 터지게 부르짖던 정치권도 조용해지기 시작하고 전 세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한 잡음 없는 총선도 치러냈다. 우리 국민들 모두가 [팩트풀니스 factfulness]를 읽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사실에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보려고들 노력한다는 게 느껴졌다.


코로나19가 아직도 두려운 존재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를 비롯 많은 이들이 직간접적인 아픔을 겪고 있다. 병마가 휩쓸고 지나간 땅이 얼마나 오랫동안 가물어 있을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의 사실이 잉태한 것들을 어떤 기준으로 비교하고 판단하여 앞날을 바라봐야 하는가 이것이 우리가 풀어나가야할 숙제가 아닐까?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고 소통을 통한 사실로의 접근이 필요할 때이다.


긍정 마인드셋을 장착하고 서로를 배우며 끊임없이 내가 가진 사실을 리플레쉬하는 삶, 이것이 저자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전하고자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차가운 숫자가 주는 두려움 이면에 숨어있는 인류의 따뜻함이 분명히 존재함을 믿으며. 당신의 생각은???


우리가 아직 많이 힘든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한다. 세상은 살만하게 변한다.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 세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괜찮다.
세상은 나와 같이 자라난다. 세상은 우리와 같이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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