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또 듣고, 그리고 또 그리워하는 그 순간 이제는 없지만.
다음 달 이사를 해야 한다. 작년 이맘때 이사한 짐들도 정리를 못 마쳤는데 또다시 이사라니. 이참에 미련 덩어리들을 솎아내 볼 생각에 서랍 속을 정리하다 나온 CD플레이어들. 몇 년 전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들을 왕창 깜장 봉지 속에 쏙 던져버렸던 날이 있었는데. 이제 이 아이들과 이별을 할 순간인가 보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CD 플레이어를 꺼내 무릎 위에 살짝 올려놓으면 새로운 세상에 접속할 수 있었다. 20살의 내게 덜컹거리는 버스의 움직임은 색다른 리듬이 되어 또 다른 선율을 내게 전해주곤 했다. 학교를 가는 버스는 광화문을 경유해 서울대병원 앞에 정차했다가 대학로를 지나갔는데, 햇살이 좋은 날은 로또를 맞은 날이었다. 나의 CD플레이어의 은빛이 더욱 반짝이게 되는 날이었다. 이어폰으로 들리는 노래는 마치 공기 중에 산화되어 퍼져나가는 공기방울로 변했다. 나에게만 들렸던 노래는 내 시선이 가는 정거장 옆 벤치에 앉아있는 이에게도 들릴 것만 같았다.
나는 가사가 들리는 노래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한번 가슴에 담기면 며칠이고 듣고 또다시 듣는다. 오늘도 그러하듯 그 버스 안에서도 그러했다. 테이프는 매번 돌려 들었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곡을 빈 카세트테이프에 가득 옮겨 담아 듣기도 했다. 어디서 그런 열정이 뿜어져 나왔던지. CD 플레이어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주었다. 버튼 하나로 듣고 싶은 곡을 계속 들을 수 있었다. 그 첫 경험이란! 그런 아이와 이제는 영영 안녕이라니. 맘 한편이 조금은 눈물에 젖어드는듯하다.
좋아하는 CD 한 장을 사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지. 음반가게를 들어서려 문을 열면 딸랑거리며 울리던 종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데... 이제는 그런 순간들이 존재치 않는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음원사이트에 매달 적당한 금액을 지불하면 세상의 거의 모든 노래들을 들을 수 있다. 참 편한 세상이다. 그러나 참 소원해지는 세상이다. 느린 순간들이 잊혀가는 그런 세상이다. 기다림에 뒤척이던 새벽이 사라져 가는 그런 오늘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마 나는 이 노래를 며칠은 마음에 인으로 남기며 듣고 또 들을 테니까. 창밖은 변해도 나는 그대로 있다.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