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의 각주

세대의 간극 속에서 이어지는 삶의 흔적

by 화몽

기준이라는 건 언제나 유동적이다. 기준 자체가 박쥐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것이 기준이다. 사회적 약속도 우왕좌왕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노령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반면 출생률은 급감해 우리 사회의 연령분포는 이미 무너져버린 상태다. 생활환경의 변환은 또 어떠한가? 매일 새로운 기술들이 나타나며 모든 것들의 생애주기를 싹둑싹둑 잘라먹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속도는 그 어떤 국가보다 빨랐다. 70년대를 이끌었던 우리 부모 세대와 나 그리고 AI와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의 세상에 대한 태도는 같을 수가 없다. 인류 역사 속에 한 세기 이상의 시간적 공간을 두고 이어져 왔던 인류의 역사 속에서 볼 수 없는 간극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 게 당연할지 모른다.


내 동생은 학창 시절 공부와 담을 쌓아놓고 살았다. 담 너머에는 부모님들이 보시기엔 가까이하면 안 될 친구들이 득실거렸다. 달력에는 시험기간보다는 소풍날이 항상 더 크게 표시되었다. 그런 날이 다가오면 평소보다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옷장을 다 뒤집어 이 옷 저 옷 꺼내서 런웨이를 오가더니 우당탕 현관문을 박차가 나갔다. 두어 시간 뒤에 돌아온 동생의 손에는 깜놀할 구두 한 켤레가 들려있었다.


“빨간색 군함이니?” 엄마가 묻는다. 뭐 이런 걸 신발이라고 사 왔냐는 표정이었다. 세상에나, 정말 장미향이 날 듯한 빨간색 구두였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그 구두였다. 소풍날 세상 멋진 스텝을 밟으며 새로운 여친에게 데려다줄 마법의 구두였다. 왕자의 망토 대신 힙합바지를 입고 온 동네를 쓸고 다닐 기세었다. 어른들 눈에는 빗자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포댓자루처럼 보이는 바지를 입고 항공모함 크기의 구두를 신고 신나게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동생을 보고 있자니…


그땐 그랬다. 세대 차이는 항상 있었다.

2천 년 전이나 20년 전에도 있었다.

요즘의 애 어른의 차이가 더 벌어지면 커졌지 줄어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말들이 있다. 길거리에 다니는 요즘 애들의 옷차림을 보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말이 있다. 그때 엄마가 우리에게 했던 말에서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이전 애들이 요즘 어른이 되어 같은 말을 하게 되었다. 어른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낀 나이인 나는 위아래를 이어 나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새로운 것들에 뒤처져가는 부모님들께 요즘 세상을 알려드리며 나조차 요즘 애들에게 물어본다.

요즘 애들은 쉽게 말한다. ‘이것도 몰라?’ ‘이게 왜 어려워?’ ’이거 안 좋아. 왜 새로운 거 안 써?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박쥐가 요즘 어른들에게 툭툭 내던지던 말이다.


돌고 도는 것이 세상이다. 태어나 죽음으로 가는 시간의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유한한 생명은 한세대를 넘어 무한의 시간 속에서 도돌이표 노래를 부른다. 용맹한 요즘 애들은 노련한 요즘 어른으로 자란다. 각 세대는 그들 고유의 고민을 풀어가며 세상을 변화시킨다. 뜨거운 요즘 애들과 차가운 요즘 어른이 만나 적절한 따뜻함을 가진 세상을 만들어간다. 이해 못 할 서로를 인정하며 온기를 나눈다. 그렇게 사람의 세상은 얼키설키 엮어져 간다.

상종 못 할 존재로 흘러가면서 눈높이를 맞춰간다.

살아야 하기에 함께 살아진다.

박쥐는 우리 땐 그렇지 않았다는 각주를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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