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너머에 있는 새로운 길을 향해
그때는 몰랐다. 내게는 분홍빛 봄바람 같은 내일만 기다릴 거라 믿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북경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한가득 안고 떠났다. 그러나 북경의 인상은 기대에서 조금씩 빗겨갔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터져 나오는 낯선 언어가 징소리처럼 귀를 울렸다. 신비롭게 다가온 새로움은 이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3~4년 후면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한 노마드 생활은 20여 년 동안 이어졌다. 달랑 ‘你好’ 한 마디만 익히고 간 중국 생활은 시작부터 계획에서 어긋났다. 삶의 짐은 계절보다 더 빠르게 쌓이고 흩어졌다. 한곳에 뿌리내리기도 전에 다시 짐을 꾸려 떠났다. 정해진 길이 없는 게 삶이라지만, 내 앞의 이정표는 쉴 새 없이 방향을 바꿨다. 워낙 무대포라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살아도 잘 버텼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었다. 다신 국제공항은 쳐다도 보지 않겠다던 내가 돌아온 나라의 의미는 이전과 전혀 달랐다.
웃다 울다, 울다 웃다를 반복하는 것이 삶이었다. 세상 안에서 삶은 이어졌다. 세상일의 대부분은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노력하면 열리는 길이 있었다. 길을 찾을 수 없다 해도, 이 또한 내 선택이었기에 떠돌이 생활의 불확실성은 감당할 수 있었다. 적어도 코로나를 겪기 전에는. 코로나가 손발을 묶어버리기 전에는 수풀을 헤치고 별을 보며 길이 없어도 나아갈 수 있었다.
내게 타지 생활이 주는 의미는 코로나 전과 후로 크게 나뉘었다. 내가 선택한 낯선 삶과, 낯선 삶에 갇힌 나. 자연스러운 귀국이 아니었음에도 작년 여름 인천행이 주는 안도감은 그런 이유였다. 익숙한 둥지는 포근함 그 자체였다. 이곳에 머물러 살아가리라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날들 속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거친 파도가 남긴 자욱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익숙함은 지우개처럼 내 마음을 문질러갔다.
익숙함으로의 귀환은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내게는 그렇다. 편안함과 불편함은 떨어져 있지 않다. 두 감정은 엮여 하나가 되고, 공존할 때 우리는 그 이면을 느낀다. 익숙함은 그 두 감정을 모두 포함한다. 둘의 경계는 모호해 용기를 내기 어렵다. 변화는 두렵지만 동시에 설레는 그 접점이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앞으로 더 깊이 들어설 수 있다. 다르지 않음을 알아차릴 때 비로소 나를 가두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모호함 속에서 새로운 길은 열린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움직임 속에서 나는 어렵지 않게 걷는다. 익숙하게 걷는 나의 뒤에는 수없이 넘어졌던 기억이 남아 있다. 불편하고 힘겨웠던 날들이 쌓여 익숙함을 만든다. 몸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내게 새겨진 날들은 하나의 틀이 된다. 그 틀은 나를 떠나게 하는 힘이 되고, 이러한 반복들이 나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고개 숙인다. 익숙함은 안주함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의 이름임을. 그래서 받아들인다. 삶이라는 길 위에 무엇이 기다리든, 나는 다시 떠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