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2차적 사랑
2차적 사랑의 이면
1차적 사랑만으로 관계가 알맞게 형성되어 2차적 사랑으로까지 포함되던 때도 있다. 그때는 사랑을 성별로 나누어 남자의 남성성과 여자의 여성성으로 사랑을 다르게 분류해서 1차적 사랑을 해도 2차적 사랑까지 연결된다. 성별 따라서 충족되어야 할 특별함과 추구해야 할 사랑의 정의를 내려놓은 것이다. 남자는 가부장적, 남성적인 모습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것을 통해 사랑이 정당화되었고 여자는 가정적인, 여성적인 모습으로 가정생활을 하며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것을 통해 사랑이 정당화되었다. 사랑에 대해서 역할분담을 확실하게 나누어 1차적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었다.
이는 성별로 나뉜 사랑이 옳거나 그른 것에 대한 예시가 아니고 그렇게 분리되었던 사회, 문화가 있었다는 것의 예시다. 지금은 성별에 따른 사랑이 구분되지 않았고 사랑에도 성차별이 포함되어 하나의 성별이 일방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서로에 대한 불평등을 제거하고 남자, 여자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원하는 사랑을 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특정 성별이 무엇을 책임지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기에 오히려 사랑만 놓고 보면 더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단순했던 성별사랑이 개인의 사랑으로 변화를 맞이하면서 사회의 의미부여는 완전한 사랑을 추구하고 2차적 사랑에 더 중요시하기 시작하면서 어려워진 것이다.
문화적으로 성별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에 와서야 좀 더 확실하게 성별에 의한 사랑이 아닌 개인의 고유한 사랑으로 접근할 수가 있다. 과거의 성별사랑이 사회적으로 정당하고 유지되던 1차적 사랑의 시대에는 성별에 따라 특별해지는 요소와 사랑의 요소가 구분 지어졌기에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찾을 필요 없이 대상만 찾으면 됐었다. 그러나 개인의 사랑은 성별로 규정된 것이 없기에 특별함의 3요소와 사랑의 특별함의 3요소도 알아야 하고 1차적 사랑, 2차적 사랑, 불완전한 사랑, 완전한 사랑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뭔지 알기 위해 할 것이 많아졌다. 심지어 원하는 사랑을 알더라도 1차적 사랑으로 개인은 특별해지더라도 관계가 특별해질 수는 없기에 서로가 원하는 사랑에 도달하는 것도 추구해야 된다. 일부 사랑은 정당화될 수도 없는 사회이다 보니 이 복잡한 과정들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자연스레 2차적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는 오해가 생겨났을 수도 있다.
사랑의 특별함과 사랑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면 1차적 사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방향성과 2차적 사랑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랑만 놓고 보면 모두 정답이고 지금은 법적제재를 받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하면 되는 시기이다. 그러니 타인에게 자신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정답이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 물론 강요와 세뇌를 통해 사회의 의미부여가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던 성별 사랑을 다시 정당화하고 추구하다면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완전한 사랑까지 가는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2차적 사랑 -불완전하다.
2차적 사랑은 '사랑은 상대방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사랑은 내가 특별해지기 위해 하는 것'과 놓고 보면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1차적 사랑이 배제된 2차적 사랑의 실상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행함으로써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행위로 자신이 특별해지는 것이다. '자신으로 인해서 누군가 특별해지는 것'을 통해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행위다.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해서 헌신적으로 맞춰주는 것의 표현을 달리하면 상대에게 맞춰주는 자신을 진정으로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되고 관계형성이 안 돼도 되기에 연인관계에서의 짝사랑, 봉사정신에 속하며 그것이 정녕 자신이 특별해지는 길이라면 부정할 수는 없으나 사회가 추구하는 완전하고 특별한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베풀면서 욕구충족이 되는 사람이라서 잘 맞아떨어질 수는 있으나 사람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남이 될 수가 없기에 2차적 사랑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가 없는 봉사를 한다는 것은 연인관계형성이 되는 대가도 원해서는 안된다. 연인관계가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가 되어야 진정한 봉사정신의 2차적 사랑이며 그 행동을 통해 자신이 특별해지지도 않아야 1차적 사랑이 배제되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말이 '나만 놓으면 끝나는 관계'이며 불안정한 하나의 사랑의 유형이다. 놓지 않으면 그에 해당하는 특별함은 채울 수 있으나 상대방이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지 않아서 놓고 싶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던 것만큼 특별하지 않은 것이고 이 사랑의 유형을, 사랑의 요소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도 상대방도 잘못한 사람은 없고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잘 몰랐을 뿐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2차적 사랑만이 옳다는 오해가 바뀌지 않으면 1차적 사랑이 없는 상태로 2차적 사랑만을 추구하는 특수성으로 분류된다. 부실공사로 언제 무너져 내리는지 알 수 없는 건물 같은 사랑을 하게 되며 1차적 사랑이 없는 상태로 2차적 사랑을 받아줄 대상만을 계속해서 찾아다니게 된다. 서로가 2차적 사랑을 추구하는 운 좋은 상황을 제외하면 이런 분들에게는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먼저 특별 해지는 것이며 개인의 특별함과 사랑의 특별함이 분리가 안 돼서 개인의 특별함에 무조건 사랑이 포함될 때만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말이 맞다. 자신의 특별함을 타인에게 기대기만 해서는 안된다.
봉사정신의 사랑을 연인관계와 별개로 보면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기도 하고 바라는 것 없이 하는 완전한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연인관계에서는 서로가 특별함을 채워주려 하지 않으면 자신이 특별해지는 다른 수단을 막아서고 있기에 불완전한 사랑 혹은 특수한 완전한 사랑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관계에 서로의 사랑을 맞추는 것이 아닌 상대에게 자신을 맞춰버리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없다.
이와 유사하게 사람이 아닌 대상을 이러한 형식으로 사랑하게 되면 자신은 2차적 사랑을 한다고 오해하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생긴다. 자신이 특별해지기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니라 불쌍한 동물을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며 정당화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가 있는데 그들은 불쌍한 동물을 챙기면서 자신이 특별해지는 것이다. 자신이 특별해지지 않았다면 타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타인이 피해를 받았다고 해도 자신이 특별해지는 행동을 멈출 수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피해를 받는 타인과 사랑하는 대상을 제외하고 연인관계로 돌아가보면 결국 특별함에 가려져 받고 있는 피해를 느끼지 못할 뿐이지 자신이 특별함을 느끼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피해를 주고받는 것이다.
2차적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현상이 있다. 과거에 많은 사랑을 했음에도 이번 사랑을 특별하게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이다. 여태 사랑하던 사람들도 분명 충분히 많이 사랑했는데 상대가 자신에게 맞춰주던 사랑에서 자신이 상대에게 맞춰주는 사랑으로 변하게 됐을 때 진정한 사랑이라고 느낀다.
이는 반대의 상황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으며 전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이라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전과 다른 사랑을 경험하며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이번에 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 중 자신이 특별하게 느끼는 사랑을 경험한 것뿐이다. 특별함을 느끼는 정도는 원하는 사랑의 유형만이 아닌 대상에 따라, 상황에 따라,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1차적 사랑을 배제하고 2차적 사랑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에 제대로 현혹되기만 하면 너무나 좋은 방안이 되지만 모든 사람을 세뇌시키지 않는 이상 사랑의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뜬구름잡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1차적 사랑이 없는 2차적 사랑은 언제나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별개로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2차적 사랑이라서 상대에게 맞춰주면서 자신이 특별함을 느끼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고 불완전한 사랑의 유형중 하나일 뿐이다.
1차적 사랑과 2차적 사랑을 나눠서 보지 않았을 때 오해가 많아지는 만큼 오해가 풀릴수록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완전한 사랑은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그러나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성의 기반을 두고 있기에 사회에 속하는 가장 특별한 존재인 사람과의 사랑을 가장 완전한 사랑으로 정의되고 있으며 사회구성과 구조에 맞춰서 추구하는 완전한 사랑 또한 달라진다.
이는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이 다르듯이 현재의 문화에 따라 완전한 사랑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며 현재 가장 특별한 완전한 사랑에 도달하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으로 사람과의 사랑으로 가능하고 남녀 성별의 구조도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에 따라 완전한 사랑이 달라지는 만큼 사람들이 사회가 추구하는 사랑을 하지 않거나 방향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회의 구조가 잘못되거나 사랑의 정의와 사회구조가 알맞게 어우러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새로운 완전한 사랑이 파생된다.
불가피한 완전한 사랑
사회적으로 개인의 특별함을 보장받기 어려워 사랑의 특별함으로만 특별함이 충족되어도 자식을 낳는 것이 생존, 특별함에 과하게 엮여있을 때 자식을 얻지 않고 자신의 특별함을 느끼기 위한 선택을 한다.
자식을 낳는 것은 개인의 의사에 달려있지만 자식을 낳지 않는 상황에 쳐하게 만드는 현상은 사회적인 부분에 더 밀접해 있기에 자식을 낳지 않는 선택을 한 사람을 비난할 수 없고 그들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이들은 완전한 사랑을 하고 있음에도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은 자식을 낳는 것보다 낳지 않는 것이 더 특별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를 이기적인 선택으로 볼 수도 있으나 생존에 유리한 선택이기에 부정해서는 안된다. 자식을 낳아도 충분히 생존이 가능한데 안 낳는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현재 한국에서 생각하는 생존의 최소조건이 너무나도 높게 측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나눠지는 것은 생존의 조건을 넘어서서 자식을 낳는 사람, 생존의 최소조건을 낮게 잡아서 자식을 낳는 사람, 자식을 얻고 싶어도 생존의 최소조건에 도달하지 못해서 얻지 않는 사람등 다양하게 나눠지는데 피임에 실패하지 않은 이상 자신이 더 특별해지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가 최선이 아닌 최고를 추구하는 것의 영향이 자식으로도 뻗쳐져 자식을 낳아도 자식 경쟁을 위해 한 명을 낳는 것을 유리하게 여기기도 한다.
매몰된 완전한 사랑
특별하지 않아서 헤어짐을 택하기도 하지만 특별함이 충족됨에도 관계를 정리하기도 한다. 완전한 사랑이 완성이 되어도 더 특별한 사랑을 추구하며 새로운 상대를 찾는 것이다. 생존본능에 따라 생존에 더 유리한 상대를 찾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생존이 보장된 안정적인 사람이 사회의 경쟁구조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서로가 특별해지는 완전한 사랑을 넘어 남보다 더 특별한 사랑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인지가 더 잘 됨으로써 합리적 사랑을 선택한다. 사회의 영향을 받다 보니 더 특별한 것을 추구하면서 역으로 매몰된 사랑이 되는 것이다.
이 오류는 현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수순이고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이 특별해지는 사랑인 것도 변함이 없다. 다만 사랑의 대상에게도 순위를 매기며 경쟁을 하는 것이다. 이 사회의 방향성이 지속되면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요소보다 사회가 추구하는 사회의 요소에 자신을 맞추는 것을 완전한 사랑으로 여기는 사회를 맞이할 것이다. 이는 개인의 사랑보다는 과거의 성별사랑과 다름없는 순위별 사랑을 지향하는 것이다.
특별한 완전한 사랑
사랑은 자신이 특별해질 수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지 정제되지 않은 사랑자체는 추악하다. 그래서 사회가 추구하는 완전한 사랑은 1차적 사랑, 2차적 사랑을 따로 하는 것이 아닌 둘 다 챙기면서 서로가 맞춰주는 관계로 자신이 특별해지는 것처럼 상대방도 특별해지게 혼자가 아닌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을 독립적인 존재로 보고 사랑에 관계가 추가되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원하는 사랑, 원하는 관계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서 자신이 해주고 싶은 것은 자신이 특별해지는 것이고 상대가 받고 싶은 것을 해주는 것은 상대가 특별 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추구하는 사랑은 서로가 특별해지는 것을 항하고 있다. 1차적 사랑을 배제하지 않고 인지하고 받아들여 충족시킨 상태로 2차적 사랑까지 나아가는 방향성이든 2차적 사랑을 통해 1차적 사랑을 충족시키는 방향성이든 서로가 특별해지는 것을 항하는 것이다. 이것을 서로 하게 되면 자신이 특별해지기에 상대방도 특별해질 수 있고 존재자체를 특별하게 여기는 안정적인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는 정답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유형이 나눠지는 것이기에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사회적으로 추악하지만 않다면 어떤 사랑이든 특별한 완전한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랑을 오해해서 사랑이 뭘까라는 물음이 아닌 유형별 사랑을 대입해 보며 '내가 원하는 사랑은 뭘까?'라는 물음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정한 완전한 사랑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