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특별함 본론 2(미완성본)

사랑

by 오필


사랑에 대한 오해의 과정

사회의 의미부여가 완전한 사랑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1차적 사랑을 잘못된 사랑, 불완전한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완전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오해가 생겨났다. 그러나 사랑의 본질, 사랑의 특별함에서는 모든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며 사회가 추구하는 사랑에 따라 분류되는 사랑만이 있다. 진정한 사랑으로 분류되지 않은 사랑이 틀린 것은 아니기에 사랑이 분류됨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사랑인지는 무엇인지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1. 특별한 사람을 사랑했다면 왜 사랑이 끝나고 난 뒤 그 사람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을까?

특별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오해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이 오해조차 사랑을 정의하면서 생겨난 것이지 그전에는 생존에 유리한 선택과 단순한 욕구충족, 소유를 통한 욕구충족등의 사랑을 대변할 과정들을 지나왔다.


대외적으로 특별한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 특별한 사람과 주관적으로 봤을 때 특별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하게 여기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기에 타인이 평가하는 객관에 자신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으면 자신이 사랑 중인 대상이 타인의 평가에 따라 특별하지 않게 된다. 객관적으로 특별한 사람을 사랑했으나 타인에 의해 사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며 대외적으로 특별한 사람이 생존에 유리해서 선택할 수는 있으나 그 장점이 사라지면 사랑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사랑의 시작점이 주관이지 않고 객관으로 봤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특별해 보이는 매력이 작용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주관적으로 봤을 때도 매력으로 작용되어야 객관적인 특별함이 사라져도 사랑이 유지가 된다. 고로 타인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부분을 중점으로 두어야 사랑의 안정에 도달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콩깍지가 씌었다는 것과 유사하며 다른 점이 있다. 객관적인 콩깍지는 타인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의해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며 제삼자가 둘을 연결하려고 서로를 특별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프레임을 씌워 주관적으로 봐도 특별하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착각으로 시작해서 특별한 사랑에 도달하려면 객관적인 특별함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도달해야 한다.


장점만 보이던 사람의 단점이 보이고, 장점으로 여기던 것이 단점으로 보이면 사랑이 사라진 것일까?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전제 전에 '사랑은 내가 특별해지기 위해 하는 것', 1차적 사랑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별하게 여기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대상을 통해 자신이 특별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단점마저도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던 것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된 것으로 사랑의 요소에 해당하는 욕구충족이 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단점을 보아도 지속적으로 사랑을 한다면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요소가 충족되거나 대체되어 충족되거나 사람자체를 특별하게 여겨 특별함이 충족되고 있을 수도 있다.


결혼 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아이까지 다 키우고 나서 사랑보다 정으로 살아가는 상황이 된다면 사랑이 없어서 이혼을 할 수도 있고 정으로 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계가 지속된다면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요소가 충족되거나 특수성으로 관계가 유지되기도 한다. 반대로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특별함이 충족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1번의 오해에 대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담겨있다.

연애, 결혼의 관계에서 상대를 특별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의 시작은 상대방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것에서 시작한다. 객관적으로 특별한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자신이 특별하게 여겨야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은 특별한 사람이고 나에게 너무 잘해주는데 오히려 그게 더 힘들어서 헤어졌다."라는 이야기가 배가 부른 것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의 객관적 특별함으로 인해 자신이 별로인 사람이라고 느껴질 수 있고 이는 관점에 따라 '사랑은 내가 특별해지기 위해 하는 것'에서 멀어진다. 그렇듯이 상대가 특별해도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지 않으면 사랑의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특별한 사람을 선택해서 사랑하더라도 스스로의 선택이 들어간다.

객관적으로 너무나 좋은 특별한 사람을 사랑하고 연인관계로 이어져 평생 사랑할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아서, 그 사람은 특별하지만 자신에게는 특별하지 않아서, 서로는 특별하지만 사랑의 3요소의 욕구충족이 되지 않아서 이별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랑에 있어서 고려할 것은 객관적인 특별한 사람이 아닌 주관적인 특별한 사람이다.


이제 풀어야 할 오해는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연인, 결혼관계일 때는 특별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그 사람이 특별하지 않게 느껴지지 않을 때이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던 그 사람이 변한 게 없어도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지 않으면 특별함을 잃게 된다. 그 사람이 실제로 특별한지 보다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지가 사랑에서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별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존재를 사랑하기에 만날 때는 그렇게 특별하던 사람이 헤어진 후에는 특별하게 여기지 않기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은 내가 특별해지기 위해 하는 것'을 전제로 사랑은 자신이 특별해져야만 가능한데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던 대상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게 되는 과정에서의 후폭풍도 야기한다. 대상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자신도 특별하지 않은 것을 정당화시키는 과정은 배신감과 분노와 그리움등 수많은,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관계가 끝나고 난 뒤 해야 할 것은 특별한 존재를 잊는 것이 아닌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이 특별하지 않게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그 대상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이 특별해서가 아니고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다. 자신이 특별하게 여겼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이 특별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 그 사람이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면 그 사람이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진 것뿐이다.


2.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특별함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도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기에 자신에게 정해진 정답이 있다는 오해를 없애야 한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선호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호해도 그 사람이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선호하는 것을 개인의 성향으로 두고 특별함의 선택으로 접근해야 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자신이 특별해지는 지가가 다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통해 자신이 특별해진다는 마음이 아예 없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무조건 선택할 것이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통해 자신이 특별해진다는 마음이 아예 없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무조건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극과 극으로 치닫지 않는 이상 예외는 항상 적용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하든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든 결국 더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의 특별함을 채워주는 성향에 있는 사람은 남주기에는 자신이 특별해지는 부분이 있고 자신이 갖기에는 연애를 해야 할 만큼 특별해지지 않는 사람이 생기기 쉽다.

자신이 누군가 좋아하면서 자신이 특별해진다고 여겨도 사귀지 않고 좋아만 하고 있다면 자신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특별하게 해주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개인차에 따라 다르지만 둘 중 자신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특별해지는 것보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면서 자신이 특별해지는 극단적 선택으로 연애 없이 어장만을 하기도 한다. 어장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자신을 특별하게 해주는 사랑임은 명백하고 상대방을 특수한 사랑을 하게 만드는 것이기에 자신이 특별해짐에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불완전한 사랑이 된다.


이를 토대로 자신이 좋아하지만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연인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꾸준하게 얼굴을 비추거나 연락을 하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연락을 끊으라는 이야기, 자신의 매력을 키우거나 상대방이 좋아하는 이상형에 맞추라는 이야기 등이 있는데 이는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도록 만들라는 것이다.

상황은 달라도 서로가 죽일 것처럼 싫어하던 악연의 사이가 지속되면서 미운 정이 쌓이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연인이 되는 것도 특별하게 여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3. 내가 특별해지기 위해 사랑한다면 짝사랑은 왜 하는 것일까?

자신이 특별해지기 위해 짝사랑을 하는 것, 짝사랑을 하면서 자신이 특별해지는 것이다.

1차적 사랑은 대상의 제한이 없기에 관계성이 포함되지 않는 물질을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짝사랑도 진실될 수 있다. 짝사랑의 기본 전제조건은 사랑하는가가 아닌 자신이 특별해지는가라고 규정된다. 그래서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완전한 사랑인지 불완전한 짝사랑인지 알기 위해서 짝사랑이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3요소를 향하고 있는지, 특수성을 특별하다고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특수성을 원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짝사랑이 연인으로 발전하기 위한 과정이면 짝사랑이기는 하나 사랑의 과정으로 점검할 것이 없다. 이는 순수하게 사랑자체로 연결되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하에 상대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과정이 적절치 못한 것은 점검해야 한다.


백마 탄 왕자- (성별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것처럼 상상 속 운명의 짝을 기다리며 실존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 존재를 사랑하고 있다면 상대의 의사를 모르기에 미지의 짝사랑에 속한다. 미지의 짝살랑 중이라면 현실적으로 자신이 상상 속의 운명의 짝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인지, 비슷한 유형이 실존하는지 같은 유형의 사례가 있는지, 만난다면 어디서 만날 수 있는 자 등이 구체적으로 그려진다면 그것은 사랑의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대개가 자신은 특별한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오해를 하는 사람이다. 또 사랑은 자신을 특별하게도, 특별하지 않게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특히나 연애경험이 없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유형이다. 백마 탄 왕자가 실제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보단 그것을 기다리는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다. 미지의 짝사랑을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상관없으나 그것이 아니라면 짝사랑의 대상이 허상인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미지의 짝사랑을 원하고 있다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기다리던 운명의 짝이 나타나기만 하면 기다리던 자신도 특별해지고 그 이후의 사랑도 특별 해질 것이다. 다만 사람은 특별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는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과 특별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특별해지기 위해 사랑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짝사랑 러버

대상이 확실히 정해져 있으나 정말로 혼자 좋아하는 짝사랑이 있다. 여기서 짝사랑에 실패해서 포기하는 단계를 넘어가면 연인으로 발전하기 위한 과정이 아닌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상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짝사랑 러버가 된다. 얼핏 보면 이것은 팬심과 결이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팬심은 '사랑은 상대방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에 해당하는 2차적 사랑에 속함으로 다르다. 팬으로서 대상을 사랑하면서 자신이 특별해지는 것도 확실하다면 연인 간의 관계만 배제된 것으로 완전한 사랑에 가깝다. 짝사랑 러버는 이와 다르게 연인 간의 관계도 배제 되지 않은 상태로 사랑하는 것이다.

짝사랑 러버가 특별함을 느끼는 것은 마음은 무거우나 방법은 실로 간단하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슴 아프고 그럼으로써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것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다. 여기서 점검해야 할 것은 자신이 짝사랑 러버이고 싶은지이다.

짝사랑 러버이고 싶은 사람은 그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애초에 자신이 사랑받지 못해야만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짝사랑의 대상이 자신을 좋아하게 돼도 되려 부정부 터한다.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통해 느껴지는 특별함이 자신이 짝사랑 러버로써 느끼던 특별함이 보다 적다면 더 큰 특별함을 위해 거부하는 것이다. 관계가 연결됨으로써 느끼게 될 특별함보다 짝사랑으로 느끼는 특별함을 더 중요하게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느껴지는 특별함은 역시나 마음만 무거울 뿐 실로 안정적이다. 자신이 짝사랑을 끝내지 않는 이상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특수성이다. 이는 사랑의 시작이 자신이 특별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대개의 짝사랑 러버는 방어기제에 해당하기에 원치 않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자신이 짝사랑 러버를 원하는 것인지 필히 점검해봐야 한다. 여기서 생기는 부작용은 가슴 아픈 사랑 이상으로 완전한 특별한 사랑을 받거나 하기 전까지 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위험해질 수 있다. 자신이 느끼는 특수성이 때로는 당신이 특별해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릴 수 있다는 것은 명심해야 한다.


서로하는 짝사랑

서로가 사랑하면 짝사랑은 아니나 특별함의 여하에 따라 둘은 서로 짝사랑을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누군가 물꼬를 트면 해결이 될 거 같지만 이 관계는 맘처럼 되지 않고 서로 사랑함에도 서로를 짝사랑으로 남겨두기도 한다. 서로를 짝사랑으로 남겨두게 되는 것은 관계가 포함되든 포함되지 않든 사랑의 우선순위가 자신이 누군가를 특별하게 여기기 전에 자신이 특별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어서 가능하다. 어려서 잘 몰랐다, 미숙했다고 할 수도 있으나 그 외의 상황을 포함에 공통적인 것은 서로가 서로를 특별하게 여기고 있음에도 자신이 특별해지지 않기에 연인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 외의 상황을 보면 서로가 특별하게 여기고 있음에도 먼저 나서서 관계를 이어갈 만큼 특별하게 여기지 않거나 먼저 나서게 되면 자신이 특별해지지 않을 수가 있어서이다.


짝사랑의 공통분모

짝사랑에서 점검해야 할 것들의 공통분모는 완전한 사랑으로 연결될 수 있음에도 짝사랑을 놓지 못해서 특수성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연결될 때의 선택은 사랑으로 인해 자신이 특별해지기도 하고 특별해지지 않기도 하는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특별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 앞에서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벗어날 수 없고 끊임없이 자신을 속여야 한다. 자신을 속이다 보면 특수성을 특별함으로 오해해 더욱 증폭시키고 자신을 특수한 상황에 스스로 가둠으로써 특별함을 유지시키는 것이고 그 당시에 느끼는 감정자체는 특별함보다 더 거대한 불완전한 특수성에 잡아먹힐 만큼 거대하다.

잘못된 사랑은 없기에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으며 개인의 선택인 것이고 그것이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선택인지는 점검해 보고 고민해봐야 한다.


4. 행복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며 사랑하는 것은 왜일까?

행복하기 위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행복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 의문일 것이다. 그러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랑은 사랑의 3요소 중 정신적 충족에 속한다. 사람에 따라 정신적 충족이 사랑의 요소에서 중요하지 않거나 중요하더라도 대체되어 충족될 수 있기에 행복이 없어도 사랑의 특별함은 유지가 된다. 사랑이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특별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고 행복하기 위해서 사랑한다고 여긴다면 행복한 것을 특별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정리된다.


사회의 의미부여가 사랑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정의하기에 행복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사랑에 행복이 따라갈 수 있는 것이지 행복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은 무조건 옳을 수 없다. 원초적인 1차적 사랑과 연결되는 것은 자신이 특별해지고자 하는 것이기에 행복하지 않아도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부분의 여지가 남아있다면 특별한 관계는 유지된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헤어져야 한다고 보는 관계여도 그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법적으로 제재를 가해야 할 경우만 아니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결과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헤어지는 것보다 더 특별하기 때문이다. 행복하지 않은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기에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다만 그렇기에 더더욱 정말로 원하는 선택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좋은 쪽으로만 향해야 한다는 생각에 행복이 필수요소처럼 느껴지지만 행복으로 갔을 때의 사랑은 행복이 있는 사랑인 것이지 좋다, 안 좋다는 사람마다 다르다. 행복이 없으면 안 좋은 사랑이 아닌 행복이 없는 사랑인 것이다. 행복이 있든 없든 사랑의 방향성은 특별함을 향하기에 행복이 있음에도 안 좋은 사랑이 있고 행복이 없음에도 좋은 사랑이 있다.


과거에는 당연하거나 좋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지금은 안 좋다고 정의하는 것처럼 사랑은 사회의 의미부여의 영향을 받아 1차적 사랑이 아닌 2차적 사랑과 완전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특별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개념으로 사랑자체가 남성만이 소유할 수 있을 때도 있었다. 그때의 사랑이 맞다 틀리다가 아닌 사랑의 유형중 하나이며 사회가 추구하는 사랑과 다를 뿐이다. 사랑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과 소유되고 싶은 사람이 만난다면 그 사랑을 부정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사회에서는 부정할 필요가 없었다.


상대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으로 돌아섰음에도 상대를 특별하게 여긴다면 행복을 떠나 사랑은 유지된다. A가 일방적으로 불완전한 특수한 사랑을 하고 B는 그 특수성의 사랑을 힘들게 여겨 둘의 관계가 B에게 부정적이고 행복하지 않아도 A는 일방적은 사랑을 특별하다 여기고 B는 자신이 특별해질 수 있는 것을 다른 충족으로 대체하면 관계가, 사랑이 유지된다. 3자의 입장에서는 둘의 관계가 헤어져야 할 상황 인으로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행복이 아닌 특별함을 위해서 헤어질 수 없는 것이다. 법적으로 제재를 가해야 할 상황에 쳐해 지더라도 B가 그 상황을 특별한 사랑으로 여긴다면 그 상황 당시의 둘은 사랑하는 관계이다.

이런 부분이 시사하는 것은 사회의 의미부여가 '사랑은 내가 특별해지기 위해 하는 것'인 1차적 사랑에서 2차적 사랑과 서로가 특별해질 수 있는 완전한 사랑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쳐해 진 상황보다 더 특별한 사랑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특수한 사랑을 하고 있는 당시의 당사자는 모르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회가 특수한 사랑을 서로가 원해서 하는 것 또한 제재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사랑의 본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5.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

사랑은 연인, 가족, 집단의 관계를 넘어 동물, 사물등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까지 통틀어 자신이 사랑하는 무언가가 많으면 많을수록 대체할 수 있는 특별함이 많아지고 자신이 노력한 만큼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사랑은 자신을 특별하게도, 특별하지 않게도 만드는 것인데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라는 것은

좋지만은 않다. 자신이 특별해지는 것은 개인의 특별함과 사랑의 특별함을 분리해서 사랑을 제외한 자신이 원하는 3요소를 충족하라는 것이 돼야 하는데 여기서는 사랑이 빠져있다. 개인의 특별함과 사랑의 특별함을 분리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것은 동일시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상실감을 만든다. 애초에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굳이 받을 필요가 없던 정신적 고통을 누군가의 정답에 휩쓸려 스스로 고통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며 특별함을 채우고 있는 사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사람마다 특별함에서 채우고자 하는 요소가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주장은 개인의 특별함을 먼저 충족하라는 얘기이고 개인의 특별함을 충족한 사람이 더 매력적이어서 특별하게 느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원하지만 않는다면 사랑이 없어도 개인의 특별함으로 살아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고로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말은 자신의 특별함을 타인에게 기대지 말라는 말에 가깝다. 그렇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타인에 의해 특별해질 수 있으며 그러한 형태로도 충분히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개인의 특별함을 무시한 채 사랑의 특별함만을 충족하다 보면 자신의 특별함의 권한을 모두 타인에게 넘겨줘버리게 되니 그것은 분명히 조심해야 한다.


특별함 마무리

사랑의 특별함으로 강조되는 것은 정신적 충족이든 물질적 충족이든 육체적 충족이든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요소의 특별함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며 사랑은 자신이 특별해지기 위해서 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면 서로 사랑하지만 정작 사랑을 받은 사람이 없는 상황, 사랑은 받았는데 정작 자신이 느끼는 사랑이 없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사회가 완전한 사랑을 추구하기에 '사랑=특별함'이라고 정리하기에는 사랑이 완전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특별해지기 위함'이라는 것도 완전하지가 않다. 하지만 사랑의 시작을 무의식, 원초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추구하는 사랑은 1차적 사랑을 배제하는 것이 아닌 인정한 상태로 2차적 사랑을 함께 추구해야 완전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영역이며 '사랑=특별함'이 아니더라도 다른 무언가로 1차적 사랑의 시작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가 말하는 사랑자체는 존재할 수 없거나 풀리지 않는 마법 같은 일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마무리하며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어떠한 사랑을 추구하는가?

당신은 어떠한 특별함을 충족하고 싶은가?

특별함과 특수성중에 고를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랑하라, 다만 적어도 당신이 추구하는 사랑이 무엇인지는 알고 사랑하라.

당신이 사랑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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