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간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입사한 회사는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적지 않은 나이, 아무 경력 없는 신입치고는 높은 연봉에 외국계로서 갖출 복지는 웬만해선 다 갖춘 곳이다. 그런 곳에서 나는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문제없이 하면 반은 가고 문제가 생기면 모든 사람들의 불평을 듣는 직무를 맡고 있다. 당시 사장님의 큰 그림은 다른 부서의 업무를 함께 서포트 해주다가 점차 영역을 넓혀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1년 5개월 동안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다...
인생사 생각한 대로 되는 것 하나 없다고, 상황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흘렀다. 사장님은 회사를 떠나셨고 나는 여전히 그 자리 그 직무 그대로, 아니 그 직무에 다른 직무들까지 얹어 마치 세 사람의 몫을 해내고 있는 듯하다.
막내의 자리
어느 곳이든 취직만 시켜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기도하고 다짐했던 지난 시절의 마음처럼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책임과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소한 뒤치다꺼리 업무 자체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대로 된 인수인계 없이 갑작스레 떠맡는 업무들이 늘어갔다. 누군가 일이 많다거나 힘들다고 할 때, 애매해서 맡길 사람이 없을 때 예외없이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이를 부당하다 느끼셨던 다른 동료 분들이 대신 이야기를 해주고 막아주기도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회사에서는 내 경력을 이유로 들었다. 여러 가지 일에 참여하며 경력을 개발하라는 것이었다. 애초 이런 업무 내용을 알면서 입사하기로 한 내 결정도 같은 맥락이었지만 그것을 구실 좋은 핑계 삼아 이용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규직 1년 5개월차, 인턴 1년과 그 사이 일주일씩 두 군데의 회사 발 담그기 기간을 통해 막내로서 느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신입에게 일을 떠넘기려고 안달이 나있다는 것이다. 경력 개발과 배움, 맞다. 하지만 진정으로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일을 '가르친다'는 느낌은 거의 전무했다. 그렇게 떠넘기려는 사람들이 대부분 사내에서 일 안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왜 받는지, 어떤 식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지 등 정작 도움이 되는 지도는 하나 없고, 커리어로 한 줄 넣을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은 넘기지 않는다.
떠날 준비
이제는, 아니 꽤 오래전부터 업무에 회의감이 들었다. 오만 자질구레한 일을 넘길 거면 제대로 한 직무를 맡고 싶다고 윗선에 수 차례 이야기하였으나, 작은 일들의 비중을 줄여나가자고 협의하려할 뿐이었다. 심지어 1부터 10까지 내가 담당하고 있는 직무에 새로운 사람을 내 상사 자리에 채용할 것이라는 계획이 공공연히 들리며 의욕이 떨어졌다. 이곳에서는 내가 올라갈 자리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 저기 붙였다 뗐다 하기 쉬운 사람으로만 대하려는 게 느껴졌다.
서른을 앞두고 실무 경력을 쌓아가는 지금, 경력 고민이 짙어지면서 그저 업무 '떠넘기기'가 아닌 커리어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곳으로 차근차근 이직을 준비하고자 한다. 직원 개인의 성장까지 생각하는 회사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도 현재에 머무르고 정체하며 가능성조차 없애느니, 미래를 위해 변화를 맞이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