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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닷새 Oct 26. 2023

내가 회사 체질이 아닌 이유

 지난번 게시하였던 글에서처럼(회사 체질이 아닌 사람 (brunch.co.kr)) 그들이 말하는 '회사 체질'의 의미로 미루어 보았을 때 나는 몇 가지 성향으로 해당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 성향으로 인해 유독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힘들어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스스로 생각해 봤을 때 아래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될 듯하다.




1. 새 이메일이나 채팅을 받으면 급격히 긴장한다


 여러 사람을 서포트하는 일을 맡은 만큼 나는 업무적으로 연관된 부서가 많다. 따라서 여기저기서 문의 메일과 채팅을 자주 받는데, 새 이메일이나 채팅이 왔다는 아이콘을 보는 순간 긴장한다. 어떤 요청이 들어왔을지 나도 모르게 겁을 먹고 순간적으로는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더구나 그 이메일이 본사 쪽, 사장님, 이사님 등에게서 온 메일이면 더욱 그렇다. 대부분 평범한 문의, 요청으로 내 선에서 해결가능한 것들이지만 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은 도통 나아지지 않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메일이 쌓여있는 것도 굉장한 압박이다. 평소에도 이메일을 받자마자 확인하고 메일함 옆에 읽지 않은 메일 숫자가 표시되는 꼴을 보지 못해서 업무 요청이나 문의에 굉장히 빠르게 응답한다. 이 와중에 이메일은 또 얼마나 많이 오는지, 연차로 하루를 쉬면 이메일이 약 50개쯤 쌓인다. 정기적으로 받는 수입 관련 서류들이 쏟아진다면 하루 90개가량으로 늘어난다. 결국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휴일에도 마음 편히 쉬질 못한다. 이메일이 얼마나 와 있을지 출근해서 다 처리할 수 있을지 걱정되어 해결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찝찝하다.


2. Yes 맨


 사회생활 속 인간관계에 무척 취약하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이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나름 전달할 수 있지만 직장 동료처럼 계속 부대껴야 하는 '남'에게는 싫은 소리, 심지어 부정적인 뉘앙스의 말조차도 하지 못한다. 이를 처음을 깨달았던 것은 인턴 생활 때였다. 주말에 출근해 달라는 부탁도 거절하지 못해 거의 매주 주말근무를 했고(수당은 주었다) 심지어 계약 기간보다 일주일 먼저 퇴사하겠다는 말도 정말 정말 어렵게 꺼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애매한 포지션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일을 넘겨받고 내가 없는 회의에서 내 업무 비중을 결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 한다. '싫어요.' '못해요.'이 세 글자가 왜 그렇게 힘든지. 나는 회사를 다니는 1년 8개월 동안 회사 사람에게 인상을 찌푸리거나 정색하는 표정을 지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최근 한 사람이 나에게만 히스테리를 부려왔다는 것을 깨달은 후, 최대한 단호한 태도로 일하려고 노력 중이다.


3. 말 한마디에 타격이 큰 편


 마지막으로 나는 멘탈이 약한 편이다. 어느 회사나 그렇겠지만 소규모의, 특히 온갖 변화의 바람이 부는 우리 회사 같은 경우에 직원들끼리 뒷얘기가 아주 많이 오간다. 심지어 정치질로 여러 사람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곳이라 더욱 그렇다. 그런 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다른 직원들이 나에게 조언이랍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처음에는 혼자만 모르고 있던 회사 사정을 알려주니 고맙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저 피곤하다. 윗사람들이 내리는 나에 대한 평가부터 내 자리를 어떤 식으로 위협할지 등등 세세하게 알기 시작하니 너무나 신경이 쓰인다. 듣고 흘려버리는 게 안돼 하루하루가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지겨워서 제발 정치질 없이 뒷얘기 없이 자기 일만 묵묵하게 하다 퇴근하고 싶다. 나에겐 참 힘든 곳이다.




 쓰다 보니 내 성격이 정말 회사에 안 맞는 건가 싶기도 한데, 사람이라면 응당 스트레스를 느낄 분위기의 회사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으려 한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눈빛에 생기를 잃고 웃음을 잃고 점점 말을 줄이게 되는 삭막하고 찌든 직장인으로 진화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씁쓸하지만 다른 몬스터(?)들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회사 체질'의 사람이 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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