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이야기:디자인 협상을 하라(4)

- 제4화 : 상대를 리드하다. 협상 디자인 -

by 이성대

협상이야기는 협상을 주제로 한 비지니스 협상 가상 스토리 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기 전에

"협상이야기: 디자인 협상을 하라 (1) 제1화 혼란 속으로" 부터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4. 상대를 리드하다 – 협상 디자인


코니스 사 회의실


안성일 PM은 지금처럼 다급한 적이 없었다. 아마드가 아무래도 뭔가 압박을 가한 것이 틀림없다.

“부장님, 아마드가 다음 주 수요일까지 패널의 과열 시 효율 저하 현상에 대하여 답변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앞으로는 다른 프로젝트는 맡길 수없다고 하네요.”


“안 차장 알겠네. 일단 여기서도 준비 중이니까 대기하고 있게.”

김태산 부장은 느낌이 좋지 않다. 아마드가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다. 함께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이런 상황을 알린다.


존은 상황을 듣고 나서,

“협상을 진행하다 보면 이런 상황이 자주 오게 됩니다. 그럴수록 침착해야 합니다. 상대가 이런 감정상의 동요를 일부러 유발하기도 하니까요”


존은 프로페셔널하게 사람들을 안정시킨 후 이어 갔다.

“자 그럼 우리가 이제 준비할 것은 전체적인 상황들을 모두 잘 아니, 한번 협상을 배운 대로 진행해 보도록 하죠.”


“존 부장님, 그럼 일단 협상팀을 구성하나요?” 김태산 부장이 급하다는 듯 존에게 확인을 받았다.

“네, 협상팀은 사업부의 김태산 부장님, 이명식 차장님, 최수진 대리님이, 재무팀은 박재화 상무팀께서 한 분을 지명해 주시고, 법무팀은 캐서린 변호사님이 그리고 태양광 패널을 잘 아는 기술팀은 누가 하는 게 좋을 까요?”


“존 부장님, 안성일 PM이 현재로서는 태양광 패널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현지에 있고 하니, 안 PM이 기술 분야를 담당하기로 하죠.”


“네 좋습니다. 김 부장님. 그럼 리드 네고시에이터를 한번 정해 보기로 하죠. 누가 아마드와 협상을 가장 잘 이어갈 수 있을까요?”


“원래는 아마드와 카운터 파트 Counter part인 안성일 PM이 해야 하는데, 아마드도 본사의 입장과 확인을 받고 싶어 하니 우리 쪽은 김태산 부장이 어떨까 합니다.” 강무한 상무가 김태산 부장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어 한다.


“존 부장님, 재무팀은 크리스 차장이 도와줄 겁니다. 이번에 사우디 건의 재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팀 구성과 리드 네고시에이터는 정했으니, 아마드 쪽의 숨은 이해관계와 우리가 제안할 사항을 한번 정해 보죠.”


김태산 부장은 회의를 이끌어 가기 시작한다. 김태산 부장의 얼굴에는 약간의 긴장감과 비장함이 느껴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을 리드 네고시에이터로 지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도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당연히 리드 네고시에이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저번 협상 미팅에서 확실한 성과를 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소 불안했다.


“존 부장님, 아마드는 계약 위반을 내세우는 듯 하지만 그건 진짜 입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드 쪽의 숨은 이해관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아는 것은 잔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는 것과, 태양광 패널 과열 시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 그리고 아마도 패널 원가 하락 부분 같은데요? 패널에 대한 승인을 받지 않았다던가 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명식 차장이 정리를 해 주었다.


“네, 그럼 아마드가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 혹은 왜 그런 입장 Position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존이 분석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존은 회의실 앞의 화이트보드에 써 가면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드가 지금 조직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거나, 어떤 미션을 받고 있는지 아시는 분?” 존이 회의실 사람들에게 물었다.

김태산 부장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안성일 PM에게 전화를 하면서 스피커 폰 기능을 사용해서 회의실의 회의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존 부장님, 안녕하세요? 안성일 PM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번 프로젝트 외에도 아마드는 사우디에서의 장기적인 태양광 발전 사업에 대한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우디가 요즘 태양광 발전 용량을 늘리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거든요.”


“네, 좋습니다. 안 차장님 계속 들으시면서 정보를 알려주세요.”

김태산 부장이 핸드폰에 가까이 대고 고무적인 목소리로 전달한다.


“존 부장님, 그리고 아마드가 패널의 효율 문제에 대해 신경을 크게 쓰는 것 같았습니다. 그 얘기를 할 때 미간이 찌푸려지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평소에 관찰력이 뛰어난 최수진 대리가 그때의 기억을 살리면서 얘기했다.


그때, 핸드폰에서 안성일 PM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존 부장님, 도움이 되는 얘기 일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아마드가 아마 내년에 디렉터 Director로 승진 예정이라 합니다. 이번에 우리 태양광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거의 승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캐서린 변호사도 함께 듣고 있다가 사우디 회의에서의 상황을 기억하면서 말했다.

“그날 아마드와 함께 나온 변호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상대방이 우리에게 계약 위반 쪽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날 변호사가 나온 건 우리 쪽에서 잔금 지급 지연으로 클레임을 제기할까 봐 그랬던 것 같군요…”


존은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자 정신없이 화이트보드에 적으면서, “또 다른 생각 나시는 것 없습니까?”

이명식 차장이 예전에 아마드가 한국의 홍삼 얘기를 하는 것이 갑자기 생각 난 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한국의 홍삼을 좋아합니다! 아마드는 홍삼 먹고 건강이 더 좋아졌다네요”


그러자, 회의실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존은 빙그레 웃으며 “네 그런 정보도 좋습니다.”


존은 이제 다음 단계로 우리의 숨은 이해관계에 대해서 얘기해 보기로 했다.


“우리는 무조건 잔금을 빨리 받아야 합니다!”


박재화 상무가 볼멘소리로 단호하게 얘기를 이어 갔다.

“네 좋습니다. 좀 더 깊은 이해관계는 뭐가 있을까요?”


존이 이렇게 질문하자 갑자기 모인 사람들이 얘기를 하기 힘들어 하기 시작했다. 이때 조심스럽게 김태산 부장이 말을 꺼낸다.


“만일 잔금 지급을 연내에 받지 못하면 아마도 우리 사업부의 위상이나 입지가 크게 줄어 들 겁니다. 그럼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김태산 부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이런 일에서 어떤 역할을 했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을 잘 해결하지 못하면 아마도 그냥 서류 검토만 하는 뒷방 늙은이 취급받는 사내 변호사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캐서린 변호사도 멋쩍은 듯 말한다.


존은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얘기들도 들으면서 이렇게 정리했다.


“네, 그럼 다들 이번 잔금 지급이 연내에 안 되면 회사 내에서 입지가 줄거나 개인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다들 대답은 없지만 동의하는 분위기이다.


“네, 그럼 우리가 제시할 제안 혹은 옵션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죠.”

다들 더 진지해진 눈 빛으로 곰곰이 생각한다.


“아마도, 우리가 좀 더 세이브 save 한 금액으로 패널 개선에 뭔가를 투자하기를 바라지 않을까요? 아마도 잔금을 깎자는 얘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어쩌면, 좀 더 장기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요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드가 조직 내에서 위신이 더 커질 수 있는 뭔가를 기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드가 승진할 수 있는 뭔가 큰 한 방을 요구하지 않을까요?”

“와 하하”

마지막 김태산 부장의 말에 모두 크게 웃었다.


“자 그럼 이렇게 정리해 볼까요? 아마드에게는 이번에 패널 발열 시 효율을 개선할 방안을 제시하고, 또한 이번에 패널 가격 하락에 대하여 우리가 계약 상 어떤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관계를 위해할 수 있는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죠. 그리고, 이러한 제안들은 아마드 씨가 솔라 웍스 내에서 입지를 크게 넓힐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존이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하자 모두들 만족해하는 눈치이다.


“그리고, 박재화 상무님은 이번에 얼마 정도를 우리가 쓸 수 있는지 한번 살펴봐 주십시오. 패널 발열로 인한 효율 저하가 우리가 계약상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고 장기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존 부장님, 알겠습니다. 한번 세세히 살펴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제 짐작에는 세이브한 재원 중 일부를 사용한다면 최대 약 200억 정도는 가용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우리도 아마드에게서 뭔가 제안을 받는 게 좋겠는데요.”

이명식 차장이 이렇게 대뜸 얘기를 꺼내자 존이 이어받는다.


“네 맞습니다. 아마드 씨는 이미 준비해 놓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다음번 프로젝트에서도 코니스 사와 계약하는 걸 염두에 두고 있을 겁니다. 그건 전제가 우리가 패널 열화 부분과 예측하지 못한 원가 절감 부분에 대하여 어떤 제안을 하는가에 달려 있을 겁니다.”


캐서린 변호사는 회의 내용을 듣고 있다가 좀 신중하게 잔금 지급 건을 꺼냈다.

“아무리 상대와의 장기적인 관계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대금 지급을 기다려 줄 수는 없지 않나요? 그렇다면 우리도 상대와의 이번 협상이 잘 되지 않을 경우 대급 지급 지연 건을 어떻게 조치할지 대응 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상대가 이런저런 이유로 대금 지급을 지연할 경우 이에 대하여 정식으로 클레임 제기를 하고 법적 조치를 할 것인가 이다. 그렇게 될 경우 서로의 관계는 이제 돌이킬 수 없어질 수 없고, 다음번 프로젝트도 물 건너가게 될 것이다.


아마 상대는 대금 지급을 더 이상 지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우리와 법적 분쟁을 겪기보다는 대금 지급을 해 주고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드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조직 내에서 프로젝트 마무리를 말끔하게 처리하지 못했다는 평판을 받을 것이고, 조직은 또 새로운 태양광 발전소 공사를 담당할 업체를 찾아내야 한다.


더구나 패널 발열에 따른 효율 저하 문제는 풀기 어려운 문제로 계속 남는다.


존이 이런 문제를 협상 용어로 정리하면서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네 이렇게 어떤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결렬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상황이나 선택, 즉 협상 결렬에 따른 차선책을 우리가 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ion Agreement)라고 합니다. BATNA라는 용어도 로져 피셔 Roger Fisher 교수님이 만든 개념인데 협상을 준비할 때 매우 유용한 개념입니다. 이번 협상이 결렬되면 잔금을 못 받게 되고 결국 클레임을 할 수밖에 없는 데 이런 상황이 BATNA입니다. BATNA는 어떤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다만, 이 BATNA가 얼마나 좋고 강력하냐에 따라 협상 파워가 달라집니다. 이번에는 우리 BATNA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요. 그렇지만 아마드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적으로는 우리 쪽 BATNA가 더 좋아질 수도 있겠는데요.”


협상 결렬에 따른 차선책을 BATNA라고 한다.
BATNA에 따라 서로의 협상 파워가 결정된다.


“아니 그럼, 상대가 아무리 고객이고 발주처라 할지 라도 항상 BATNA가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이명식 차장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물었다.


“네 차장님, BATNA는 서로가 놓인 상황이나 차선책을 어떻게 개발해 놓았는 가에 따라 다르지요.”

최수진 대리는 열심히 받아 적으면서 마치 신세계를 만난 듯 눈을 크게 뜨고 신기해한다.


“자 그럼 큰 그림은 이 정도 그려 놓고 세세한 부분은 준비를 따로 하도록 하죠. 오늘 나온 의견들을 바탕으로 협상안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리드 네고시에이터인 김태산 부장님께서 팀원들과 수고를 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네 존 부장님, 걱정 마십시오! 그럼 오늘이 목요일이니 다음 주 월요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화요일은 출발해야 하니까요. 준비하면서 의견 들을 더 취합하도록 하고, 사장님께는 별도로 보고 드리고 승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금요일에는 김태산 부장이 존을 따로 만나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전에 박재화 상무는 패널 가격 급락에 따라 세이브된 금액 일부에 대하여 최대 200억까지는 활용해도 좋다는 사장의 별도 승인을 구했고 실제 협상에서 이를 바탕으로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존은 김태산 부장에게 상대방에게 제시할 제안 중 세이브된 패널 원가에 대하여는 회사 사장은 200억까지 승인을 했지만, 상대방도 잔금 지급을 지연시켜 이에 대한 책임이 일부 있으므로 제안은 50억에서 시작하되, 150억을 넘지 않기로 했다.


즉, 50억에서 150억까지를 협상이 타결 가능한 구간으로 본 것이다.


이런 구간을 Zone of Possible Agreement 혹은 ZOPA라고 설명한다.


상대의 조파 ZOPA는 사실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협상을 하다 보면 얼마 정도에서 서로 합의가 이루어질 지 알 수 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 상당한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존과 김태산 부장은 아마드의 생각을 아직은 알기 힘드므로 50억에서 150억 까지를 ZOPA구간으로 하고 가능하면 110억에서 타결을 짓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ZOPA는 협상 가능한 구간으로 서로 협상을 진행하면서 그 갭이 좁혀지게 된다. 혹은 전혀 좁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자 이제 준비는 일단락된 것 같군요. 김 부장님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네 존 부장님, 이렇게 준비하면 훨씬 마음이 편해지는군요.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지난 번은 너무 허둥대기도 하고 정신도 없이 출장비만 날렸네요. 허허.”


“아닙니다. 김 부장님. 그것도 좋은 경험이지요.”

존과 김 부장은 기분 좋게 웃으면서 함께 회사를 나섰다. 오늘따라 바람이 더 선선하게 부는 것 같다. 김 부장이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해 본 것도 얼마 만인가.


이번에 재정비된 협상팀은 월요일에 다시 만나 그간 협의된 협상의 목표, 상호 간의 숨은 이해관계, 제안할 옵션들 그리고 이번 협상이 결렬될 경우의 BATNA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다시 검토하였다.


금요일 존과 김 부장이 정리한 ZOPA에 대한 설명도 다음 페이지에 정리하였다.


“훨씬 좋아요!”

최수진 대리가 초롱한 눈빛으로 정리된 내용을 읽었다.


“지난번 우리가 사우디 갈 때는 모든 게 너무나 불명확하고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존이 협상 테이블에서의 방법론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협상 테이블에서의 방법론은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세운 체계와 원칙 그리고 미리 짜둔 협상 안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우리가 정한 협상의 체계, 원칙 그리고 협상안대로 진행을 하는 겁니다. 내일은 공항에 도착하면 서로 각자 출국 절차를 밟고 게이트 앞에서 보기로 해요. 그리고 반드시 우리는 준비한 대로 협상을 진행해야 합니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고 해서 협상 테이블에서 즉흥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들 존을 바라보며, “네!”라고 합창하듯이 답변했다. 마치 작전에 투입되는 특수부대처럼 일사 불란 했다.

존은 이어서 협상의 변화무쌍한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아, 우리가 준비한 것은 상대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요. 실제 테이블에서는 다소 다른 점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도 예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끼리 다시 모여서 정리를 수정하거나 다시 하면 됩니다.”


존은 다소 걱정이 된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협상 테이블에서의 방법론은 제가 함께 다란에 가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마 개별적으로 따로 알려 드릴 수도 있습니다. 워낙 긴박하게 돌아가니까요.”


이렇게 설명하자, 뒤에 서서 듣고 있던 최수진 대리가 너무 나진 지하게 말했다.

“마치 이건 집을 설계하거나, 옷을 디자인하거나 아니면 공장 설비를 설계하는 것 같아요. 협상을 디자인한다고 해야 하나? 그래요. 협상 디자인이네. 호호.”


최수진 대리는 존이 오고 나서 부쩍 명랑해지고 밝아졌다. 최수진 대리가 이런 일련의 과정을 협상을 디자인하는 ‘협상 디자인’이라고 하자 존이 대답했다.


“최 대리, 좋은 발견이네요. 맞아요 이건 협상 디자인입니다. 일단은 급해서 제가 다 설명 못했지만, 이번 사우디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 좀 더 상세히 설명드리지요. 자 최 대리가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디자인 한 대로 협상을 해야 합니다. 즉흥적으로 해서는 안되지요. 그건 마치 설계한 대로 배를 집을 짓지 않고 중간중간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협상은 디자인과 같다. 디자인 한 대로 협상을 진행하면 더 편하고효율적이다.


짧은 시간 만에 다시 사우디의 출장이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모두 최소한의 협상 체계와 원칙 그리고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신이 하는 일의 확신을 품게 되었다. 지난번 스트레스 속에 찌들어 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인천공항 12번 게이트 앞



게이트 앞에서 지난번 박재화 상무가 지명한 스티브 차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명식 차장이 반갑다는 듯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스티브 차장님, 먼저 와 계셨네요. 이번 일에 투입이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하하.”

“뭘요, 이 차장님 오랜만입니다. 맨날 이메일만 주고받고 얼굴 보기 서로 힘드는 군요.”

“스티브 차장님, 내용을 잘 아시니까 같이 일하기도 편할 것 같습니다.”



다란 홀리데이인 하프 문 리조트 호텔 회의실


수요일 마침내 아마드가 요청한 그날이다.

모두 미팅이 열리는 회의실에 도착하고 나서, 서로 준비한 내용들을 다시 살펴본다. 김태산 부장은 별도로 존과 준비했던 아마드에게 질문할 사항들을 다시 한번 챙겨 본다.


존은 일단 같은 호텔 다른 층에 회의실을 잡아 두고 대기하기로 한다. 코니스의 정식 직원이 아니고 아마드를 자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회의 시간이 거의 다 되자 아마드가 도착해서 인사를 한다. 얼굴이 다소 굳어 있기는 하지만 그리 심각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다.


“아마드 씨 그간 잘 계셨나요? 저희 때문에 고생하시는 건 아니지요?”

빈 말이지만 아마드는 그 말에 약간의 미소를 지운다.


“김태산 부장은 서로 안부를 묻고 나서, 공항 면세점에서 사 온 홍삼 절편을 슬그머니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제가 홍삼을 좋아해서 공항에서 제 걸 사다가 혹시나 해서 아마드 씨 것도 좀 샀습니다. 함께 드시면서 얘기를 하시지요. 25불 주고 산 것이라 선물이라 해도 문제는 되지 않겠지요. 하하”


아마드는 뜻밖의 홍삼에 긴장이 좀 풀어진다.


이를 지켜보던 최수진 대리는 큭큭 하고 웃을 뻔했다. 지난번에 아마드가 홍삼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김태산 부장이 라포 Rapport를 형성하는 것 같아 역시 김 부장님 답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드는 홍삼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김태산 부장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다. 홍삼에 대한 얘기로 서로 10여 분간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 자리가 협상 자리인지 서로 친분을 쌓는 자리인지 모를 정도로 화기애애 해 진다.


“자 그럼 본론을 얘기 나눠 볼까요? 아마드 씨 다름 아니라 저희도 그 간 공부를 좀 더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우디도 태양광 혹은 태양열 에너지 확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서 아마드 씨도 이번 프로젝트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태양광 에너지 확충에 고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패널 과열 문제를 단 건으로 보지 않고 보다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패널의 과열 문제 해결을 위해 추가적인 금액 부담 없이 저희가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패널 원가 하락의 요인이 있었기도 하지만 솔라 웍스와의 장기적인 관계와 태양광 발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김태산 부장이 말을 이어 나가자 아마드는 다소 놀라는 표정이다.


‘아니 잔금 지급 건으로 항의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이군.’


“그렇지 않아도 잔금이 아직 지급되지 않아서 힘드실 텐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생각해 주시니 제가 다 당황스럽군요. 잔금 지급은 사실 내부 시스템 정비하고, 내부 직원 인사이동이 있어서 조금 늦어지고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아마드 씨의 설명이다.


김태산 부장은 안성일 차장과 억지로 눈을 맞추면서 바라보았다.

“그럼 안 차장이 한번 자세한 설명을 해보겠나?”


안성일 차장은 자신의 전문 분야가 나오자, 별도로 준비한 파워포인트 파일을 열어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부분뿐 아니라 앞으로 장기적으로 개선할 기술적 부분까지 명쾌하게 설명을 곁들였다.


“혹시 이번 이러한 준비에 대해서 한번 검토하시고 내부적으로도 보고를 드리시면 더 좋겠습니다. 보고를 위한 기초자료는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이게 다 아마드 씨가 알려주신 아이디어 때문인 듯합니다. 하하.”


아마드는 흠칫 속으로 놀랐다.

‘아니 김 부장은 그새 능구렁이가 되었나? 내 마음을 이렇게 속속 잘 알 수가 있지?’


“네 좋습니다. 김 부장님. 일단 저희가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방향과도 어느 정도 일치합니다. 일단 적극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드 입장에서는 일단 방향이 제대로 잡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어느 정도 규모로 투자할 것인가 이다.

‘투자를 한다고 해 놓고서는 아무 의미 없는 금액을 제시하면 오히려 내가 조직 내에서 웃음거리가 될 텐데… 최소한 120억 정도는 일차 투자 금액으로 제시되어야 하는데’


아마드는 어렵지만 금액 부분도 얘기를 꺼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부장님, 그렇다면 얼마 정도의 투자를 예상하시나요?”

“네, 일 차적으로 50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순간 아마드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모두 느꼈다.

‘아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최수진 대리도 순간 준비한 대로의 상황이 어긋나자 갑자기 표정이 굳어진다.


“김 부장님, 50억은 너무 과소해서 제가 입장이 곤란해질 것 같습니다.”


김태산 부장은 머리 속으로 ‘아뿔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처음 시작하는 금액을 너무 낮게 했구나!’


모두들 숨죽이며 김태산 부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김태산 부장은 존과 별도로 협상을 준비하면서 존이 일러준 말이 생각났다.


지난 금요일의 코니스 사무실에서의 일이다.

“부장님, 처음에 제시하는 금액이 적어서 아마드가 크게 실망하거나 아니면 인상을 찌푸리면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의도적인 것일 수도 있고 솔직한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는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만일 그런 반응이 나오면 부장님께서는 아마드에게 현재 지연되고 있는 잔금 지급을 좀 더 당겨준다면 초기 투자 금액에 여유가 생겨 금액을 크게 더 올릴 수 있다고 하십시오.”


김태산 부장은 놀랍다는 듯이 존을 바라본다.

“부장님 협상은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합니다. 상대가 뭔가 더 요구하는 듯한 경우에 쓸 수 있는 방법이 조건을 거는 겁니다.”


“조건을 건다고요? 존 부장님?”


“네 당신이 어떤 일을 나에게 해 준다면, 당신이 요구하는 이일을 해 줄 수 있다는 형식이지요. 영어에서는 If ~, then~.라고 표현하지요.”


“그럼 잔금을 더 빨리 줄 수 있다면, 우리도 당신들에게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할 수 있다고 하는 겁니까? 원래 우리 내부적으로는 그런 조건 없이 150억까지를 ZOPA로 설정하지 않았었나요?”


“네 부장님, 그렇지만 지금 코스니에게 중요한 건 하루라도 빨리 잔금을 받는 것이지요. 그래서 상대가 뭔가 더 요구할 때는 우리에게 기회입니다. 만일 상대가 50억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기회입니다. 상대가 일단 관심이 있다는 표시이니까요.”


김태산 부장은 아마드를 다시 바라보면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아마드 씨지 금 우리가 연말이 되면서 잔금 지급을 받지 못해서 자금 사정이 어렵습니다. 만일 12월 초까지 잔금 지급이 완료된다면 제가 회사를 설득해서 100억으로 상향시켜 보겠습니다.”


아마드는 갑자기 표정이 풀어졌다.

‘아, 내가 생각한 120억에는 못 미치지만 훨씬 근접했어.’


협상판이 깨질 뻔한 것이 갑자기 반전되어 뭔가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모두 긴장한 탓인지 숨소리 조차 아낀다. 아마드도 긴장했는지 표정이 평소에 보던 것과는 다르다.


아마드는 여기서 결론을 바로 짓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하고 금요일 다시 만나서 협의를 더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김 부장님 멀리 까지 오셨으니,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내일 하루 쉬시고 금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만나면 어떨까요?”


김태산 부장은 다리가 떨리는 것을 겨우 진정시키고,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네 좋습니다. 저희도 내일은 좀 쉬면서 주변을 한번 둘러보면 좋겠네요. 하하.”


모두들 짧은 시간이지만 천당과 지옥을 오간 듯하다. 하지만, 아마드와의 협상이 이렇게 까지 진전된 것은 정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지난번 사우디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최수진 대리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어쩌면 이렇게 다르게 협상이 진행될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본다.


‘그래, 협상은 디자인이 먼저 필요해. 오늘도 디자인 한 대로 협상이 이루어졌는데. 후후. 협상 디자인 이라니…’


제4화 끝.


다음


- 제5화 : 상대의 반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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