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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보 Oct 15. 2020

반려견 통역사_02

안다는 것

무언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새로운 감정, 느낌, 생각, 깨달음. 대부분은 반복적인 노출을 통해 점차 신선함이 옅어지면서 일상 속 작은 에피소드로 잊히지만, 일부는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향후 살아가는 하루하루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영화 <컨택트>는 얼핏 SF영화 같지만 실제로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다루고 있다.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지배한다'는 단어가 갖고 있는 강렬한 색채에 거부감을 느끼는 학자도 많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공감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다양한 형태의 언어는 분명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소통은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행되어한다. 그런 의미에서 반려 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언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강형욱 훈련사님의 책이었다.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는 서점에서 단숨에 반을 읽었다. 나머지 반을 저녁에 거실 소파에서 끝내고 <내 강아지 마음 상담소>를 집어 들었다. 그다음은 밀리의 서재에서 찾은 최인영 님의 <어서 와 반려견은 처음이지?>이었다. 보듬 세미나부터 다양한 훈련사 분들의 조언이 담긴 유튜브 영상과 자료를 닥치는 대로 흡입했다.


사실 통역사 입장에서 봤을 때 이 과정은 통역을 준비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원만한 국제 행사 개최를 위해 주최 측에서 1주일 전에 모든 자료를 확보하여 제공해주면 좋겠지만 이상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일 뿐, 현실에서 통역사는 행사 당일 새벽까지 수정되고 공유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자료를 기대하기보다 주어진 정보(행상 시간, 장소 주제, 운 좋으면 참석자 명단)를 바탕으로 추리게임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남편이 마음을 열어 혹시라도 반려견을 맞이하게 될까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통역을 준비할 때처럼 공부할수록 조금씩 쌓이는 안도감은 없었다. 대신 속에서 언제라도 무언가 울컥 쏟아져 나올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나는 동물을 접할 때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정하게 대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는 그 마음을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뿐이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 그들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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