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발에서 두 발로 걷게 되던 날, 엄마라는 말을 하게 되던 날, 초등학교 수학을 100점 받았던 날 등등 개인의 인생에서 부모 라는 첫 타인을 통해 칭찬과 격려를 통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부모는 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부모 또한 나이를 먹기에 늙고 병든다. 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부모로부터의 독립하게 되며 혼자 살게 되고, 나의 취업을 위한 공부 집중으로 타인과 연락을 끊고, 어렵게 원하는 곳에 취업 했지만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회사에선 나에게 칭찬 따윈 없고 비난 일색이다.
사회 진출을 하게 된 개인의 입장에선 타인이 천국이었다가 지옥이 된 현실을 마주하게 되며 우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개인은 관심받을 수 있는 돌파구를 찾는다. 그것이 바로 SNS. 소셜미디어를 통한 타인들과의 온라인 접촉. 나의 생각 및 취미가 같은 사람과의 소통을 통한 좋아요, 댓글을 받으며 관심받고, 조금의 안도와 희망감을 느낀다. 더 나아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정모, 실제 만남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시대에서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SNS에 빠져 들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이다.
SNS에 빠진 사람들에게 일침을 날리는 쇼펜하우어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는 다양한 사람들이 정치적 표현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20여 년 전 정치적 표현 같은 경우 국회의원들이 TV에서 좌파냐 우파냐에 따라 국회의사당에서 이념적 갈등으로 대립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일반인들의 정치적 표현은 그렇게 활성화되지 못하고 휘발되었다. (더 이전 시대, 박정희 정권 시절엔 일반인이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하면 국정원에 끌려가 고문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SNS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2010년대부터는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일반인이 SNS에서 가감 없이 정치적 표현을 자유롭게 서술하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표현의 자유로 해방감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진 위주 SNS인 인스타그램에는 정말 다양한 욕망들이 모여 있다. 누군가는 여행, 누군가는 헬스, 누군가는 음식. 개인들의 일상사진이 대량으로 공유되어 있는 이 어플에서도 관종들은 정말 정말 많다. 남자는 식스팩의 관능미 넘치는 이두박근 삼두박근의 울그락 불그락한 태닝의 모습. 여자는 이쁜 언니들의 얼굴 사진, 젖가슴이 거의 다 보일 정도의 아슬아슬한 비키니. 언더붑이라는 밑 가슴이 보이는 패션 수영복을 입은 사진.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서 즐기는 호캉스 등등 사진 위주의 SNS다 보니 자신의 얼굴, 몸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사진으로 관심을 끌고 DM을 통해 실제로 만나기도 하고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려고 사는 삶은 계속해서 강한 자극을 (더 많은 좋아요와 댓글) 바라기 때문에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행복은 커녕 불행의 지름길로 가는 고속도로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개인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에는 책임과 대가를 따른다는 것을 개인들은 잘 인지 하지 못 하는 것 같다. 만약 필자가 "윤석열 대통령 국정 운영을 개 XX 같이 하네요"라는 말을 했을 때의 미래 상황,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에 대한 이야기다. 인스타그램에 나의 얼굴과 몸 사진을 올려놨는데 누군가 나의 사진을 복사해서 딥페이크 범죄에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이 관심종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나 또한 관심종자니까 이렇게 브런치라는 사이트를 통해 글을 올리고 좋아요 받고 싶고, 댓글 받고 싶다. 당연히 거기에 플러스로 돈까지 받으면 금상첨화.
나는 욕망을 숨김없이 살려고 한다. 욕망이라는 단어 자체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크지만 욕망이 없는 삶은 인생의 지속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감정이다. 욕망이 없었다면 인간은 80억의 인구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고, 평생을 기차나 비행기 없이 걸어 다녀야 했을 것이고, 총이 아닌 돌멩이로만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도 관심받고 싶은 거 안다. 그렇다면 욕망에 충실하라. 단, 책임 있는 욕망을 표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