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과 감성, 그리고 작가라는 이름에 대하여
요즘 SNS를 보면, 챗GPT를 활용해 만든 '지브리풍 사진'이 한창 유행이었다.
나 역시 흥미를 느껴 챗GPT를 통해 나만의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를 만들었고,
현재 브런치 프로필 사진도 그렇게 탄생했다.
AI가 만들어준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다.
기술은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 인간의 감성까지 건드릴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처음에는 무료 버전의 챗GPT를 사용했지만,
글을 쓸 때마다 제한되는 느낌이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유료 버전을 구매했다.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글을 완성해 나가는 파트너로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이제 나는 AI와 함께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묻고 싶다.
과연 AI가 인간의 감성과 철학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
AI는 오랜 세월 인간의 상상 속에 머물던 존재였다.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이 처음 불린 이래, 우리는 '생각하는 기계'를 동경해 왔다.
그러나 21세기 초입, 그 상상은 기술이라는 옷을 입고 현실로 다가왔다.
AI는 이제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림을 그리고, 스스로 판단한다.
우리는 상상의 경계를 넘어, 기계와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AI는 혁명처럼 거창한 등장음을 울리지 않았다.
그 대신 조용히, 그러나 깊숙이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스마트폰 속 대화형 비서는 우리를 대신해 질문에 답하고, 온라인 번역기는 국경 없는 대화를 가능케 했다.
병원에서는 AI가 조기 진단을 돕고, 금융 시장에서는 초고속 거래를 이끈다.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알고리즘은 우리의 취향을 예측한다.
산업과 문화, 생활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
우리는 지금, '느린 듯 빠른 혁명' 한가운데 서 있다.
변화는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 두려움은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것만이 아니다.
기계가 대신 사고하고, 기계가 대신 기억하는 세상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맞닥뜨리는 진짜 두려움이다.
AI는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일을 대신함으로써, 우리는 더 창조적인 사고와 인간적인 가치에 몰두할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것을 넘어, AI는 인간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다.
AI를 사용하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그리고 나아가, 성장과 확장의 길이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면서 변화의 의미를 실감하고 있다.
예전에는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주제를 고민하고, 문장 하나하나를 엮으며
2시간 이상 머리를 싸매곤 했다.
그러나 이제, 챗GPT라는 파트너와 함께 글을 써 내려가면서
브런치 스타일에 맞는 흐름을 빠르게 잡고,
혼자서 끙끙 앓던 시간을 효율적으로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전부터 나는 AI를 활용해 글쓰기를 해왔다.
독자들도 눈치챘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AI가 대신 써주는 것이 아니라,
AI와 내가 대화하며 생각을 발전시키고,
서로의 강점을 살려 더 완성도 높은 글을 함께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된다.
AI는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 멀리 데려가는 '또 하나의 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AI는 혼자만의 싸움을 끝내고, 함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기술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닌다.
AI는 우리에게 놀라운 편리함과 새로운 가능성을 선물했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인간 소외를 불러오기도 한다.
업무 자동화로 인한 실직은 단순한 생계 문제를 넘어,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SNS 알고리즘은 연결을 촉진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사람들 사이의 깊은 대화와 진정한 관계는 희미해진다.
데이터에 의해 예측되고 소비되는 존재로 살아가는 삶,
그 안에서 인간성은 점점 얇아지고 투명해진다.
우리는 AI의 가능성과 위험을 모두 직시해야 한다.
빛을 누리고 싶다면, 그림자 또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내 직업은, 내 일상은, 사라질까?"
정답은 단순하지 않다.
반복과 규칙에 의존하는 일은 빠르게 대체될 것이다.
그러나 공감, 윤리, 창의, 관계처럼 '인간다움'이 필요한 영역은 더욱 빛날 것이다.
기계는 효율을 구현할 수 있어도, 인간은 의미를 만든다.
기계는 정보를 분석할 수 있어도, 인간은 타인의 아픔에 가만히 귀 기울일 수 있다.
공감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외로운 마음을 어루만지고, 한 사람의 작은 떨림에도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것은 어떤 기술도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다.
문장으로 명확하게 서술 가능하며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 직업은 사라질 것이며,
인간끼리 대면하고 공감이 필요한 직업은 살아남을 것이다.
AI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기계보다 더 인간적인가?"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인간 소외를 넘어서는 진정한 '존재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답해야 한다.
"나는 타인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다."
AI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 공허하게 만들 수도 있다.
기술이 깊숙이 파고들수록, 우리는 더욱 인간적인 것을 지켜야 한다.
빠르고 편리한 연결 대신, 천천히 손을 맞잡는 대화를.
효율적인 소통 대신, 느리고 따뜻한 공감을.
지금까지 브런치에 적어왔던 나의 철학과 생각들은, 과연 AI로 대체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으로 차가워진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사람의 온기를 원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시대를 역행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느리게 산책하며, 책을 읽고, 타인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
그 안에서 우리는 감정을 교류하고, 외로움을 해소하며, 인간으로서 다시 숨을 쉬게 된다.
그리고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작가는 AI로 대체될 수 있을까?"
AI는 이미 유창한 문장을 만들어내고,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작가란, 단지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느끼고, 해석하고,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람이다.
기계는 흐름을 따라 글을 엮을 수 있지만,
인간은 자신의 아픔과 사랑, 고독과 희망을 담아 글을 쓴다.
그 차이는 숫자나 데이터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만의 결이다.
작가는 감정을 기록하고, 마음을 번역하며,
타인의 외로움에 다가가 위로를 건넨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믿는다.
작가는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성과 감성, 사유를 깊이 품은 작가는 AI 시대에 더욱 빛날 것이다.
우리는 AI를 도구로 삼아, 오히려 더 창의적이고, 더 인간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기술이 아닌, 마음이 중심이 되는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변화를 껴안을 수는 있다.
AI와 대립하는 대신, 이해하고 협력하는 것.
기계 너머의 온기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새로운 지혜다.
나는 AI를 통해 혼자였던 시간을 줄이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 또한 조금씩 바꾸어 나가고 있다.
기계와 함께하면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지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시대를 살아가며 선택한 방식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혼자가 될 것인가, 서로를 느끼며 함께 걸을 것인가.
나는 오늘도, 한 걸음 AI와 함께 나아가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사람을, 마음을, 그리고 나 자신을 더욱 깊이 품고 싶다.
"기계는 기억하겠지만, 사람은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