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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철학을 다시 써야 하는가

AI 시대의 인간, 실존을 다시 정의하다

by Dㅠ


기존의 실존주의는 개인이 세계 앞에 고립된 존재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하이데거, 사르트르, 카뮈는 모두 ‘혼자 던져진 인간’,
즉 타인의 시선 속에서 불안해하고, 선택의 무게를 짊어지며,
죽음을 자각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을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인간은 더 이상 고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연결되고, 감시당하고, 소비되는 존재에 가깝다.
SNS는 끊임없이 나를 노출시키고,
AI는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알고,
알고리즘은 나의 취향을 조작하면서도
그 선택이 ‘나의 의지’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고독이 아니라 지속적인 타인의 개입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실존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건 아마도 이런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정보가 나를 대신 생각할 때, 나는 무엇을 믿고 선택할 수 있는가?”
“나는 나로 존재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고,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진짜 나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환상을 넘어
‘의식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더 이상 무한한 자유는 없다.
기술은 우리의 관심을 사고, 감정을 해석하고, 결정의 일부를 대신한다.
그 속에서 실존은
자유의 환상 속에서 흘러가는 삶이 아니라,
깨어 있는 선택을 반복하는 의식의 행위가 된다.

과거의 실존주의가 고독한 인간을 전제로 했다면,
AI 시대의 실존주의는
**"과잉 연결 속에서 나 자신을 분리해내는 기술"**이 될 것이다.

실존은 더 이상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맞는 단어를 직접 고르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는 작은 행위 속에서 시작된다.

뉴스를 넘기다 멈추는 한 문장,
수십 개의 피드 중에서 좋아요를 누르지 않고 스크롤을 멈추는 순간,
어디선가 카톡이 오지만 바로 답하지 않고
잠시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그 몇 초.

실존은 그런 틈 속에서 깨어난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기계가 모든 걸 대신해줄 수 있는 시대에,
나는 왜 여전히 스스로를 이해하려 애쓰는가.

그 물음에서 철학은 다시 시작되고,
실존은 다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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