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서 사람은 배운다
생각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대화를 통해 깨닫게 된다.
주식 같은 재테크 이야기, 게임이나 스포츠 같은 취미 이야기들이 그렇다.
대분류는 비슷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겪는 ‘소분류의 경험’은 각자 다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체험이다.
그리고 그 작은 경험들이 기존의 편견이나 고립된 생각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준다.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TV로 경기를 볼 때면 ‘저 선수는 왜 저 상황에서 골을 못 넣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서 직접 해보자는 마음으로 소규모 풋살 모임에 참여했다.
물론 축구와 풋살은 경기장 크기도, 인원 수도 다르지만, 풋살이 축구의 축소판이라 생각하면 본질은 비슷하다.
풋살은 경기장이 작다 보니 축구보다 더 빠른 판단을 해야 한다.
공을 다룰 때마다 슈팅, 패스, 드리블 등 모든 상황에서 순식간에 결정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제야 TV 속 선수들의 플레이가 얼마나 치열한 판단의 연속이었는지 실감했다.
‘밥 먹고 축구만 하는 프로 선수들도 쉽지 않겠구나.’라는 걸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게임이라는 대분류는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기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을까. 당시 문방구 앞에는 소형 오락기가 있었다.
100원, 200원만 넣으면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콘텐츠였다.
당시 나는 친구가 많지 않았기에, 게임은 나의 일상 그 자체였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게임은 나의 영원한 친구다.
“왜 좋아하느냐?”라고 묻는다면, 아마 “그냥 좋아.”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게임은 현실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선택의 자유’를 느끼게 해 준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매체와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의 선택이 곧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다중 우주의 경험을 제공한다.
그 속에서 나는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세계를 직접 움직이는 감각을 배운다.
직선적인 영상 매체는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히지만,
게임은 내가 선택한 결과가 세계를 바꾸기에 훨씬 오래 남는다.
A는 잘못된 선택으로 주인공이 죽는 배드엔딩을 보고,
B는 올바른 선택으로 사건의 진실을 깨닫는 트루엔딩을 본다.
이처럼 게임은 각자의 선택으로 ‘또 다른 세계’를 체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주인공이 된다.
천재, 카리스마, 사나이, 모두가 동경하는 인물로.
현실에선 찐따였던 내가, 이 세계에선 강인하고 매력적인 남자가 되는 것.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로망 아닐까?
나는 관심 있는 분야가 많다.
콘서트, 축구, 글쓰기, 게임 등 항상 ‘집 안’이든 ‘집 밖’이든 밸런스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한 분야만 깊게 파는 사람보다는, 얕고 넓게 시야를 보는 게 내 성향에 더 맞는다. 타인과 대화 할 때 다양한 영역으로 질문을 할 수도 있고, 정보 교류에 탁월한 장점이 있다. 대화에서 빈 오디오를 채우는 것은 중요한 요소이다.
하나의 철학자만 읽기보다는 소크라테스, 칸트, 쇼펜하우어 등
다양한 시대의 사상을 접하며 내 생각을 단단히 다지는 걸 선호한다.
게임도 한 가지만 하는 것보다 여러 장르를 경험하며 도파민을 충전하는 게 좋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매번 같은 주제보다 새로운 주제를 다루는 게 더 재미있다.
지금 이 글 역시 그런 시도의 일부다.
요즘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한 우물만 파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브런치에도 글을 올리고, 인스타그램도 한다.
지금은 SNS의 파이가 다양하게 나뉜 시대이기에,
다양한 시도를 통해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타인의 시선엔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성공이 간절하다면, 1분 1초라도 더 투자해야 한다.
누군가는 나의 글을 보고, 나를 알아봐 줄지도 모른다.
그 믿음 하나로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자, 나만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