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착함을 공짜 자원처럼 쓴다
이상하지 않나.
회사에서 늘 바쁜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대부분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다.
부탁하면 싫은 내색 안 하고
급하다고 하면 일단 받아주고
“이건 제 일이 아니에요” 같은 말은 잘 안 한다
그래서 일이 몰린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거절하지 않아서.
우리는 회사가 합리적으로 움직일 거라고 믿는다.
업무는 공평하게 분배되고
역할은 명확하고
과한 요청은 조정될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회사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 쪽으로 움직인다.
부탁했을 때:
“이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말없이 처리해주는 사람
둘 중 누구에게 다음 일을 맡길까?
답은 너무 명확하다.
조직에는 항상 빈틈이 생긴다.
누군가는 늦고
누군가는 빠지고
누군가는 책임을 흐린다
이때 착한 사람은 그 틈을 메운다.
문제가 터지지 않게, 조용히.
그래서 회사는 이렇게 기억한다.
“이번에도 잘 넘어갔네.”
그리고 같은 방식이 반복된다.
착한 사람은 어느새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
가장 억울한 지점이다.
일을 잘 처리하면,
사람들은 그걸 고생이 아니라 여유로 착각한다.
표정 관리하고
일정 맞추고
“괜찮아요”라고 말하니까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그래서 더 맡긴다.
바쁜데 안 바빠 보이는 사람은
계속 바빠진다.
처음 한 번은 부탁이다.
두 번째부터는 기대가 된다.
세 번째부터는 당연해진다.
“이번만”이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말이 나온다.
“원래 네가 하던 거잖아.”
착한 사람은 그 말을 듣고도
딱 잘라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의 행동은 대부분 보고되지 않는다.
대신 처리한 일
조용히 메운 공백
급한 상황에서 버텨준 시간
결과만 남고, 과정은 사라진다.
그래서 회사는 이렇게 판단한다.
“업무량은 감당 가능한 수준.”
감당한 사람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좀 더 이기적으로 살아라.”
“왜 그렇게 다 해주냐.”
이 말들은 현실적이지 않다.
좋은 사람에게 필요한 건
성격을 바꾸는 게 아니라 기준을 말로 만드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내 일인지
언제 가능한지
무엇을 하면 다른 게 밀리는지
이걸 말하지 않으면,
회사는 계속 착함을 자원처럼 쓴다.
착해도 된다.
다만, 조용히 떠안지 않으면 된다.
선을 긋는다는 건
못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착함의 사용 설명서를 붙이는 일이다.
다음 글에서는
“선을 긋되, 미움받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
같은 말을 해도 덜 까칠해 보이는 사람들의 방식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회사에서 나를 덜 소모시키는 글을 계속 쓴다.
이 시리즈가 필요하다면 구독으로 이어줘도 좋겠다.
그리고 하나 묻고 싶다.
당신은 회사에서
착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일이 많이 맡겨지는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