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에 피가 묻어 나온다며 병원을 찾은 환자 대부분은 이렇게 묻곤 합니다. 아무래도 전에 없던 ‘출혈’ 증상이 나타나면 덜컥 겁부터 나게 마련입니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걱정과 불안감을 가까이서 봐왔기에, 오늘은 항문출혈을 일으키는 질환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치핵은 우리 몸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쿠션 조직입니다. 변이 부드럽게 나오는 데 도움을 주고 항문이 닫힌 상태에서는 괄약근과 함께 변이 배출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이러한 항문 조직이 여러 원인에 의해 항문관 밖으로 빠져 있는 상태를 치핵이라고 합니다. 쿠션 조직이 장기간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되면 치핵이 발생할 우려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치핵의 대표적인 증상은 배변 중 항문 출혈입니다. 대변을 볼 때 변에 선홍색 피가 비치기도 하고 항문 통증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또한, 항문 탈출 증상이나 항문 주위 가려움, 항문 주변의 불편감과 불쾌감 등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치열이란 배변 시 치상선 아래쪽 항문을 덮고 있는 피부가 찢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딱딱한 대변으로 인해 항문관이 손상되면서 발생합니다. 단단해진 변이 항문 내 괄약근을 지나면서 그 주변으로 상처를 내어, 항문 주변 피부가 찢어지면서 피가 나는 것입니다.
치열의 90% 이상이 항문 뒤쪽 가운데 부위에서 발생합니다. 항문 뒤쪽은 혈액 공급이 적어서 상처가 나더라도 잘 아물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치열의 대표적인 증상 중에 궤양이 있는데, 대부분 항문 뒤쪽으로 생깁니다.(※ 여성의 10%에서는 항문 앞쪽에서 발생) 이 경우, 궤양 부위에서 출혈이 생겨 선홍색 피가 휴지에 소량 묻어 나오기도 합니다.
배변 시, 혹은 배변 후까지 항문 주변이 심하게 아프고 항문 통증 증상이 1~2시간, 심지어 하루 종일 지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항문 피부꼬리란 다른 말로 ‘췌피(피부 늘어짐)’라고도 부릅니다. ‘꼬리’라는 표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항문 주변의 피부가 늘어져서 살덩어리가 마치 작은 꼬리처럼 튀어나온 상태를 말합니다. 항문 속의 피부가 부었다가 가라앉는 것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항문 피부가 늘어나고, 그 상태가 계속해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항문 피부꼬리는 치핵이 악화된 경우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항문이 심하게 부었다가 가라앉는 과정이 수 차례 반복되고 항문에 자극을 주면서, 항문 피부가 늘어져 그 흔적이 남기도 합니다. 또, 만성 치열로 인해 항문 찢어짐과 회복이 반복되면서 항문 피부가 늘어져 피부꼬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물론 항문 피부꼬리가 있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항문출혈을 유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치핵, 치열 등의 항문 질환과 관련이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각 질환이 근본적으로 치료되지 않은 환자라면 항문출혈 증상을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항문소양증이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항문과 항문 주위 피부, 또는 외음부가 지속적으로 간지러운 증상입니다. 여기사 ‘가렵다’고 느끼는 강도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문소양증 환자는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항문을 자주 긁게 되는데, 그로 인해 항문 주위가 붉게 변하고 종종 피가 나기도 합니다. 항문 가려움이 심해지면서 소량의 출혈이 발생할 수 있는, 일종의 ‘항문 자극 증상’입니다.
이처럼 항문출혈을 유발하는 항문 질환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항문출혈은 병원 진료가 필요하며, 그 출혈의 원인을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치핵 때문에 병원을 찾는 환자 중의 절반 이상은 치열, 피부꼬리, 단순한 항문 자극 증상과 같은 다른 항문질환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질환과 증상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경우가 흔하므로, 출혈의 원인을 정확히 아는 것이 치료의 시작입니다. 만일 항문 출혈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병원에서 꼭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