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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새미 Apr 24. 2024

어쩌다 어쩌다 어쩌다 너희를 좋아하게 됐는지


“정말 너무 멋있다! 이게 축구지!”


2019년도 가을이었다. 월드컵도 끝나고, 유로컵도 끝나고, 코파 아메리카도 다 끝나니 더 이상 볼 축구 경기가 없었다. 90분 동안 눈을 떼지 못하는 그런 품격 있는 축구 경기를 보고 나면 마치 내가 그 경기장에 있었던 것처럼 온 에너지가 한순간에 빠져나갔다. 물론 선수들과 달리 나는 뽀송뽀송 했지만 마음에서는 보이지 않는 식은땀을 많이 흘렸을 것이다. 분명하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속한 나라가 이기면 하루종일 하이라이트와 기사를 찾아봤다. 그것까지 경기의 연장선이었다. 헤드라이터에 역전승 혹은 대승이라는 단어가 보이면 그날 자체로 기분이 좋았다. (하도 뿌듯한 미소를 많이 지어서 누가 보면 내가 그들의 엄마인 줄 알 듯하다.) 그러다가 더 이상 볼게 사라지면 이런 마음이 들었다.

‘어라, 이거 밥 먹고 디저트를 못 먹은 것처럼 좀 헛헛한데?’

바로 다음에 볼 경기들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봤다.


드라마도 일주일을 기다리는 게 싫어서 아예 시작조차 안 하는데 축구를 기다리는 마음은 좀 달랐다. 다음 경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여행 가기 전에 여행을 기다리는 마음이 드는 것처럼, 그때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것처럼, D-day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조금씩 더 더 들떴다.

그리고 그때 어렴풋이 알고 있던 해외축구에 대해 알아봤다.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은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맨유, 파리 생제르망 이 정도가 전부였다. 선수들 정보를 알려줄 때 자막으로 쓰인 게 각자 속한 클럽이라는 사실도 이때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들어본 듯한 클럽도 있었지만 생소한 클럽도 많았다. 모든 컵 대회가 끝난 마당에 오히려 축구를 더 보고 싶은 마음이 한 여름의 더위처럼 들끓었다. 그때 네이버 스포츠 코너에 해외축구를 추가했다. 때마침 대부분 리그들이 경기를 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난 홀린 듯 어느 팀에 빠져들었다. 19-20 시즌, 잉글랜드의 첼시와 네덜란드의 아약스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조별경기를 하고 있었다.


현재 스코어 4:4인 상황에 후반 막바지, 새파란 유니폼(첼시)을 입은 선수들이 아약스 골대 앞에서 주거니 받거니 고군분투, 그러다가 골!인 줄 알았는데 오! 이런 같은 팀 선수 팔에 맞고 골이 들어갔다는 판정! 이럴 수가 저기 저 파란 팀 너무 아쉽겠다. 골이 인정됐으면 이기는 건데! 하지만 역전 골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캡틴 완장을 찬 주장의 표정은! 아쉽지만 여유롭게 동료들을 독려하는 저 표정!

‘오오! 이런 게 바로 스포츠인가요!’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의 작은 액정을 바라보는데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골이 취소되는 모든 장면이 영화 한 장면의 슬로우모션 같았다.


‘내가 지금 영화를 본 거야, 축구를 본 거야. 그렇다면 저 주장은 축구선수계의 휴그랜트인가. 얼굴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의 등 번호는 28번, 이름은 아스필리쿠에타

‘저런 주장이 있는 팀은 절대 망가질 수 없을 것 같은데. 단합력도 좋아 보이고 파란색이 참 예쁘네... 무엇보다도 팀 이미지가 멋있네. ‘

꿈보다 해몽이 무섭다더니. 그렇게 멋대로 해석하고 그 자리에서 앞으로 내가 응원할 팀을 정했다.

‘좋아. 오늘부터 난 첼시 팬이다.’


첫인상에 홀딱 반해 첼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5년 동안 나는 과연 몇 번 웃었을까. 한쪽 손으로만으로도 셀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팀을 골라도 너무 잘못 골랐다. 왜 하필 그 시즌에 가장 핫한 영상을 찾아보게 된 것일까. 정말이지 찾았다 오마이걸이 아닌 망했다 오 마이갓 그 자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아니지 그래도 한번 첼시는 영원한 첼시 아니겠어.’

그렇게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나의 축구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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