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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왜 안싸울까?

by 눈새미

프롤로그: 우린 왜 안 싸울까?


내가 어릴 때 티브이에서 당신의 남자친구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보십시오라고 알려주는 듯한 예능을 본 적이 있다. 어느 한 술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의뢰인 남자친구와 미리 섭외한 여성분을 투입시켜 음주를 하며 술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술기운이 올라온 남자는 대부분 옆에 앉은 여성분에게 홀딱 넘어가는, 스킨십은 당연하고 2차로 향하는 그 장면을 여자친구와 시청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었다. 요즘 시대에 나왔다면 매주 유튜브에서 인급동 1위를 차지할 그야말로 매운맛 예능이었다. 난 그때 고자극적인 장면들을 빠짐없이 다 봤고, 매우 어린 나이에 불과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저런 남자는 피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따지면 아주 교육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되려나. 아무튼 그 예능과 더불어 우리 엄마는 내가 아빠같이 착한 사람과 결혼하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 아빠는 착하긴 착하다. 일단 자잘 자잘한 잔소리를 하지 않고, 퇴근하고 들어올 때마다 전화를 해서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봤다. 아마 나의 어릴 때 살은 여기서부터 시작됐으리라.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은 후 후식으로 아빠가 사 온 빵을 먹었고, 후식을 먹고 또 후식으로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치킨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의 빌드업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아빠는 언제나 우리에게 의견을 묻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매우 촘촘하게 투입시켰다. 덕분에 나는 집을 매우 좋아했고, 엄마가 말한 것처럼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기’가 당연하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내 연애의 기준이 되었고 아주 일찍이 ‘착함 퍼스트’ 주의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 착함의 기준도 조금씩 달라졌다. 초등학생 때는 딸기잼 바른 식빵과 볼에 뽀뽀를 받으며 남자친구가 생겼고 (먹을 거 주는 사람은 착한 사람!) 중학생 때는 문구점에서 과자 한 봉지와 장미 한 송이를 받으며 남자친구를 만났다. (과자에 꽃이라니!) 그리고 헤어질 때도 과자를 먹으며 헤어졌다. 둘 다 형식상 사귄 거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이성친구라기보다 베스트 프랜드라고 말하는 게 더 어울리는 사이였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번호를 주고받으며 만남을 시작했고(잘생긴 게 착한 거다!) 대학생 때는 선배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만남을 시작했다. (키가 큰 게 착한 거지!) 그리고 지금의 남편 하고는 영어학원에서 밤 10시까지 같이 공부하고 집에 가기 전 패밀리마트에 들러 쿠키를 먹고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며 가까워졌다. 아르바이트하셨던 분은 매일 같은 시간에 가서 같은 간식을 사 먹는 우리를 보고 사귈 거 같다는 걸 짐작했을까? 만약 눈치챘다면 눈이 꽤 밝은 사람! 그때는 썸에 불과했는데 워낙 자주 붙어 다녀서 의도치 않게 티를 엄청 내뿜은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자주 붙어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에게 자주 듣던 질문이 있다. 연애할 때는 주로 “8년 동안 한 번도 안 헤어졌어?” “권태기는?”이 두 개가 압도적이었고, 결혼 후에는 “결혼하고 싸운 적 없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이 오랜 시간 같이 있다 보면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똑같은 사람을 컨트롤씨 컨트롤브이 한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균열이 안 생기겠어?)

나는 자칭 타칭 평화주의자. 크든 작든, 싸움은 딱 질색이다. 꼭 싸워야만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잖아? 안 싸우고도 길은 있다. 그게 나도 좋고, 상대도 좋고. 게다가 안 싸우고 만들어낸 결과가 더 오래간다. 그러면 나도 편하고, 상대도 덜 상처받고.

아무튼 우리가 만약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 나갔다면 분량 부족으로 중도하차통보를 권유받았을 것이다. 화려한 사건사고도 불꽃이 튀는 티키타카도 거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밋밋함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데 성급하지 않게 상대의 문을 잘 두드리며 맞춰갈 수 있었다. 결국 그것이 지금까지도 함께 잘 지낼 수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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