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편입시험에서 모조리 떨어졌다. 예상 못 한 건 아니었다. 준비도 부족했고, 마음도 그만큼 간절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끝내는 건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닌 느낌이라 제대로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어설프게 한 번 해봤으니, 이번엔 덜 두렵겠다는 이상한 확신 같은 것도 생겼다. 그래서 공부하러 서울에 가보기로 했다.
학원은 동대문에 있는 곳으로 골랐다. 서울역에서 몇 정거장 안 되는 거리라 대전에서 올라오기에도 부담 없었다. 고시원은 학원에서 걸어서 10분.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중요한 건 늘 하나였다. 가까워야 한다는 것. 그래야 덜 지치고,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낯선 서울살이에 안정감이 절실했던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오는 물리적인 안정감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서울역과 가까운 동대문. 대전에서 막 올라온 나에겐 그 거리마저 위안이 됐다.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는 게, 생각보다 덜 외로울지도 모른다고.
백팩에 옷 몇 벌이랑 생필품 좀 꾸역꾸역 넣고,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한 40분쯤 지났을까, 한강철교를 지나갈 때 기차가 덜컹거리더니 창밖 풍경이 훅 달라졌다. 한강이었다. 강 위로 뻗은 다리를 기차가 지나가는데, 딱 봐도 서울 느낌. 저기 육삼 빌딩— 금색으로 번쩍번쩍— 진짜 실물 맞나? 와, TV에서만 보던 거를 내가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니. 다리 아래엔 차가 여덟 줄로 꽉 막혀 있고, 옛날 건물 옆엔 반들반들한 새 건물들이 바짝 붙어 있네. 뭐가 이렇게 빽빽하고 정신없는데, 또 묘하게 멋있어.
대전에서 나고 자란 눈엔 하나하나가 다 구경거리였다. 진짜 서울이네, 진짜로.
감탄에 잠겨 있던 찰나, 서울역 도착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기차 안을 감싸는 음악은 마치 ‘잘 왔다’고 환영하는 듯했다. 그 음악에 어깨가 펴지고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졌다. 마치 멀리 떠나는 사람처럼 백팩은 한없이 무거웠지만.
동대문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출구가 열 개나 있다는 사실에 좀 멍했다. 이게 뭐야, 도대체 어디로 나가야 하는 거야? 싶은 마음인데 한쪽에서는 빵을 팔고 있네? 여기에서 빵 냄새가 나다니, 대전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게 낯설면서도, 동시에 신기했다. 지금 같으면 새로운 곳에 오면 무조건 긴장부터 하겠지만, 그땐 달랐다. 그냥 바로바로 받아들이고, 체감했다. 아마도 ‘익숙해져야 한다’는 본능이 작동했던 모양이다.
긴 지하도를 빠져나오니, 서울은 사람이 아니라 ‘길’이 먼저 날 반겨주는 듯했다. ‘길이 이렇게 넓을 수가 있나.’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도, 마음이 괜히 바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10번 출구에서 조금만 걸으니, 내가 고른 학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길을 몰라도 금방 알 수 있었던 건 높은 건물 위에 붙은 커다란 간판 덕분이었다.
이야, 스케일부터 서울이었다. 모든 층에 수강실이 있고, 복도 창문 너머로는 낙산공원이 보였다.
‘이 창문으로 사계절을 다 보겠네.’
맨 위층 자습실은 또 어찌나 넓은지. 진짜 다르다, 달라.
자습실엔 이미 사람들이 빼곡했다. 운동복에 삼선 슬리퍼, 까슬한 피부. 나 역시 후줄근한 차림으로는 전혀 꿀리지 않았다. 그들과 동질감을 받고 계단으로 다시 내려가려는데 그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안다는 듯한 보이지 않은 시그널을 느꼈으리라.
‘근데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대전에서 학원 다닐 때 본 사람인데, 그 당시에도 느꼈지만 내가 딱 싫어하는 관상이었다. 학창 시절에 버스 맨 뒤에 앉아서 시끄럽게 굴 것 같은 얼굴로 학원에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사람. 그리고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 몸은 또 너무 말라서 날카로운 인상이 더 부각되는 사람.
이 넓은 서울에서 다시 마주치게 될 줄이야. 난 부디 그가 날 스쳐 지나가는 사람처럼 넘어가길 바랐다.
‘제발 아는 척하지 말아 줘. 난 조용히 공부만 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