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보이지 않아도 걱정 마. 구름 속에 숨어 있으니까.
기다려. 곧 더 환한 빛으로 우리를 비출 테니까.
걱정 마 구름 속에 숨어 있으니까 ⓒ어른왕자
아내와 아들 딸을 두고 혼자 산을 오른다.
제법 산이 가파르다. 숨이 점점 거칠어지고 입 안이 말라간다.
심장이 찢어질 것 같다.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그래도 심장은 그전에 있었던 일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가라앉지 못하고 있다.
견디자. 각자 견디자. 서로를 위해서 각자 견디자.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아빠, 견뎌 주세요. 엄마도, 견뎌 주세요.
나도 잘 버틸게요.
그리고 사랑하는 내 동생,
너를 위해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힘을 내줘.
무엇이 옳은 일인지, 현명한 일인지 분명 알겠는데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
그리고 그 누군가를 또 다른 누군가가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고통스럽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현명한 일인지 이젠 모르겠다.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다시 산을 오른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
심장과 가슴과 마음은 모두 다른 곳에 있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심장과 가슴과 마음이 같은 곳에 있다고 믿고 싶다.
심장이 차라리 찢어졌으면 좋겠다.
가슴이 차라리 찢어졌으면 좋겠다.
마음이 차라리 찢어졌으면 좋겠다.
모두 다 찢어져 버리고
새로운 심장으로 새로운 가슴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마음이 말라버린 동생을 위해 두 손을 꼭 모은다.
우리 지금보다 더 행복하자.
아니, 네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우리에겐 네가 가장 소중해. 너만 가장 소중해.
고생했고, 애 많이 썼어.
충분히 할 만큼 했어.
이제 사랑스러운 내 동생으로
철없는 엄마아빠의 딸로 다시 돌아와도 괜찮아.
오빤 널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어.
엄마아빠도 그럴 거야.
계속해서 올라간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고 올라간다.
가다 보면 나타나겠지. 내가 맘 편히 쉴 곳.
어디쯤 왔을까?
H,
알파벳 대문자가 잔디밭에 누워있다.
나도 잔디밭에 함께 누워본다.
Helicopter,
프로펠러가 바람을 일으키며 착륙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두 귀를 꽉 막고 낙엽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광경을 떠올린다.
잠이 쏟아진다. 잠깐 눈을 부치고 싶다.
H,
여기가 Home이다.
여기가 Home ⓒ어른왕자
감았던 눈을 뜨니 하늘이다.
오랜만에 하늘이다.
하늘 보는 것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구름 뒤로 펼쳐져있는 파아란 하늘을 쳐다본다.
뻥! 속이 후련하다.
파아란 하늘을 가리고 있는 구름을 본다.
색깔도 모양도 다른 구름들.
그래, 맨날 파아란 하늘일 수는 없잖아.
흰구름도 피어있고 먹구름도 몰려오고 비고 오고 눈도 오고 천둥 번개도 치고,
그래야 하늘이지. 그러니까 하늘이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벽에 그려놓은 그림이 손짓한다.
어린 시절 우리는 참 행복했다.
엄마와 아빠, 나와 동생. 우리 넷은 정말 행복했다.
행복은
우리 곁에.
힘이 난다.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