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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왕자 Dec 05. 2023

늘 : 채움

휘호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아들과 딸이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달콤한 주말을 맞아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들뜬 아이들을 위해, 힘껏 두 발로 이불을 걷어찬다.


굴비의 고장, 영광.

많은 사람들이 간장게장을 밥도둑이라 하는데, 난 동의할 수 없다.

진정한 밥도둑은 굴비다. 영광굴비는 도둑 중에서도 최고 도둑이다.

바삭바삭 껍질이 잘 구워진 조기구이도 만만치 않다.

입안에 군침이 돌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 얼굴에 긴장감과 셀렘이 한가득이다.

딸아이는 어젯밤 꿈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왠지 큰 상을 받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한다.


"누나, 예감이 뭐야? 나도 예감 좋아하는데..."


진짜 뜻을 모르는 건지, 말놀이인지, 말장난인지,

일학년 아들을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렵다.

그래서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웃으면 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누나, 나도 상 받고 싶다."

갑자기 아들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꽤 진지한 표정이다.

그러지 마~ 아들! 이상하잖아. 원래대로 해.


직접 만든 티라노사우르스 종이 인형을 가져오더니

두 손을 모으고 공룡에게 기도를 한다.

"티라노! 꼭 상을 받고 싶어. 도와줘."

나도 두 손을 모으고 아들의 소원에 동참한다. 웃음을 꾹 참고.

토테미즘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영광으로 출발!

나들이를 떠난다.

웃는 얼굴에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둘이 함께라면, 오늘도 잘 다스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아내와 내가 했던 굳은 약속이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렵니다.

주변인에게 당당히 공언했던 말이다.

 

오롯이 우리의 힘으로 아이를 키우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아내와 나.

아내가 휴직을 하고 내가 또 휴직을 하고...

우리는 똘똘 뭉쳐 육아의 긴 터널을 잘 헤쳐나갔다.


그래도 육아는 너무 힘들었다.

아이는 한 명으로 충분했다.

한 명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첫째가 두 돌을 향해 순항하고 있을 무렵,

우리도 제법 육아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지난날의 굳은 약속을 잠시 깜빡했다.


우린 여전히(ing)

서로를 끔찍하게 아끼고(ing) 사랑했고(ing)

그래서 둘째가 쏜살같이 우리 곁에서 찾아왔다.


오매! 어째야쓰까~


둘째가 온 것을  알아차리고 아내는 힘들어했다.

며칠을 혼자 고민하는 눈치였다.

가끔 날 째려보기도 했다. 원망하는 마음을 담아.


나도 아내 옆에서 열심히 고민하는 척했다.

(사실 뭘 고민했는지 모른다.)

가끔 헤아릴 수 없는 한숨까지 크게 쉬면서.

(속으로는 만세 삼창을 부르고 있었다.)

안 그러면 아내의 눈빛에 찔릴 것 같았다.


아내의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때,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했다.



여보, 걱정 마. 내가 있잖아. 나중에 우린 훨씬 더 행복해질 거야.



8년이 지난 지금, 정말 그렇다.

우린 훨씬 더 행복해졌다.

두 아이가 주는 기쁨은, 세상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가요?

누군가 묻는다면 내 대답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아내를 만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일과

두 아이를 만나 좋은 사랑을 주려고 끝도 없이 노력했던 일입니다.

어떤 것이 가장 잘한 일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대회는 매우 엄격하게 진행되었다.

휘호 명제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참가자를 제외한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문 밖에서 아이들을 마음으로 응원한다.

최선을 다해 쓰고, 자신이 쓴 작품에 만족하기를 바랄 뿐이다.

 



두 아이가 손을 잡고 웃으며 나온다.

잘 썼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참는다.

잘  썼는지 못 썼는지 아이들은 스스로 알고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얘들아, 고생한 기념으로 아빠가 이벤트를 준비했어."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바로바로, 등산을 함께 하는 거야."

"뭐야! 그게 뭐야!"

아이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무슨 이런 이벤트가 있냐며 어이가 없다고 웃는다.

아들은 이건 이벤트가 아니고 벌칙이라고 한다.




구시렁구시렁 잘 따라온다.

헥헥 숨 넘어가는 소리가

껄껄 웃음소리로 변해간다.

웃다 웃다 쓰러지는 아이들.

숲이 부리는 신기한 마술이다.

웃다 웃다 쓰러진 아이들 ⓒ어른왕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을 채우는 글귀가 보인다.

늘 : 채움 ⓒ어른왕자

"얘들아, 고생한 기념으로 아빠가 진짜 이벤트를 준비했어."

"아빠! 또 등산, 산책 이런 거 아니죠?"

"마시고 싶은 음료, 맘껏 마셔도 좋아."


이 추운 겨울에 스무디를 시키는 녀석들.

역시 아이들은 놀라워.

찬란해.


: 채움

-부족함 없이 채워나가다-


나랑 딱 맞다.

사랑하는 아내도

스무디를 쭉쭉 빨아먹고 있는 앞에 있는 두 녀석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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