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손보며 돌보는 중입니다

by 스너푸킨

여전히 집에는 손볼 곳이 꽤 있다. 남편은 ‘인테리어는 천천히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만,나는 여기저기 손볼 곳을 리스트에 적어두고는 혼자 조급함에 보글보글거렸다. 그래도 올해 안에 조금씩이라도 해보면 좋겠다고 틈틈이 리마인드(aka 보챔)한 덕분에, 느리지만 조금씩 진전이 있었다.


당장 손대고 싶었던 리스트의 일부는 이렇다.

화장실 #2 세면대가 조금 틀어져있는 것도 바꿔주고, 틈새에 실리콘도 깨끗하게 다시 마감

안방 벽에 붙어있는 벽등을 LED로 바꿔주기

작은 방 페인트 마무리

손님 화장실 #1 조명 교체


이 리스트 중에 하나였던 화장실 조명을 얼마전에 바꿨다. 방이 있는 위층 화장실 두개는 이미 레노베이션이 되어 있었는데, 지하에 있는 손님용 화장실은 사용 빈도가 낮아서인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지하에서 TV도 보고 게임도 하느라 그 화장실을 쓸 일이 꽤 많았고, 유독 낡아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한국에도 90년대쯤 유행했던 (공포의) 체리색 몰딩이 있었던 것처럼, 미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오렌지빛 가구가 대세였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화장실의 오렌지색 조명이 아무리 봐도 ‘오래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원래 화장실에 달려있던 오렌지색 나무에 달린 조명- 남표니가 떼어내는 중이다

“일단 둬보자. 나쁘지 않은데-“ 하는 남편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몰래(?) 사고를 쳤다. 일단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의 조명을 골라 일단 주문해두고, 타이밍을 보다가 뜸을 있는대로 들인다.

”hoxy 부탁이 있는데...“(나름의 치트키랄까)

이렇게 말을 꺼내면 남편은 내용을 듣기도 전에 ”그래!!“하고 흔쾌히 대답하곤 한다.


“화장실 조명을 내가 주문해쒀요. 근데 이건 오빠가 해줘야될거 같숨다.“

남편은 ”이게 자기 마음에 들었던거예요?“ 약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다. 원래라면 같이 골랐을 텐데 내가 혼자 마음대로 지른 거라 조금 찔렸지만,

“해보고 별로면 리턴할까요? 그래도 저렴하고 리뷰도 좋더라고요”하고 버텨봤다. 남편은 “이왕 사는거 저렴한 거 말고 마음에 드는 걸로 하지 그랬어요”하고 결국 넘어가준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제 설치까지 순탄하기만 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말이다. 조명을 떼고 보니, 벽에는 전선만 덜렁 나와 있었다.

조명을 떼어내고 1차 페인팅을 끝냈다.

찾아보니 이 방식은 안전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전선은 반드시 벽 안의 Junction box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불꽃이 튀거나 열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편이 유튜브를 한참 찾아보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벽을 뚫어야될거 같아요“


산넘고 산이다. 이번에는 벽을 뚫고보니 구멍 바로 뒤에 수도 파이프가 있다.

남편: ”응? 이건 전혀 예상 밖인데? 이런 경우는 유튜브에 안나오는데?“

나: “그래서 이 화장실을 안 고쳤었나 봐요…”

Junction box는 보통 깊이가 2인치-2.5인치 정도라, 벽 뒤에 지나가는 파이프와 맞닿았다. Home depot 직원에게 물어봐도 마땅한 대안은 없다는 말뿐이었다.

우리가 시도해본 여러 Junction Box 다 깊이가 깊어서 실패

아.. 일을 너무 키워버린 것 같아 점점 미안해졌다. 괜히 내가 급해서 섣부르게 시작한 일 같았다. 원래대로 그냥 있어볼까도 했는데 기존에 있던 조명은 진즉에 내다 버렸다.


“정 안되면 그 화장실은 그냥 안 쓰지 뭐-”

“아님 낮에만 쓰는 화장실로 둡시다“

혹시나 마무리가 안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리는 서로를 달래면서 정신승리를 해본다.


괜히 남표니를 고생시킨 것 같아 얼굴이 잔뜩 시무룩해진 나에게 남편은 오히려 “어떻게든 될거야”라며 위로했다. “이건 그냥 우리 상황에 맞게 만들어야 될 것 같아요”


결국에는 조금 더 얕은 1.5인치짜리, 원래는 천장 조명용 Junction box를 사 와서 고정할 수 있는 핀을 따로 연결했다. 크기와 깊이를 하나하나 맞춰가며 새로 조립을 해서 끼워넣었다.

새로 조립한 박스를 설치하는 남표니

간단하게 끝날 줄 알았던 작업은 며칠이나 걸렸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드.디.어. 마무리가 되었다. 밝은 Led 조명까지 달고나니까 집에서 가장 환한 공간이 되었다. 웃기지만, 불이 켜지는 순간에는 과장 조금 보태서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드디어 완성된 조명.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화장실~~”

기쁨을 이기지 못한 우리는 한동안 지나간 옛날 가요를 개사해서 부르면서 주접을 떨었다. 생각해보면 이사 온 뒤 가장 공을 들여 고친 공간이다. 페인트도 잘 모르고, 조명도 잘 모르지만 하나하나 고민해가면서 우리 마음에 들게 고쳤다. 그래서인지 애정이 더 간다. 화장실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손이 닿아야 예쁘지. 공간이라는 건 아마도 살아있는 것. 사랑할수록 예뻐진다
-최고요 <좋아하는 곳에 살고있나요?>

이 문장이 유난히 깊게 와닿았다.


그리고 함께 사는 일도 그런 것 같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생각보다 더 큰 문제일 때도 앞으로 많겠지만, 그래도 그 문제를 같이 풀어나가는 사람이 남편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놓인다. 서툴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ㅡ 우리답게, 우리의 페이스대로 찬찬히 가꾸어 나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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