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부부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는 게임이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우리 둘 중의 하나가 “바쁜가?” 하고 물으면, 다른 한 사람은 “뎀뵤-”하면서 도전에 응답한다. 지는 사람은 설거지 담당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연애했을 때부터였다. 친구들이랑 모임이 끝나고 남표니가 데려다준다며 집 근처까지 같이 왔던 날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걸고 싶어서 집 근처에 타겟(Target)이라는 대형마트에서 구경하다가, 야치(Yahtzee)라는 주사위 게임을 하나 샀다.
‘보드게임을 굳이?’ 싶긴 했지만, 같이 새로운 것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보드게임을 직접 사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야치 게임 룰은 간단하다. 주사위 5개를 사용하고, 각 차례마다 최대 3번까지 굴릴 수 있다. 주사위를 굴릴 때마다 원하는 주사위는 고정하고 나머지만 다시 던져 조합을 만든다. 한 턴이 끝나면 점수표의 한 칸에만 기록하고, 마지막에 점수가 높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이게 재미있으려나?‘ 싶은 의구심은 언제 있었나 싶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했다. 남편이랑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좋은 때여서 더 그랬겠지만, 게임의 재미에 그렇게 눈을 떴다!
이거 재밌숴!
그 때는 2년 동안 같이 살던 룸메이트가 먼저 이사를 하게되서, 한 달 정도를 혼자 살고 있던 시기였다. 가구도 많이 비워져 있어서 집에 들아오면 더 텅 빈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데 둘이 마주 앉아 주사위를 던지며 까르르 웃다보니, 배 아프도록 웃는 소리가 웅웅 울렸다. 조용하고 서늘하던 공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보드게임은 우리집에 정착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게임에 젬병 중의 젬병이다.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잘 안된다. 친구들이랑 어쩌다가 게임을 하다보면 “게임을 할 때는 머리를 안 쓰는 것 같다”, “이기려는 마음이 전혀없다”는 말을 실제로 듣은 적도 있다. 같이 게임하기 재미없는 상대랄까.
나와 달리 남표니는 알아주는 겜돌이다. 컴퓨터 게임은 안 하지만, 대학생 때는 포커로 학비를 벌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여서 전문적으로 해볼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상대방의 수를 읽는 게임도 잘하고, 그렇지 않은 게임도 잘한다. 안그래도 게임을 못하는 데 이런 상대를 만났으니 도무지 남표니를 이길 수가 없다.
손님이 오면 식사도 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게임을 시작한다. 나는 “게임을 시작하지. 희생양이 되어주시죠”하며 당차게 판을 열어본다. 남편이랑 힘을 모으거나 서로 돕는 아름다운 모습은 없고, 어떻게든 남편의 독주를 막아보고 싶어서 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모양새다.
(남편이 한 수만 더 하면 게임이 끝나는 상황)
나: “게임 끝내지 마세요~~~~ 제발, 안돼에에에엑”
친구: “언니 생각보다 승부욕이 강하네요?”
나: “내가 이긴 적이 없어서 그래…“
남편이 대부분 봐주기도 하고 어드밴티지도 많이 주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소리 내 웃고, 그 시간 자체를 즐겁게 보내는 건 승부와는 별개라 좋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베타 서비스로 제공하는 게임에 한창이다. 핸드폰을 컨트롤러로 사용해서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어서 진입 장벽이 낮다. 우리의 최애 게임은 레고 게임. 각 라운드마다 미니게임을 하고, 이긴 사람부터 지도에서 말을 옮기며 골든 브릭을 많이 모으면 이기는 게임이다.
미니게임은 역시나 남편이 훨씬 많이 이긴다. 그런데 지도 위에서는 또 다른 변수가 있기도 해서, 한동안은 남편이 설거지를 도맡아 했었다. 그때는 잔뜩 신이 나서 “난 있잖아- 세상에서 오빠가 제일좋아“ 노래가 절로 나왔다. 내가 원래 이렇게 흥이 많았나 싶다가도, 남편 앞이니까 괜찮다 싶다.
마주보고 앉아서 마실거리 하나 꺼내두고 게임하는 시간이 즐겁다. 행복이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드는, 평범하고도 소중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