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과 차로 15분 거리에 산다. 남편은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같이 살았고, 지금도 짐을 모두 옮겨온 것이 아니라 세미 두집 살림 중이라 할 수 있겠다. 가족이 가까이 산다는 것이 든든하기도 하지만, 시월드가 옆 동네라니 마음 한편으로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조심스러움도 있었다.
남편이 시부모님을 정기적으로 병원을 모시고 가기 때문에 일주일에 1-2번 정도는 잠깐이라도 들른다. 또 가끔 코스트코에 갔다오면 부모님도 좋아하실만한 것들을 사다가 반씩 나누려고 하는데, 계획과는 다르게 돌아올 때는 늘 우리 손에 더 쥐어주신다. 주변의 걱정과 염려는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는 시댁이 가까워서 좋은 점이 더 많다.
시아버지는 93년도에 이민오셔서 근처 한인마트 생선 코너에서 40년 가까이 일하시다가 몇 년 전에 은퇴하셨다. 처음 인사드리던 날, “영어 잘 못해도 자식 다 키우고 그렇게 살았어요”라고 웃으며 말씀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시면서 매니저까지 맡으셨고, 같이 일하던 히스패닉 직원들에게 손짓 발짓, 짧은 영어로 다 설명하며 가르치셨단다. 그 우직함과 성실함에서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져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40년 일터인 마트는 그야말로 아버님의 ’나와바리‘인지라 80을 앞두신 지금도 마트의 가격표를 줄줄 외우고 계시고, 직원들에게 안부를 건네며 직접 장을 보신다. 신선한 생선이며 새로나온 제품들을 여분으로 사두셨다가 “이런거 묵나? 이것도 좀 가져갈래?“ 하시면서 바리바리 싸주시고는한다.
언제 우리 집에 오셨을 때에 골뱅이 무침을 해드린 적이 있다. 그 뒤로 골뱅이 캔을 사두셨다가 봉지를 주섬주섬 꺼내 넣으시면서 “그때 그거 맛있던데. 가져가서 해묵어라“ 하며 챙겨주신다. 아무리 괜찮다고 사양해도 결론은 늘 가져가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어머님은 텃밭에서 키우신 도라지, 배추, 고추, 가지로 반찬도 하시고 김치도 담가서 밀키트처럼 잘 포장해서 싸주신다. 손맛이 좋으신 시댁 찬스로 제철음식을 다양하게 맛본다. 처음 먹어본 고등어국 같은 지역음식도 있고, 양배추 물김치는 먹을 때마다 시원하고 달달해 떨어질 때가 아쉬울 정도다.
처음에는 결혼하고 난 다음에 남편한테 내가 밥을 잘 챙겨주지 못할까봐 걱정되셔서 이렇게 싸주시는건 아닌가 싶었다.
나: “감사하기는 한데요. 혹시 아들내미 굶을까봐 걱정되셔서 싸주시는건가?”
남편: ”아니야. 나 혼자 살 때는 안해주셨던거 같아요…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러고보니까 진짜 안해주셨었네?!!“
한국에 있는 친언니는 나와 정 반대의 상황이다. 언니는 부모님과 15분 거리에 살고 있다. 나는 미국에서 혼자 유학 왔다가 가족과 함께 이민 온 남편을 만났다. 형부는 영국에서 혼자 한국에 왔다가 언니를 만나 함께 살고 있다.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나라에서 ‘바톤 터치’를 한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형부에게 유난히 감정이입이 되고는 한다. “형부는 언니 말고는 한국에 가족이 없는 거잖아.“ 오지랖을 몰아서 형부 편 드는 것에 쓰고있다.
그러면서도 언니가 부모님이 농사지은 야채며 과일, 김치를 싸들고 간다는 메시지를 볼 때마다 배 아파했던 것 같다.
“언니는 엄마 찬스로 맛있는 거 많이 먹잖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언니에게는 마음의 빚이 많다. 언니는 늦게까지 일하는 스케쥴인데도 주말에 시간을 내서 부모님께서 수확하신 농작물 수확도 돕고, 콩 고르는 것도 돕는다. 부모님이 온라인으로 주문하거나 예매해달라고 부탁하시는 번거로울 수 있는 일들도 싫다는 소리 한번 없이 챙긴다. 생일이며 경조사도 도맡아 챙긴다. 나는 멀리 산다는 핑계로 1-2년에 한번 찾아오는 손님이 되어버렸는데 내가 소홀한 부분까지도 언니가 2인분씩 맡느라 고생인 것을 안다.
그래서 남편한테서 언니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형부에게서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가까이에 부모님이 계셔 자주 얼굴 볼 수 있는 즐거움과 감사함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녀들이 감당해야 하는 책임도 함께 커지니까 말이다.
남편은 부모님이 뭔가를 챙겨주실 때마다 “괜찮아요. 두고 드세요”라고 사양하는데 나는 부모님이 주실 때 ‘고맙다고 잘먹겠다’고 기쁘게 받아오라고 한다. 시부모님이 챙겨주시는 음식들로 나의 그리움이 조금 덜어지고, 멀리 있는 가족에게서 받지 못하는 마음의 온기를 대신 채우고 있는 것 같아서다.
시부모님 찬스로 몸과 마음을 살찌우며 가족이 되어가고 가족을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