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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 감성지기 Jun 21. 2022

성에 대한 예술적 관점

성은 예술일까? 외설일까?

성을 예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자라오면서 성을 온통 외설이라는 잣대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문뜩 드는 생각이다. 최근 뉴스를 보면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불법 촬영 범죄행위, 가족에 의한 성범죄, 공중 미디어 예능 프로그램들로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외설로 느껴질 법도 하다. 미디어를 통해 보는 세상은 성을 상품화로 가득하여 있는데 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하게 하려면 외설의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인간의 성은 시장 경제원리에 의해서 이윤을 목적으로 상업적 성 문화를 활용하기 때문에 성을 상품화하고 외설이 난무하게 된다.     



   하지만 성을 공부해 보면 다른 관점으로도 생각해 보게 한다. 아름답다는 것으로 시선을 맞추면 예술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의 감정이 그러하고, 임신의 신비로움이, 출산의 고통이 아름다움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생명의 탄생은 진짜 예술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성에 있어서 예술은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인간이 서로 평화 속에서 서로 어울려 살기 위할 필요 덕목일 것이다. 예술의 본질적인 의미는 서로 상생하며 함께 어울려 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과 외설은 근본이 다르다. 예술은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창작하기 위한 활동이지만, 외설은 성욕을 자극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적 흥분을 일으키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도록 만드는 음란한 표현들이다. 그 결과가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예술과 외설을 구분해야 하는 것은 외설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인식과 성 가치관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성적인 외설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 합리적인 대안이 필요하지만, 현재로는 별 특별한 대안이 없는 듯하다.


 인간은 정신적 심리적으로 다양한 감각을 추구하고 한번 경험한 자극에는 더욱더 크고 강한 자극을 원하고 갈구한다. 상업적인 목적에 힘입어 더욱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요소를 가미하다 보면 청소년기에 외설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에곤 실레(1890~1918)

  19금 드로잉의 대가, 천재 화가 ‘에곤 실레’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외설적인 변태 예술가로 불렸는데 그는 어린 시절 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대한 열정과 재능은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그림들은 누드는 기본이고,  그의 자화상은 가리려고 하는 부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직설적으로 드러난 여성의 중요 부위, 자위행위 모습, 동성애 장면까지 몸은 피골이 상접하고 괴기스러우며, 좀비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는 충격이었고 그의 그림들은 외설스럽고 비교육적인 작품으로 치부되었다     



  그의 예술에 대한 정체성은 가족사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아버지는 성병인 매독에 걸렸었고 그의 어머니 또한 매독에 걸려 배 속에 아이를 사산하기도 하였다. 실레가 3살 되는 해에는 누나가 선천성 매독으로 사망하는 불행도 겪었다. 결국 아버지도 매독 증상으로 직장을 잃고 사망하게 된다.


  실레는 어릴 적 성에 대한 불행한 경험들이 성에 대한 두려움과 성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괴로움으로 인해 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으리라 생각된다. 혹자는 그의 자화상이 성적 충동에 대한 괴로움과 공포가 느껴진다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통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꽃피우는 영감의 원천으로 작품 활동을 펼쳤으리라.      

남성 누드(1910)
쪼그리고 앉아있는 여성 누드(1910)

 

포옹(1917) 죽기 전에 봐야 할 명화


 한편으로 그는 성적 리비도를 솔직함과 정직함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순수한 자기만의 영혼을 지키려 했던 순수 예술인이라 생각된다. 청년 '실레'는 성욕은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며, 가족의 죽음으로 몰고 간 공포의 대상이었다. 공포와 본능 속에서 성 자체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고 숨기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성과 성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사회적으로 터부시 하는 성욕을 그는 거리낌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들은 관점에 따라서는 외설스럽고 비교육적인 작품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인간의 본성인 내면을 강렬하게 표현한 예술적 작품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죽음의 고통(1912)

  어느 날 실레는 성범죄자고 몰리게 됩니다. 조용한 시골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작은 시골 마을에서 호기심 많은 마을 소녀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실레에 집에 자주 찾아오게 된다. 그는 그녀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마치 ‘롤리타 콤플렉스’를 연상하는 그림을 그리고 노골적인 성적 장면을 자주 그리곤 하였다. 그가 아이들의 옷을 벗겨서 그림을 그린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어 마을에 번지게 되어 성범죄 용의자로 법정에 서게 된다. 하지만 노골적인 성적인 묘사의 그림들은 ‘풍기문란죄’로 23일간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된다.

*롤리타 콤플렉스: 성인 남자가 미성숙한 소녀에게 성욕을 느끼거나 정신적인 동경을 가지는 심리적인 경향(출처:두산백과)


  감옥에서의 그의 그림들은 자신의 괴로움과 분노, 자신의 예술이 탄압받고 있다는 생각을 그림으로 승화시킴으로 그는 고통을 이겨낸다. 그로 인해 그의 그림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절제된 이성의 모습을 보이고 누드의 수위를 낮추며 관능보다는 명확한 선과 질서를 표현함으로써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된다. 조화와 균형, 감성과 이성의 조화, 그의 정신적 성장. 그로 인해 그의 작품은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실레'는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열정과 자기애, 10대 청춘의 열기를 꾸밈없이 화폭에 담았다. 그의 작품에 담긴 그의 내면을 이해하고 나면 그의 그림들이 예술로 느껴지기도 한다. 외설이란 이윤이 목적인 상업적이지만 '실레'는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하였기 때문이리라.      



  만약 천재 화가 '실레'가 어려서의 성 경험이 행복한 가족과 더불어 아름답고 긍정적인 시각이었다면 어땠을까? 그의 작품이 더욱 빛나지 않았을까? 어려서의 성 경험의 중요성을 더욱 느낄 수 있다. 특히 청소년기 이전에 경험하는 성 경험들은 더욱 그러하다.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성, 일생에 동반되는 성에 대한 의미들이 아름답게 승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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