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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루루루 Jul 12. 2020

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 <나도 작가다 공모전>

도박사의 오류

 몇 년 전 내가 즐겨 하던 모바일 게임 ‘삼국지 조조전’ 에는 아이템 강화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게임 내 재화를 들여 아이템의 성능을 높이는 것이다.

이 강화는 30%의 확률로 성공하는데 확률이 간사해서 연속해서 10번을 시도해도 실패할 때가 있었다.

10번 연속 실패할 확률은 계산해보면 대략 2프로 정도인데 그 확률이 꽤 빈번했다.

더 극악한 것은 강화에 실패하면 아이템이 그 전 단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버튼을 누르다보면 아이템은 완전 낮은 단계로 귀결된다.


그 당시 나랑 같이 게임을 했던 사람들은 아이템 강화를 잘 하기 위해 ‘제물’이라는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 일부러 필요없는 아이템을 강화하고 4~5번 정도 실패하고 나면 내가 원하는 아이템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도박사의 오류다.


사실 나는 이 ‘제물’ 시스템을 믿지 않았다.  학교 다닐때 무수하게 많이 배웠던 독립시행, 독립사건,

 앞에 4번을 실패했든, 10번을 실패했든 결국 다음 확률은 30%라는 걸 수업시간에 질리도록 배웠기 때문이다.


근데  어느새 나도 이 ‘제물’ 방식을 따라하게 되었다.

성공을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의지할 수 있는게 전혀 없을 때 사람은 ‘비정상적인 확률’을 믿게 된다는 걸 그 떄 알았다.

이게 아이러니한건 믿으면 믿을수록 실패를 바라게 된다는 것이다.


실패를 여러번 하면 기쁘다. 그 다음엔 성공할거란 믿음이 샘솟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번 실패하면 그제서야 내가 원하는 아이템 강화에 도전한다.


이 게임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어느 순간 내 삶에이를 적용시키려고 노력했다. 불운한 일이 생기면 자책하기보다 다음엔 행운이 올거란 생각을 하고 살았다.

길가다 휴대폰을 떨어뜨려서 액정이 깨져도, 더 좋은 휴대폰을 살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고

불운한 일이 겹치면 그 주에는 로또를 하나 사며 행운이 다가오길 바랐다.


성공하기 위해선 여러번의 실패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제는 누나의 공무원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누나는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2년 전부터 공무원 시험에 전념했다.


진로 고민을 꾸준히 하다가 결정했는데 누나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혹시 떨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안이 앞섰기 때문이다.


2년을 준비했고 얼마전에 공무원 시험을 봤다.

누나는 아쉽게도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누나는 오전내내 개를 숙였다. 책상 아래는 휴지가 쌓여있었다. 은 먹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누나는 다음날 시험을 위해 눈물을 훔쳐가며 서실로 향했다.


2년을 준비한 시험에서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진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그리고 그 슬픔을 이겨가며 다음날 시험을 준비하는 누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하는지 감이 안왔다. 단순히 다음엔 합격할거란 위로는 차마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누나는 2년동안 3~4번의 실패를 했을 것이다. 게임에서라면 그 정도 실패하면 다음에는 보통 성공하는데...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인생은 확률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직 실패가 더 필요한 건가?

그렇지만 더 시도해보자고 말할 순 없었다.

게임처럼 버튼만 누르면 되는게 아니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문장이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번의 도전이 필요하고 그 도전과정에서 실패는 따라오기 마련이고 그 실패를 발판삼아 계속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한다!

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이 실패의 고통을 과소평가한다.

실패가 어떤 타격을 미치는지.

사람을 어떻게 고통스럽게 하는지

발판이라고 생각했던 실패가

알고보니 발을 계속 빠지게 하는 늪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다.

실패를 가볍게 보는 시선이 무섭고 두렵다.


실패는 실패다.

발을 계속 빠지게 하는 늪이다.

책상에 고개를 숙이게 하며

밥도 먹지 못하게 한다.


성공을 위해 도전하게 만드는 동력은

계속된 실패가 아니라

실패 옆에 놓인 희미한 ‘희망’이다


에디슨은 필라멘트 발명할때 90가지를 재료를 썼는데 전부 실패했다고 한다. 그만하자고 제안하는 조수에게 그는

" 무슨 소리야, 자네는 왜 실패로 생각하나? 우리는 실패가 아니고, 안 되는 재료가 무엇인지 90가지나 알아냈나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에디슨을 포기하지 않게 만든건 단순히 실패가 아니라

90가지의 필라멘트가 남긴 희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에게  

무작정 게임 강화 확률처럼 “다음엔 될 거야” 란 위로보다

“실패를 발판삼아 다음엔 성공할거야”란 조언보다.


얼마나 힘든지 물어보고 그 슬픔을 마음껏 털어놀수 있도록 자그마한 공감을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게 아니면 희망을 찾아주는 것도 좋 것이다.


저녁엔 누나에게 치킨 한마리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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