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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루루루 Aug 15. 2020

연애하면 좋은 점

 연애를 시작하고 좋은 점은 더 이상 인연을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모르는 사람의 연락처를 받고 언제 연락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어색한 자기소개를 주고받을 필요도 없다. 상대방의 집과 내 집에서멀지 않은 장소를 찾기 위해 네이버 지도를 볼 필요도 없고, 만날 장소로 카페가 좋을지 음식점이 좋을지 그곳이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하기 적당한 곳인지 후기를 살펴볼 필요도 없다. 애프터를 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읽지 않은 카톡 1을 바라보며 자책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방이 보낸 카톡에 의미 부여할 필요가 없다. 그린라이트인지, 레드 라이트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내겐 인연을 찾는 과정은 항상 불확실성의 연속이었고, 그 불확실함을 위해 나는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며, 나를 그 조언에 끼워 맞췄다. 자연스러움은 없었다.      


 얼마 전 지금 만나는 사람과 눈썹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반영구 문신을 하고 지금은 틈틈이 그린다고 했다. 나도 이야기를 거들면서 나도 눈썹을 종종 그린다고 했다. 그러자 본인도 알고 있다면서 처음 만났을 때 내 눈썹이 어색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오늘은 본인이 그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내가 정말 허튼짓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자연스러움의 연속이 아니었나 싶다. 이 사람은 그 모습을 좋게 바라봤나 보다.      


그 사람이 내 눈썹을 다듬었다.

내가 느끼기엔... 내가 한 거랑 똑같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본인은 눈썹 잘 그린다고 자랑한다.     


 이 사람은 ‘밥 파고’다. 항상 배고프진 않는지, 밥은 먹었는지 묻는다. 나는 아침을 거를 때가 많은데 매일 아침 ‘아침은?’이라고 묻는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한 번은 장염에 걸린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이때 이분은 그날도 역시 ‘저녁 먹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차마 장염에 걸렸다는 얘기는 하지 못했다. 괜히 걱정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냥 둘러대다가 ‘고등어 먹었어요’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고등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다음에 같이 먹자고 했다. 나는 허겁지겁 고등어 맛집을 찾았다.      


그 후로 아직까지 고등어를 같이 먹진 못했다. 먹을 것은 넘쳐나고, 코로나 시기에 시작된 연애라 그런지 음식점을 돌아다니는 데이트는 많이 하지 못한다. 대신 집에서 배민을 보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얼마 전엔 마라탕을 배달시켜 같이 먹었는데 매운 걸 도전해본다면서 최고 매운 단계인 3단계를 시켰다. 나는 2단계를 시켰었는데, 이 사람은 3단계가 맛있다면서 국물까지 먹다가 그날 밤 앉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며 집안을 한 바퀴 돌기만 했다. 편의점 가서 우유랑 쥬시쿨 하나 사 와서 먹이니 이제야 괜찮다며 소파에 기대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뭐하는지 보니까 먹방을 보고 있다. 방금까지 밥 먹었는데, 먹방을 본다.      


한 번은 무슨 먹방을 보는지 나도 몇 번 검색해서 본 적이 있는데 5분 보고 나니 지루해지던데 이 사람은 40분을 연달아 본다. 나도 몇 번 봤더니 어느새 내 알고리즘에 먹방이 뜨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흔적이 내 유튜브에도 닿았나 보다.


아무튼 난 이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좋다. 눈썹을 다듬고, 머리 손질을 하며, 이 셔츠엔 어떤 가방이 잘 어울리는지, 신발은 구두가 나을지, 너무 캐주얼하진 않은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첫 만남에 서로 구두를 신으며, 강남역을 걸어 다닐 필요가 없다. 만날 장소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단지 아무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프라푸치노를 같이 마셔도 되고, 거기다 생크림 카스텔라를 나눠먹으며, 이번 주에 차장님이 어땠고, 뭐가 바빴고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는 것이 좋다.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화났던 기억이 떠오를 때는, 미세하게 떨리는 눈썹이 마냥 신기하다. 이 날은 좀 잘 그렸더라.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간은 저녁 11시였는데, 이 사람은 친구랑 술 마시러 간다고 나갔었다. 2차까지 본인이 어디 있는지 카톡을 남기더니 어느새 연락이 되지 않는다. 12시가 넘어서 전화가 왔는데 휴대폰을 잃어버렸다가 찾았다고 5번을 말하더니 이제 자러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숙취로 죽겠다면서 이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한다. 저녁에 같이 밥을 먹기로 했는데 숙취해소제를 하나 가져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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