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삶이 허무할 때 떠나는 여행

by 소도


친구의 지인이 퇴사기념 여행으로 치앙마이에 간다며, 추천할 식당이나 장소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도, 퇴사 기념으로 치앙마이만큼 좋은 여행지가 없지라는 생각에 내가 더 신이 나서 한 페이지를 꽉꽉 채워 리스트를 보내주었다. 얼마 뒤에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는 지인이 여행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며, 좋은 기운을 잔뜩 받아왔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누군가가 이 도시에서 또 마음을 채워간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사람과 부딪혀가며 생긴 상처는 푸르른 나무가 있고, 느리고 소박한 삶을 사는 이 도시의 사람들을 보며 치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처음 치앙마이에 왔을 때, 나도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지는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회사 일도 잘하고 있었고, 개인적 삶에서도 문제가 없었는데, 뭘 해도 별 감흥이 없고, 시큰둥하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머리를 비우자라는 마음으로 치앙마이로 향했다.


처음 나를 맞은 건 눈이 마주치면 수줍은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었다. 티 나지 않게 남을 배려하는 매너가 느껴졌다. 도로를 건널 때 웃으면서 먼저 가라고 하는 운전자들이 있었고 (방콕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는데), 카페나 식당 같은 실내에서 사람의 곁을 지나갈 때 사람들은 몸을 조금 낮춰 걸었다. 마치 몸짓으로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은 카페에 앉아있어도 누구 하나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어서 조용했다. 마치 공공장소에서는 일정 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내면 안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방콕보다 30프로 정도는 저렴한 물가, 어딜 봐도 푸릇푸릇한 풍경, 허름한 듯 보이지만 미적감각이 돋보이는 정원, 소박한 자연주의적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들을 만났다. 치앙마이는 도시의 편리함과 작은 도시의 순박함이 오묘하게 섞여있었다. 이곳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낯선 길을 걷고 있는데도 안심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바이 사바이 สบายๆ의 문화 - 마음이 편안한 행복 - 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랬을까.



그때는 지금보다 덜 발전되어서 택시 대신 썽태우(트럭을 개조한 택시)를 타고 다녔고, 종종 길에서 (과장을 조금 보태면) 토끼만한 쥐를 보기도 했고, 영어를 쓰는 사람들도 많이 없어서 곧잘 대화는 몸짓으로 대신해야 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순수하고, ‘리얼’했던 그때의 시간이 그립기도 하다.


그 모든 것에 단번에 넘어가버렸다. 사람은 물론 시장 바닥에 흐르는 피, 노점 설거지통에 담긴 탁한 물에마저 반해버렸다. 당시 타이는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모두 합해서 내가 추구하는 ‘리얼' 그 자체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리얼과 멀리 떨어져서 자랐다. 햇볕이 얼마나 강한지도, 다리 없는 걸인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풀솜에 싸인 것 같은 세계만 봐왔다고, 스물셋의 나는 절절히 생각했다.

가쿠타 미츠요 <언제나 여행 중>


나 역시 반해버렸다고,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생각한다. 싱그러운 푸르름에, 편안해보이는 그 얼굴들에, 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설명하기 어려운 푸근함에, 그리고 토끼만한 쥐가 있는 '리얼함'에도. 그 여행 이후로, 나는 계속해서 이곳에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태국어를 공부했다. 사람들에게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 길거리 국수하나쯤은 시킬 수 있는 이방인이 되고 싶었다.


일상에서 나를 움직이는 건 더 나아지고 싶고,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를 채찍질하며, 발전하고 더 나아가고 싶으면서도, 또 가끔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인생에 허무가 찾아올 때, 그럴 때 나는 이곳에 온다.


더 나아지지 않아도, 뭐 어쨌거나 괜찮다고 이 도시의 공기가 나를 안심시킨다. 태국어로 '걱정하지마' 라는 말은 ไม่ต้องคิดมาก인데, 직역하면 '생각을 많이 하지말라‘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심플하게 그저 맛있는 거 먹고, 예쁜 골목을 걷고, 마사지를 받고, 순둥순둥한 사람들 사이에서 수줍은 미소를 주고받고, 또 그것을 매일 반복한다. 그냥 단순하게 마음 가는 데로 하다보면 어느새 에너지가 충전이 된다. 다시 시작할 기운이 난다.


삶의 허무를 대하는 하나의 해답은 삶을 단순하게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순한 즐거움에는 우리를 일으키는 어떤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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