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의 여든 번째 생신을 맞아 화상전화를 했다. 작년 여름에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얼굴을 보는 거였는데, 두 분 다 변함없이 좋아 보였다. 우리는 “Cheers to our birthday boy!”라며 다 같이 잔을 들어 건배를 했다.
여든이라는 나이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생각했다. 여전히 철없고, 장난스러운 아버님을 보면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된다. 그를 보고 있자면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 것, 이라는 그의 인생철학처럼, 그냥 하루하루 좋은 시간을 보내려는 마음으로 살면 될 것도 같다. 여든이 되신 기분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뭐, 고작 여든인데”라며,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아직 그렇게 늙은 건 아니라고 애써 위안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여든이라는 나이에 크게 개의치 않으시는 것 같다.
우리는 마치 지난 주말에 본 것처럼 별거 없는 이야기들을 했다. 와인애호가이자 컬렉터인 시아버지가 최근에 발견한 좋은 와이너리에 대해서, 그래서 마음에 드는 와인을 한 박스 샀지만, 마음이 쓰이는 친구에게 무려 반 상자를 나누어준 이야기라든가, 그래서 우리가 여름에 방문했을 때 한 병이라도 남아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이야기까지.
이런 별거 아닌 일상 이야기 뒤에는 늘 그의 인생의 에피소드가 뒤따른다. 원래도 본인의 인생사에 대해 재밌게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시지만, 시아버지가 가장 자주 하는 이야기들은 보통 성공 스토리이기보다는 실패담이다. 참담하게 실패했거나, 망신을 당했거나, 실수를 했던 에피소드들. 그는 인생의 실패와 실수에 대해 신기할 정도로 당당한 태도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로스쿨 최우등생으로 졸업했던 그가 대형 로펌이 아닌 개인 사무실을 열기로 하는데, 왜냐하면 대형 로펌을 상대로 소송에서 이기는 그런 정의로운 변호사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되고, 겨우 사무실 임대비를 내며 생계를 이어갔던 가난한 변호사였던 것이 그의 시그니처 스토리이다. 그것에 대해 감추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그래서 어떤 낭패를 보았는지를 깊게 파고들어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그리고는 그게 끝이다. 그것으로 어떤 삶의 교훈을 이끌어내려는 것도 아니고, 혹은 그런 실패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정당화를 하려 하지도 않는다.
몇 번이고 재탕된 이런 이야기들에 다른 가족들은 지루한 얼굴을 짓지만, 나는 들을 때마다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든다. 실패를 기억하는 그의 방식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든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라는 당당함이 있다. 그는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를 실패자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인생은 한 챕터의 결과로 전체를 정의할 수 없는, 훨씬 더 크고 복잡한 문제이니까 말이다.
그의 흑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인생은 그냥 그렇게 좀 모나고, 어지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위안이 된다. 단정하게, 계획적으로 잘 살아야겠다는 우리의 욕심이 얼마나 무리수인가.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고, 누구나 비참하고 마음 아픈 흑역사 몇 개쯤은 당연하게 가지고 살아가는 거라고, 그래도 다 살아진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저 모두 괜찮은 척하는 사람들’이라는 알랭드 보통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쉽게 다른 사람들은 굴곡 없는 평온한 삶을 산다고 짐작하는 경향이 있고, 그것이 우리를 더 불행하게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남들은 다 잘 사는데, 나만 왜 이럴까 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다들 그저 괜찮은 척하는 것일 뿐, 누구나 인생을 들여다보면 드러나지 않는 삶의 쓰라림이 있다. 그러니 인생의 난항을 겪을 때, 나만 왜 이래 하고 울상을 할게 아니라 있을만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라는, 보통 특유의 실용적 철학이 담긴 인터뷰였다.
오늘 시아버지와 대화를 하면서 그 말이 떠올랐다. 평온해 보이는 얼굴 뒤에 감춰진 이런저런 인생의 풍파를 떠올리며 말이다. 맛깔나고 신나게 흑역사를 풀어내는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많이 웃었고, 시아버지는 내내 행복해 보였다. 물론 그 당시엔 쉽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그 모든 과정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여전히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은 조금 두렵고, 어떤 느낌일지 잘 모르겠지만, 여든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 물어본다면 나는 인생을 오래 산 어른으로서 인생에 대해 훈수를 두는 대신, 시시껄렁한 이야기와 인생의 풍파를 맛깔나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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