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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Sep 01. 2023

홍콩의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영국에 있는 대학원에 합격했다고 말을 했을 때 아빠는 말했다. “아니, 앞으로 쓸 일도 없을 학위에 굳이 그 돈을 쓰겠다는 말이냐”라고. ‘여기 좋은 학교예요 아빠. 아빠가 자랑스러워하시는 제 한국 대학보다도 객관적으로는 더 좋은 학교라구요.’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아빠에게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내가 졸업하고 나면, 적지 않은 나이의 기혼 여성이 취업시장에서 쓰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통화가 끝나고 나서도 아빠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홍콩에서 대부분의 직장 생활을 했던 나는 한 번도 내 나이나 기혼여성이라는 사실이 잡마켓에서 취약포인트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홍콩은 입주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라,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들의 경력단절이 적은 편이다. 법적으로 보장되는 육아휴직은 14주이니, 한국에 비해 짧은데, 자체적으로 이것보다 더 길게 유급휴직을 주는 회사들도 많고, 내가 다닌 회사들을 보면 원하면 1년 정도까지 추가적으로 무급 육아휴직을 주기도 한다.


나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결혼을 할 때, 긴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보스에게 3개월간 결혼 휴직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회사에서 그런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보통 결혼할 때 3일 정도 휴가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안된다고 하면 그냥 퇴사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보스는 선뜻 알겠다고 했고, 인사부에 이야기 해둘테니 일정이 확정되면 알려달라고 했다. 내 자리를 따뜻하게 잘 지켜주겠다는 그런 기대하지 않았던 다정한 말과 함께.


홍콩의 회사가 기혼여성에게 호의적인 것, 혹은 적어도 부정적이지 않은 것이 홍콩 기업문화가 특별히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홍콩은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할 만큼 냉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거기에서 오는 공정성이 있다는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고용하고 있는 직원이 역량이 있고 회사에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면 그게 육아휴직이든, 결혼휴직이든 직원의 사적인 삶에 필요한 것들을 유동적으로 맞춰주려는 것이 회사의 입장인 것이다. 그렇게 유능한 인력을 유지하는 것이 결국 회사의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이곳 사람들이 ‘내가 경쟁력이 있는 지원자인가’하는 employability를 얼마나 예민하게 판단하고 고민하느냐 하는 것이다. 잡마켓에서 중요한 건 나의 젠더나 나이, 기혼 여부, 아이의 유무가 아니라, 내가 직무에서 어떤 역량을 갖추고 있고, 어떤 평판을 갖고 있는지, 팀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포지션닝을 확인하고, 잡마켓에서 내가 경쟁력이 있는지를 짚어보고, 부족한 게 있다면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이 일을 이직을 할 때만 반짝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한다. 주기적으로 리쿠르터와 마켓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킹을 하고, 다른 회사 인터뷰를 보면서 나의 marketability를 확인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직장생활을 하면 늘 적당한 긴장감을 느끼며 살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뾰족하게 고민하고 나서 내가 어떤 강점과 약점이 있는지를 아는데서 오는 편안함도 있다. 상황이 맞는다면, 어떤 자리에는 내가 매력적인 지원자일 수 있다는 은은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런 자신감이 건강하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나는 여기에 더해 ‘해보고, 안되면 말고’ 같은 가벼운 마음같은 것도 있었다. 이방인이라는 위치, 이곳에서 영원히 뿌리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때문인지 나는 이곳에서의 시도가 가끔은 실전이 아닌 리허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다니는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하지만, 늘 ‘뭐, 안되면 잘려버리면 된다’라는 마음이었고, 이직을 할때도 편한 마음으로 지원하고, 떨어져도 상관없지라는 마음이었다. 신기하게도 이런 마음이 나에게는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비밀 무기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이런 환경에서 일해왔던 나에게는 아빠의 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그 말에 진실이 있다는 걸 알아서 약간 뜨끔하기도 했다. 한국적인 프레임 안에서 나는 내 나이에 대해서 훨씬 더 민감하게 느낀다. 한국사회는 어떤 나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가진 것 같다. 20대를, 30대를, 40대를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다른 20대와 30대를 지날 텐데도 말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몇 살인지 묻는 일이 없는 이곳에서 나는 종종 나의 나이를 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늦깍이 대학원생이 되기로 했다. 나는 농담으로 나를 ‘늙은’ 대학원생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나이는 상대적인 지표일 뿐이다. 30대는 그저 20대보다 많을 뿐, 40대보다는 어린 나이니까.


나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변화와 경험이라는 판단을 하고 대학원에 가기로 했다. 사실 이 학위로 무엇을 할지, 졸업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경험이 나에게 어떤 방향으로든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느낄 뿐이다. 대학원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모르겠다. 가서 추운 영국 날씨에 햇살을 그리워만 하다가 올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나는 이 경험에 나를 던져볼 예정이다. 홍콩에서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나를 마켓에 던지는 훈련의 끝에 막연하게 생긴 자신감을 안고 간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안되면 말고.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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