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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Jun 28. 2023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홍콩에서의 마지막 한주


오늘만이 중요하다,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뭔가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면 버거울 것 같았다. 좋아했던 골목을 걷고, 다시 한번 산에 오르고, 먹고 싶었던 것들을 먹었다. 6월의 홍콩은 여전히 끔찍히도 덥고 습하고, 하루에 두세 번 샤워를 부르는 날씨였다. 갑자기 날씨가 좋아버리면 미련이 남을 뻔했는데 어떻게 보면 다행이었다.


완차이와 타이항 동네마실


돌아보면 이곳에서의 시간과 경험이 나를 많이 변화시켰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아마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거다.


그냥 단순하게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내 멋대로 할 수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엇을 입고 어떻게 꾸밀지 같은 일상의 선택에서부터, 어떤 직장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과 만나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 같은 인생의 큰 결정의 순간마다 다른 누군가의 시선을 배제하고, 진짜 내 마음에서 원하는 것에 솔직해질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해되지 않아서 응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내 선택에 당당해질 수 있게 되었다.


결정의 순간에 자신의 목소리에 솔직해지는 것, 그리고 나에게 기대되는 선택지를 선택하지 않는 것은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많은 삶의 변화가 그렇듯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조금씩 달라진 변화이다.


한국에서의 나는 그냥 단순하게 ‘나'일 수 없다. 나는 엄마아빠의 딸이고, 우리 언니의 동생이고, 동생의 누나이고, 삼촌과 숙모들 사촌들과 친척관계로 이어져있고, 또 더 넓혀서 내 대학동창들과 친구들과 연결되어있다. 그들은 언제나 내 의식 속에서 내 삶을 관찰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것이 오늘 밖에 나갈 때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하는 작은 문제에서부터, 다음 직장은 어디로 갈까 같은 삶의 큰 문제까지 무의식적으로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려하면서 살아간다.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은 내 결정의 방해요인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일이었다. 그것은 사회적인 기대이기도 했고, 들었을 때 근사해 보이니까 같은 허세이기도 했고, 남들에게 뒤쳐지면 안된다는 불안감이기도 했다.


두 번째 과정은 그런 방해요인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내가 원하는 결정을 하나씩 해보면서, 그 결과를 감당해 보는 일이었다. 물론 내 결정이 옳을 수만은 없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지만, 중요한 건 이것이 나에게 맞는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을 몇 번이고 거치면서,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일들을 감당해보고 나니, 내가 선택한 결정에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부족한 삶처럼 보일지 몰라도 개의치 않는다. 멀리서 내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는 만족스럽고, 나를 닮은 삶을 찾아간다는 즐거움을 느낀다. 이렇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했던 것 같다. 적어도 인생의 어떤 지점에 서서야 애매하게 조금 핏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떠나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복잡한 마음일 줄 알았지만, 사실 의외로 덤덤하고 오히려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변화의 시간마다 내 결정을 지지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기로 한다.


안녕,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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