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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Jul 24. 2023

W1. 에든버러 일기


이곳의 날씨는 초겨울처럼 매일매일 춥다. 추운 날씨를 싫어하는 내가 여기서는 꽤나 이 서늘함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아직은 여름이라 날씨가 밝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이 차가운 공기에는 뭔가 건강하고 씩씩한 기운이 있다.


에든버러에 와서 왜 이들이 컬러에 집착하는 지를 알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극단적으로 변하는 날씨 - 쨍했다가, 세찬 비바람이 불었다가, 어두컴컴해지고 흩뿌리듯 비가 오다가, 다시 조금 따뜻해졌다가의 반복- 속에서 우중충한 방수자켓같은 것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옷들을 입고 있자면 옷과 스타일링으로 인한 행복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그래서 컬러풀한 양말이라든가, 가방이라든가, 무드를 살려주는 아이템이 필요한 것이다.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레인재킷을 찾지 못해서 우산과 후드재킷으로 버티고 있다.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했다. 이미그레이션에서도 아저씨가 다음에 입국할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고, 서비스직에 있는 사람들이 특히 그랬다. 한 커피숍에서 커피 두 잔과 음식 하나를 시켰는데 (사실 아침을 이미 먹고, 두 번째 아침을 먹는 거라서), 주문을 받던 직원은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이거 양이 꽤나 많아서 둘이서 셰어 하는 게 더 나아요. 충분할 거예요.”라고 본의 아니게 우리의 선택을 응원(?)해주는 말을 들었다. 홍콩이었다면 분명 둘이서 지금 하나 시키는 거냐고, 무언의 비난을 받았을게 분명하다.


어제는 동네 카페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인 손님이 들어와서 차와 스콘을 주문하는 것을 봤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던 직원은 자연스럽게 카운터를 돌아 나와서 손님의 팔짱을 끼고 자리로 이동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중에 차와 스콘을 가져다주면서는 “제가 스콘에 버터와 잼을 좀 발라드릴까요?” 하고는 스콘을 반으로 갈라 버터와 잼을 양쪽에 발라주고는, 맛있게 드세요하고는 돌아섰다.


그들에게 남을 도와주는 행위는 자연스러워보인다. 그것을 망설이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나 좀 착하지’하는 보여주기식도 아니고, 목이 마르면 물을 찾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보인다. 홍콩과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단련되어서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는 나는 조금 달라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친절은 캘리포니아에서 느꼈던, 햇볕만큼이나 강한 상냥함과는 다르다. 그곳에는 친절과 미소에 대한 어떤 강박이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옆 사람에게 미소를 짓고, 그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대해 칭찬을 하고, 마트의 직원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눈빛을 하지 않아도 살갑게 다가와서 도움을 선사한다. 처음에는 그들의 밝음에 마음이 따뜻해지지만, 살다 보면 조금 부담스러워지기도 하는데 아마도 그 친절에는 진실함 이상의 약간의 과장이 들어있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장 보러 갔다가 마트 앞에 비치된 에든버러 지역 신문을 픽업해서 왔는데, 피쳐 아티클에는 ‘1910년의 에든버러의 시민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시청의 기록에 따르면 도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10년 1년간 캐논게이트라는 빈민지역 시민들의 식단을 조사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들은 빵과 오트밀, 감자와 같은 탄수화물이 90% 이상인 식단을 갖고 있었고, 고기나 야채, 과일은 거의 먹지 못했다고 한다. 설탕이나 달걀, 잼은 럭셔리한 아이템이었고, 그러다 보니 배불리 먹지 못해 병약한 아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빈민가의 한 가정에서 영양실조로 한 아이를 잃었는데, 아이의 부모는 부족함 없는 장례식을 해주기 위해서 무려 한 가족의 3달치 생활비에 달하는 돈을 마련해서 장례식을 치렀다는 이야기였다. 이를 보면 우리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달라진 식단으로 살고 있지만, 가난 앞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고자 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같다며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역사적 정보와 삶에 대한 통찰이 버무려진 흥미로운 글이었다. 지역 신문에서 이런 퀄리티의 글을 읽다니, 흥미로웠다.


밖에 앉아서 책을 읽기에 좋은 날씨다. 좋은 서점이 너무 많고, 큐레이션이 서점마다 다르고, 그래서 읽고 싶은 책이 점점 더 쌓여간다. 샘플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책을 고르고 있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글을 더 많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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